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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ㆍ경제ㆍ노무 : <23>육아 휴직자 인사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부당전직, 직급 및 급여뿐 아니라
실제 업무 내용 및 역할까지 고려
인사 기준과 계획, 절차도 중요




Q1:
대형마트에서 ‘매니저’로 근무 중인 A(44)다. 직급은 과장이지만, 사실상 점포 책임자 역할을 맡아 상품과 인력을 총괄했다. 그러다 육아휴직 뒤, 1년 만에 복직했다. 그런데 회사는 나를 ‘매장 직원’으로 배치했다. “휴직 전 근무하던 자리에 이미 다른 직원이 인사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물론, 직급은 같고 급여에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발주나 인사권은 물론 매장 운영에 대한 권한 등에서 차이가 컸다. 이에 사실상의 강등으로 보고, 노동위원회에 ‘부당 전직 구제’를 신청했다.


Q2:
광고회사 광고팀장 B(41)다. 직급은 선임 과장이었고, △광고대행사 관리·△신제품 전략 수립·△광고 제작 관리·△광고 집행 및 관리·산업재산권 관리 업무를 총괄했다. 매주 대표 이사에게 대면보고를 할 정도였다.
그러다 육아휴직을 사용했는데, 복귀 후에는 광고팀장이 아닌 팀원으로 돌아왔고, 사무실 자리도 팀원들 사이에 배정됐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대가로 팀장 자리를 잃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기에 인사발령이 위법하다고 소송을 냈다.


A:
표면적으로 두 사례는 닮았다. A씨와 B씨, 둘 다 육아휴직 후 예전과는 다른 자리에 배치됐고, 그 배경엔 회사의 ‘재량’인 인사권이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건을 다르게 판단했다.

A씨 사건에서 대법원은 회사의 인사 조치를 부당전직이라고 봤다. ‘전직’이란, 기업 내에서 근무자의 업무나 근무 장소를 변경하는 인사처분을 뜻한다. 부당전직은 이런 전직처분에 정당성이 없는 경우를 지칭한다.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제19조)은 육아휴직 후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키도록 규정한다. 또, 사용자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의 의미를 “직급이나 급여뿐 아니라 실질적인 업무 내용과 역할, 책임의 유사성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해석했다. A씨의 경우, 직급 및 급여는 유지됐지만, 인사·운영·조직관리 권한을 상실하면서 사실상 관리자에서 일반 직원으로 변경되어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의 업무에 복귀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육아휴직 전후의 임금 수준만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 육아휴직 전후의 업무가 실질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임금을 포함한 근로조건, 업무의 성격·내용·범위 및 권한·책임 등에서의 불이익 유무 및 정도, 직무 변경의 필요성 여부 및 정도, 그로 인하여 기존에 누리던 업무상·생활상 이익이 박탈되었는지 여부, 근로자에게 동등하거나 더 유사한 직무를 부여하기 위하여 휴직 또는 복직 이전에 협의 기타 필요한 노력을 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B씨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광고산업 특성상 팀장 보직은 경영 판단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경될 수 있고 △복직 직전에 이미 조직개편이 추진중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팀장 재배치는 육아휴직자가 아닌 다른 팀장들에게도 적용됐고, 재배치 절차도 인사위원회를 거치는 등 일정한 기준을 따랐다. 회사가 육아휴직을 이유로 B씨만 특정해 불이익을 준 정황 또는 절차적 문제점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와 B씨의 서로 다른 두 판결을 통해, 육아휴직자에 대한 인사조치가 언제 정당하고, 언제 위법한지 실질적인 기준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직급이나 호봉이 유지됐다고 ‘같은 대우’라고 볼 수 없다. 업무의 권한과 책임, 직무의 중요성까지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용자가 적법한 기준과 절차를 따라 인사를 결정했다면, 설사 복직자의 불만이 있더라도 사측 인사의 정당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판결은 일-육아 균형을 추구하는 많은 직장인 권리와도 관련이 있다. 육아휴직은 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 쉬면 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전히 여성이 30%대, 남성은 10%대에 그치고 있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낸 ‘아빠’의 절반 이상(57%)이 대기업(직원 300인 이상)에 재직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육아휴직자는 증가하지만, 여전히 ‘쓸 수 있는 사람만 더 쓰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런 불안한 구조 속에서 권리의 실효성은 사라진다.

육아휴직은 ‘특별한 선택’이 아니다.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사회적 책임이 개인에게만 전가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직 이후에도 기존 지위를 합리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 키우며 일할 수 있는 사회”라는 말은 현실이 된다.

중꺾마 심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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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철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ㆍ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심의위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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