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정 수원고검장, 이프로스에 글 올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뉴시스
이재명정부가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개혁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현직 고검장이 “형사사법시스템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트로이의 목마’를 들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소 분리 개혁안에 대한 검찰 고위 간부급에서 공개적인 목소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권순정 수원고검장은 23일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검찰의 미래를 그려봅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권 고검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검찰개혁 공약 중 하나인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개념이 모호하고 연원이 불분명해 참고할 만한 해외자료를 찾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연 수사·기소 분리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따져보고 그 의미부터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고검장은 “만약 수사·기소 분리가 검사의 수사를 일체 금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따라가는 사법작용 중 하나인 ‘소추’ 기능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므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관이 판결을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검사는 소추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고, 그게 다름 아닌 수사”라며 “수사는 소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기능”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의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권 고검장은 “진짜 전문가들과 현장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지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며 “다양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법안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의원 각자의 이름을 내걸고 심도 있는 토론과 심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고검장의 글은 오는 25일 검찰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재보고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을 받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일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위에 업무보고를 진행했지만, 국정위는 수사·기소 분리 등 정부의 검찰개혁 공약에 대한 내용이 누락됐다는 이유로 30분 만에 업무보고를 중단하고 재보고를 주문했다.
권 고검장의 글에 대한 검찰 구성원들의 의견 개진도 이어졌다. 장진영 수원지검 부장검사는 ‘검찰의 미래-정치적 사건의 직접수사 절연, 수사지휘권 회복’이라는 글을 올려 “검찰개혁의 방향은 수년 전에 나와 있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인사권자의 선의가 없이는 중립성 확보가 불가능한 검찰의 직접수사, 특히 현 수사체제에서 그 부작용이 극심한 정치적 사건의 직접수사권한 폐지와 민생범죄사건의 정상화를 위한 수사지휘권 회복”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