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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근우 칼럼니스트

네이버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네이버 제공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 최근 영화 유튜버 라이너는 윤석열·김건희를 모델로 한 오컬트 영화 <신명>에 대한 비판적인 리뷰를 남기며, <신명>처럼 현실의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를 그저 현실과 분리해 영화로만 보라는 것이 난센스임을 지적했다. 동의한다. 그리고 그것이 미신을 동반한 오컬트 장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라이너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비판했듯, 이태원 압사 사고 같은 고통스러운 참사의 기억을 주술에 의한 것으로 묘사하는 재현은 뜨악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해악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이 미신을 믿는 어리석고 욕심 많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과, 그들의 사악한 주술이 실제로 통했다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범주다. 후자를 진지하게 주장하거나 혹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호의적 관람평 중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현실이 오컬트 문법으로 재구성되는 게 아니라, 오컬트가 현실로 재구성된다. 미신을 믿는 위정자를 비판하려다 미신의 효험을 긍정하게 되는 역설. 그러니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다. 오컬트 장르를 그저 장르로만 즐기기 위해선 그런 미신이 현실을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지난 5월 한 무속인이 악귀를 퇴치해야 한다며 조카에게 숯불 열기를 가해 살해한 사건 같은 게 아예 벌어지지 않거나, 최소한 이런 미신에 대한 의존이 헛짓거리이자 타인과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라는 것이 사회적 상식으로 단단히 합의되어야 그 믿음 위에서 주술적 가상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최근 <신명>의 흥행과 작품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보며 역시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오컬트 장르물인 네이버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가 떠오른 건 그래서다. 온갖 술법과 영적 존재가 신화적 규모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신명>과 비교도 안 될 만큼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이 매혹적 세계관과 서사는 삿된 재주로 흔들 수 없는 인간의 의지와 선택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팔도 최고의 무당 서연화의 외손녀로서 재능과 가르침을 물려받은 주인공 도미래가 여러 인연을 만나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가는 이야기 흐름에서, 온갖 악귀와 사술이 개입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건 술법의 우위가 아닌 선에 대한 믿음이다. 그와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이몽란과의 대결에서 그들은 우인술, 육비저주령, 손각시 등 다양한 술법을 주고받지만, 그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하찮지만 선한 터주신이 만들어낸다. 신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개조된 귀신의 집에서 원래 그곳의 터주신이던 두꺼비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한 미래는 “미약하기 때문에 절대 사라질 수 없는 한 조각의 선함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라며 “미약한 선함이 지켜온 이 한 뼘의 작은 터”에서 자신의 신력을 펼친다. 터와 터주 같은 개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해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탁월하지만,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마나니 차크라니 하는 게 아닌 우리 본성의 선함을 따르는 순리에 있다는 관점이야말로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세계관을 더없이 탄탄하게 지탱한다.

멋진 가상으로 매혹하되, 미신으로 현실을 현혹하지 않는 것. 아마 잘 만든, 그리고 좋은 오컬트 장르물이란 그런 것이리라. 매 회차마다 때론 작품보다 더 긴 분량의 각주를 달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화와 설화, 괴담을 전유해 세계관을 구성하면서도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현실에서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을 감내하기 어려울수록 미신에 빠져들기 쉽지만, 그 미신의 영험함이 순리의 편린에 불과하다면 그에 집착할 이유란 없다. 앞서의 이몽란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미래는 죽을 날까지 받아놓을 정도로 크게 살(煞)을 맞은 젊은 여성을 말 그대로 살려내지만, 그 여성이 정말로 구원을 받는 건 그 다음이다. 살을 맞기 전에도 이미 불운으로 압사하기 직전이던 그는, 미래의 도움으로 살아난 뒤 생각한다. ‘나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 이 의지는 그의 운명까지 바꾼다. 미래가 보기에 살을 맞기 전에도 이미 “세상에서 쫓겨나고 스스로에게 쫓겨나 숨고자 해도 숨을 곳 하나 없는 그런 상”이었지만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강렬한 기운만으로도 형국이 변하고 운명이 변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 이몽란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인신공양을 하고 값싼 소원을 충족하는 무리는 스스로 ‘우리는 다음 세상의 모습을 아는 이들’이라 자부하지만, 그저 싸구려 미신에 미혹되어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오물통에 빠뜨린 아둔한 존재에 불과하다. 세상에 우리가 미처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신묘한 세계와 존재가 있을 수 있지만, 자신과 남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도리만큼 신묘하진 않다. 미래를 정녕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무격(巫覡)으로서의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이를 도와준 것에 대해 “그냥 이름 모를 누군가를 도와준 거예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요”라 말하는 마음에 있다. 또한 이것이 현대 배경 오컬트 만화로서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애초에 <신명>이 오컬트 영화로 기획되는 것이 적절했느냐는 의문과 별개로 현실 비판적인 오컬트 영화를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면 고민했어야 할 윤리적 전망이 이 작품에 선취되어 있다.

영화 <신명> 포스터. 열공영화제작소 제공


라이너는 <신명>에서 대통령의 계엄 성공 여부가 일본 주술사 대 한국 무당의 술법 대결로 결정된 것에 대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을 무시한 것이라 온당하게 비판했지만, 오컬트적 문법 안에서 주술 대결은 당연히 서사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명>이 윤석열·김건희의 미신에 대한 추문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에만 치중하느라 주술의 사악함만을 부각하고 그에 대항할 선과 정의에 대한 전망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그에 반해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서 서연화가 자신의 아치에너미이자 한때 당대 최고의 무당으로 군림하던 이매신의 악령과 싸우며 날린 일갈은 통쾌하다 못해 서늘하다. “사람의 생로병사와 환혼동각을 내다볼 줄 안다 하여 그것이 대단한 재주 같더냐? (중략) 자신이 가진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며 스스로에게 한순간도 머물지 못하고, 안마당에 갇힌 미친 개처럼 밖을 향해 짖어대다 제 성을 못 이겨 죽어자빠진 것 말곤, 네가 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악의 교활함이란 실로 우둔하며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연화의 믿음과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세계관은 치열한 주술 대결 바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더 큰 싸움에서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낼 승리를 전망하고 예지한다. 최근 에피소드에서 젊은 시절의 연화는 독립군 신상욱을 만나 3.1 만세 운동을 부질없는 짓이라 폄훼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꿀 가장 신묘하고도 강대한 힘은 바로 인간다움의 순리에 있으므로, 광장은 승리한다. 주술 한일전으로 묘사되고 허무하게 끝난 <신명>의 하이라이트와 비교해 얼마나 매력적인 전망인가.

악은 그 어떤 현란한 개념과 사기로 덧칠해도 애초에 어리석고 자기 파괴적이며, 선은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순간에조차 실은 가장 현명하고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무속과 괴력난신에 대한 자극적 소재주의에 빠지는 대신, 그 소재들의 원류인 신화와 설화와 종교에 깔린 상생의 이치를 동시대적 윤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초자연적 세계를 구현한다. 이러한 접근과 전체적 완성도에서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역시 오컬트 수작이자 비슷한 미덕을 지닌 <파묘>보다 더 멀리 나아갔으며, 여전히 미신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이 적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무속을 바탕으로 한 한국형 오컬트 판타지가 고민해야 할 윤리에 대한 순도 높은 모범답안을 제시한다. 그러니 <신명>이든 어떤 작품이든, 지금 이곳의 한국 사회에서의 오컬트를 만들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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