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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참사 30주기]
참사 직후 잔해 난지도에 버린 대책본부
유족들은 손으로 쓰레기 뒤져 유해 발굴
지금까지 시신 찾지 못한 미수습자 30명
"노을공원 표지석 세워 희생자 기려야"
진옥자씨가 19일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강예진 기자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 진옥자(74)씨가 신발을 벗고 공원 한편 팔각정 평상 위로 올라갔다. 진씨가 금색보자기를 풀자 네모난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든 참외와 사과, 방울토마토가 나왔다. 진씨는 빈 플라스틱 바구니를 뒤집은 뒤 다시 보자기로 곱게 감싸 조그만 상을 만들었다. 이어 상 위에 과일들을 정성스럽게 올리고 절을 한 뒤 맥주와 막걸리를 근처 잔디밭에 흩뿌렸다. 웨딩사진을 찍으러 온 예비부부와 따사로운 햇볕 아래 운동을 즐기던 시민들이 허공을 향해 절을 두 번 올리는 진씨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노을공원은 원래 '난지도'라 불린 쓰레기 매립지였다. 1978년부터 15년간 서울시민이 버린 쓰레기로 높이 100m의 거대한 쓰레기 산이 있던 곳이다. 메탄가스와 침출수가 뿜어져 나오고 파리 떼가 들끓던 '버려진 땅'은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재탄생했다. 쓰레기 더미 위에 방수포를 씌우고 흙을 쌓은 뒤 나무를 심어 노을공원을 비롯한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을 조성했다. 진씨는 틈만 나면 노을공원에 온다. 산책이나 소풍을 위해서가 아니다. 30년 전 잃은 맏딸이 아직 이곳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진씨는 푸른 잔디밭을 보며 큰 소리로 딸의 안부를 묻고, 때론 보고 싶다며 실컷 운다. "이미 가버리고 없는데 여기가 아니면 누구한테 하소연하겠어." 진씨가 눈물을 글썽였다.

건국 이후 최대 참사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5년 6월 29일 강남의 대표적인 고급 백화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1,500여 명이 있던 백화점 건물이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붕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였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자 6명으로 단일 사고로는 건국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족의 흔적조차 품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미수습자 30명의 유족들이다.

당시 서울시대책본부는 사고 보름 뒤 잔해물을 난지도 매립지에 내다 버렸다. 실종자 상당수를 아직 발견하지도 못한 시점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행태지만 그땐 그랬다. 1995년 7월 22일 한국일보는 '실종자 가족들이 시신을 찾아내지 못한 대책본부를 원망하다 그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건물 잔해물이 적재된 난지도에 나가 시신 일부나 유류품이라도 찾기 위해 직접 수색을 펴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도 '7월 중순부터 약 한 달간 유족 등 266명이 난지도를 수색한 결과 유골 142점과 유류품 3,422점이 발굴됐다'고 전하고 있다. 진씨도 난지도로 향했던 유족 중 한 명이었다.

꿈 위해 우유 살 돈도 아꼈던 딸

진옥자씨가 19일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기도를 올린 뒤 눈물을 닦고 있다. 강예진 기자


진씨는 참사 당일 남편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다. "삼풍이 무너졌대. 애가 거기 갇혀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택시를 잡아 내달렸지만, 도착했을 땐 경찰이 이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연기와 먼지로 뿌옇게 뒤덮인 그곳을 진씨는 멍하니 바라봤다. 진씨 부부는 사고 현장에 돗자리를 폈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7월 6일까지 맏딸은 사망자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일을 관두며 "애는 내가 찾아올 테니 남은 자식들을 보살펴달라"고 진씨에게 당부했다. 구청 청소 노동자였던 진씨는 그날부터 서울교대 강당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센터와 집, 구청을 오갔다.

진씨는 일이 끝나면 강당에 들러 차가 끊길 때까지 머물렀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30분 동안은 '엉엉' 소리를 내 울었다. 밤이 늦어 사람이 없으면 크게 울었고 사람이 보이면 잠시 숨을 죽였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면 호미를 쥐고 난지도로 갔다. 진씨는 "트럭이 몇 대씩 들어와 잔해물을 뱉으면, 그 뒤를 쫓아다니며 파헤쳤다"며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쓰레기 더미를 뒤져댔다"고 했다. 그러나 딸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남편은 끝내 충격으로 병이 생겨 5년 뒤 세상을 떴다.

삼풍백화점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난지도에서 유품과 시신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딸은 진씨에게 일기장 한 권만 남겼다. 뒤늦게 펼쳐본 일기장엔 특수 분장사가 돼 방송국에 취업하겠단 꿈이 적혀 있었다. 국내에서 특수 분장 자격증을 모조리 딴 딸은 외국에 나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할 계획도 세워놨다. 이를 위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며 2,000만 원을 알뜰살뜰 모았다. 일기장엔 '우유 하나를 사 먹고 싶은데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냥 왔다'는 글이 있었다. 진씨는 "그걸 보고 너무 가슴이 저려 한참 통곡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빠가 못 해준 거 내가" 큰소리쳤던 딸

홍영희씨가 20일 강원도 춘천시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20일 강원 춘천시에 있는 집에서 만난 홍영희(75)씨도 참사로 스물두 살 맏딸을 잃은 미수습자 유족이다.

사고 당일 허겁지겁 백화점으로 향한 홍씨는 그길로 2년간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늘 한 점 없던 백화점 앞에 텐트를 쳐놓고 여름을 났고 겨울이 오면 교대 강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시 봄이 와 새 학기를 맞은 대학생들이 돌아오자 서초구청 대리석 바닥에서 생활하며 딸의 유해 한 점이라도 찾으려 분투했다. 실종자 발견 소식이 들리면 병원으로 가 시신을 만져보고 뒤져봤다. 홍씨는 "2년을 길바닥에서 잠자며 '미친X' 욕을 먹어가며 살았다"며 "자식을 안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자식이 죽었는데도 남은 게 없으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고 서럽게 울었다.

당시 고3 아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았을 정도로 홍씨는 사고 직후 2년의 기억이 희미하다. 다만 삽과 호미를 들고 쓰레기 섬을 헤매던 순간만은 선명하다. 홍씨는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이리 갖다 버리면 일로 쫓아가고, 저리 갖다 버리면 절로 쫓아갔다"며 "손톱 끝이 다 깨지도록 팠는데 결국 요만한 손가락 하나 안 나왔다"고 가슴을 쳤다. "여지껏 머리카락 하나 못 찾았어. 내가 진짜 손가락 하나라도 나왔으면 덜 억울해, 덜 억울해. 왜 못 찾냐고..." 홍씨가 읊조렸다.

홍영희씨가 20일 강원 춘천시 자택에서 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있다. 강예진 기자


끝내 발견하지 못한 미수습자 30명을 위한 장례식은 반년이 지난 1995년 12월 치러졌다. 대책본부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114점을 화장해 유족들에게 건넸다. 홍씨는 "무슨 이런 장례식이 다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병원 수십 군데를 돌고, 난지도를 맨손으로 파헤쳐도 만날 수 없었던 딸을 이렇게 보내긴 싫었다. 하지만 아이 이름이 쓰인 유골함을 외면하긴 어려웠다. 상자를 품에 안고 북한강으로 갔다. 좋은 곳에 가길 기도하면서, 누구 것인지 모를 유골을 뿌렸다. 그리곤 한평생 살아온 고향인 경기 부천을 떠나 그곳 강변 마을에 터를 잡았다.

유해 한 점 찾아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일까. 함께 지낸 시간보다 떠나보낸 지가 더 오래됐건만, 딸과의 추억은 떨칠 수 없다. 손잡고 함께 시장과 목욕탕에 가던 딸, 태권도 4단을 따 사범까지 했던 딸, 남편과 싸울 때마다 '아빠가 못 해준거 내가 다 해주겠다'며 큰소리치던 딸, 대학을 보내달란 말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알아서 공부할 테니 걱정 말라'며 백화점에 척척 일자리를 구했던 딸. 지금도 어디선가 딸이 "엄마 가자!"라고 부르며 집에 들어올 것만 같다. "그냥 넋 빠지게 강물만 쳐다보면서 딸을 기다릴 적이 많아요. 한심스럽게···."

홍영희씨가 20일 강원도 춘천시 자택 앞 강을 바라보고 있다. 강예진 기자


진씨와 홍씨를 비롯한 미수습자 유족들의 바람은 하나다. 희생자 넋이 머물고 육신이 잠들어 있을 것만 같은 노을공원에서 그들을 기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삼풍참사위령탑'이 있지만 참사 현장에서 6㎞가량 떨어진 양재 시민의숲에 세워져 있다. 걸어서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진씨는 "삼풍 터에다 조그맣게라도 위령탑을 세워달라고 했는데, 강남 중심지라 안 된다더라"고 씁쓸해 했다. 잔해가 정리된 삼풍백화점 자리엔 주상복합 아파트인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섰다. "묻었으면 거기(난지도)가 무덤이지. 공원에 탑을 세워주면 애들 무덤이거니 하고 찾아갈 텐데. 지금은 허공에서 이름만 부르고 와…" 홍씨가 말끝을 흐렸다. 유족들은 30주기를 맞아 노을공원에 표지석을 세우기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서울시는 "표지석 설치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는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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