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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송유진(24·가명)씨가 키우고 있는 생후 7개월 이승주(가명)군이 지난 23일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미혼모 송유진(24·가명)씨는 생후 7개월 이승주(가명)군을 홀로 키우고 있다. 지난해 2월 연고가 없는 충남의 한 도시로 송씨를 데려온 친부는 임신 소식 들은 뒤 자취를 감췄다. 관계가 소원한 부모에게도 기대긴 어려웠다. 설상가상 화장실 변기가 역류하고 아이 방에 곰팡이가 피는 등 주거 환경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던 송씨의 육아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송씨 가정에 변화가 찾아온 건 지난 4월 세이브더칠드런 ‘위기임산부·아동 양육 첫걸음 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였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올해부터 시범 사업으로 지역 사회복지관과 협력해 전문자격을 갖춘 양육플래너를 가정에 파견하고 있다고 25일 설명했다. 이 사업 덕에 사회복지사인 현민영 플래너는 주 1회 송씨 가정을 방문해 우는 아이 달래기, 젖 물리기, 재우기, 이유식 제조법 등 각종 양육 지식을 전수하고 주거 환경 개선을 도왔다.

현 플래너는 승주군의 발달이 늦은 것을 알아채고 진료를 권유하기도 했다. 조기 진단을 받은 덕분에 승주군의 재활치료도 성과를 보인다고 한다. 송씨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는데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너무 막막했다”며 “플래너를 통해 맞춤형 정보와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송유진씨가 양육 플래너의 도움을 받아 화이트보드에 승주군의 이유식 식단표를 적어 놓았다. 이영근 기자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는 법제화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초저출생·축소사회 대응책으로 ‘보편적 영유아 가정방문 서비스’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정방문 서비스는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훈련된 가정방문인력이 만 2세 미만 영유아의 집으로 가서 부모의 고민을 듣고, 아기의 건강과 안전을 살피는 제도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수십 년 전부터 보편적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를 법제화했다.

전문가들은 “2세 미만은 아동의 발달에 중요한 데다 사망률도 높아 사회 차원의 돌봄이 절실한 시기”라고 말한다. 실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부검 대상 아동 31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36명(43.7%)이 1세 미만 영아였고 이런 경향성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국내는 일부 지자체에서 신청 가정에 한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보건복지부의 생애초기 건강관리사업에 참여한 15개 시, 73개 보건소 또는 서울시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을 통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초구 보건소 관계자는 “양육 정보 제공뿐 아니라 자조 모임 등 사회적 지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영유아 가정방문서비스 법제화 필요성 모색' 심포지엄에서 이은주 알바니 뉴욕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미국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일본은 1961년 신생아 가정 방문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간호사 등이 생후 4개월 이하 영아가 있는 모든 가정을 방문하는 ‘안녕, 아기(Hello, Baby)’ 프로그램을 제도화했다. 미국은 주마다 다양한 가정방문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미국의 ‘간호사 가정방문(Nurse-Family Partnership)’ 프로그램을 18년 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프로그램 대상 가정은 대조군과 비교해 아동학대가 48% 감소했고, 아동의 학업 성취도도 높아졌다고 한다.

가정방문 서비스를 연구한 이은주 알바니 뉴욕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청을 기다리기만 할 경우 정작 서비스가 필요한 가정은 배제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사례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며 “뉴욕에선 참여자 편의에 맞춰 병원, 학교 등을 방문해 유대감을 쌓고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정방문 서비스는 출산 장려 저출생 대책을 넘어 태어난 아동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국가 차원의 메시지”라며 “한국 사회의 발전 정도를 고려하면 제도 도입이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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