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 19일, 올해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이 나왔습니다.

정부는 추경 규모가 30조 5천억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실제 늘리는 지출은 20조 2천억 원입니다.

10조 3천억 원이 차이 납니다. 여기에 숨은 추경의 비밀을 추적해 봅니다.

■ 세입 경정, 누구냐 넌

가계부 쓰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 달 예상 수입을 300만 원으로 잡았습니다. 250만 원을 지출하고, 50만 원을 저축할 마음을 먹었습니다.

세상일이 뜻대로 잘 안되죠. 실제 수입이 200만 원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가계부를 어찌할까요. 선택지는 둘입니다.

첫째, '정신 승리'하기.

목표보다 100만 원을 덜 벌 게 뻔하지만, 모른 체 합니다. '아니야, 어떻게든 300만 원을 벌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다음 달은 일이 잘 풀려서 더 벌 거야' 자신감도 생깁니다. 왠지 마음이 편해집니다.

둘째, 가계부 고쳐쓰기.

현실을 인정합니다. 빨간 줄을 그어 '수입: 300만 원'을 지우고, '수입: 200만 원'이라고 수정합니다.

가계부에 적힌 수입이 줄었으니, 지출도 줄일 가능성이 크겠죠. 꼭 써야 할 곳이 있다면 빚을 낼 수도 있고요.

고쳐쓰기를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경정(更正)입니다. 국어사전은 '바르게 고침'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부라고 다를까요. 세입 목표와 세입 실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합니다.

그럴 때 세금 수입 장부를 고쳐 쓰는 걸 세입 경정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세금 수입을 다시 바르게 고친다'는 뜻입니다.

정부 예산은 보통 1년 전에 추정치로 짭니다.

예를 들어, '올해는 법인세가 100조 원 정도 걷히겠지'라고 예상한 뒤 예산안에 반영합니다.

하지만, 계획이 틀어질 수 있습니다.

경기 변동과 기업 실적 부진 등에 따라 예상보다 세금이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겠죠. 그럴 때 세입 경정을 합니다.

이번 2차 추경 때 정부는 10조 3천억 원 세입 경정을 했습니다. 세금이 10조 3천억 원 덜 걷힐 거라고 인정하고 세입 장부를 새로 썼습니다.

동시에 지출은 20조 2천억 원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전 국민 소비쿠폰, 소상공인 빚 탕감 등에 정부 예산을 씁니다.

2차 추경이 30조 5천억 원 규모라는 정부의 표현을 분해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세입 추경 10조 3천억 원 + 세출 추경 20조 2천억 원 = 추경 30조 5천억 원

국민 입장에서 세입 장부를 고쳐 쓴 건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건 정부의 지출입니다. 정부 씀씀이가 돌고 돌아 누군가의 매출이나 소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국민 입장에선 20조 2천억 원짜리 추경이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 올해 세수, 얼마나 부족해?

그런데, 올해 국세 수입이 어느 정도 부족하길래, 정부는 세입 장부를 고쳐 쓰는 걸까요.

지난해 국세 수입 실적은 336조 5천억 원이었습니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을 짜며 국세 수입 목표를 382조 4천억 원으로 잡습니다.

1년 새 수입을 45조 9천억 원, 13% 넘게 늘릴 수 있다는 과감한 목표였습니다.

과감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과감했습니다.

올해도 이미 절반이 지난 상황, 정부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인정했습니다.

국세 수입 목표치를 372조 천억 원으로, 10조 3천억 원 낮춰 잡았습니다.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가장 많이 줄였습니다. 상속세 빼고는 대부분 덜 걷힐 거로 봤습니다.

경기가 안 좋으니, 세금도 잘 안 걷히고 있는 겁니다.

■ '정신 승리'가 더 많았다

세금 목표와 세금 실적이 어긋났던 건 어제오늘 문제가 아닙니다.

2021년과 2022년은 목표보다 더 걷혔습니다. 61조 4,000억 원과 52조 5,000억 원의 초과 세수가 발생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은 반대였습니다. 56조 4,000억 원과 29조 6,000억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습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장부 고쳐쓰기, 즉 세입 경정을 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입 경정은 2020년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까지 기간을 넓혀 잡아도, 총 5번만 했습니다.

세입 실적이 목표에 못 미쳐도, 솔직히 인정하고 고쳐쓰기보다는 정신 승리로 버틸 때가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최근 5번의 세입 경정 모두 세금이 너무 잘 걷혀서 올려 잡은 적은 없습니다. 세금이 안 걷혀 세입 목표를 낮춰 잡기만 했습니다.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약 11조 원가량 세금 수입을 낮춰 잡았습니다.

2013년과 2015년에도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본예산 대비 2%대의 세입 경정을 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대유행 때는 대규모 세제 지원 등이 이뤄지면서 최대 규모의 세입 경정이 있었습니다.

목표만큼 세금이 안 걷히는 일, 특정 정권이나 정부 성향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재정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세금을 너무 안 걷거나, 지출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단 뜻입니다.

■ 그때는 안 하고, 지금은 하는 이유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달 1일 국회를 통과한 1차 추경 때도 세입 경정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두 달 새, 세금 수입이 극적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1차 추경은 버텼고, 2차 추경은 고쳤습니다.

왜? 정부 재량이기 때문입니다. 세입 경정은 법적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란 얘기입니다.

다시, 가계부 비유로 돌아가 봅니다.

수입이 3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줄어들 때, 누군가는 수입을 낮춰 잡고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잠시 외면하고 계획대로 지출한 뒤, 나중에 빚을 내거나 비상금을 헐어 쓰자고 마음먹을 사람도 있습니다.

정부도 비슷합니다.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측되는데도 경정을 생략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부 스스로 세입 경정을 하면, 예산 추계가 틀렸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라 그렇습니다.

한 해 예산을 짜고 난 뒤 매번 예산을 고치면 정책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겠죠. 아마 멋쩍을 겁니다.


세입 경정은 이번 경우처럼 보통 추가경정예산을 짤 때 합니다. 추경 없이 세입만 고치면 세수 펑크만 더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세입 경정 대신 종종 꼼수를 씁니다. 연중에는 가만히 버티고 있다가, 연말 결산을 할 때 세수 결손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2023년 세입이 목표보다 덜 걷힐 걸 뻔히 알면서도, 2023년 결산 때까지 버팁니다. 2023년 결산은 2024년 상반기에 이뤄집니다.

2024년이 되면 국회도, 언론도 2023년 나라 살림에는 관심이 덜해집니다. 그러니 욕도 덜 먹습니다. 세입 예측이 틀려도 티가 덜 나는 이유입니다.

세입 경정을 하면 국채 발행이 표면화한다는 것도 정부 입장에선 부담입니다.

세수 경정을 통해 세입을 낮춰 잡으면, 써야 할 돈은 있으니 그만큼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는 게 안 드러날 도리가 없습니다. 재정 건전성 논란이 더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정부 살림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정신 승리로 버틴다고 적자가 흑자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추경에 대해 "추경이 30조 원이라는 건 말장난 같은 것"이라며 "이전에도 정부가 필요하면 세입 경정을 넣어서 얼마라고 하고, 이번에는 급한 추경만 하는 거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을 때는 세입 경정을 생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입 경정은 재정 운영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장치입니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예산을 짜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죠. 하지만 외부 상황 등에 따라 예산은 언제든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그럴 때 세수 결손을 숨기는 게 상책일까요. 국민에게 나라 살림을 정확하게 알리는 게 상책일까요.

개인이 정신 승리를 하는 건 그의 자유지만, 정부가 그래도 될까요.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네이버,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0569 [속보] 대통령실, 긴급 안보회의 개최‥이란 핵 시설 타격 상황 점검 랭크뉴스 2025.06.22
50568 [속보] 대통령실 "美, 이란 핵시설 공격 관련 긴급 점검회의 개최" 랭크뉴스 2025.06.22
50567 트럼프 "이란엔 평화 아니면 비극뿐…공격할 표적 많이 남아" 랭크뉴스 2025.06.22
50566 [美 이란 공격] "6발 투하" 벙커버스터는…'지하시설 초토화' 초강력 폭탄 랭크뉴스 2025.06.22
50565 [속보] 트럼프 "목표물 아직 많다는 것 기억하라"... 이란에 '추가 공격' 경고 랭크뉴스 2025.06.22
50564 '복귀' 군불 때는 전공의들…자체 설문하고 정치권 접촉 랭크뉴스 2025.06.22
50563 무협, 올해 한국 수출 전망 -2.2%로 수정…당초 +1.8%에서 내려 랭크뉴스 2025.06.22
50562 얼굴 맞대는 여야 지도부‥'추경 대립' 해결될까 랭크뉴스 2025.06.22
50561 [속보] "美, 이란 핵시설 공격에 벙커버스터 6발·토마호크 30발 투하" 랭크뉴스 2025.06.22
50560 [속보] 이란 “미 공격 예상해 핵시설 미리 빼…결정적 피해 없어” 랭크뉴스 2025.06.22
50559 트럼프 “아직도 많은 표적있다…이란, 훨씬 더 큰 비극 따를 것” 랭크뉴스 2025.06.22
50558 VIP·예비부부 발걸음 잡는다…신세계百 강남점 가전 전문관 새 단장 랭크뉴스 2025.06.22
50557 [속보] 트럼프 "이란 핵시설 완전 파괴…평화 안 만들면 더 큰 공격" 랭크뉴스 2025.06.22
50556 경찰, 제주항공 참사 책임자 15명 추가 입건 랭크뉴스 2025.06.22
50555 [속보] 트럼프 "美 공격 목표는 이란 핵 농축능력 파괴·위협 중단" 랭크뉴스 2025.06.22
50554 “미, 벙커버스터 6발로 포르도 폭격”…사실상 전쟁 개시 랭크뉴스 2025.06.22
50553 [속보] 트럼프, 공격 후 네타냐후와 통화‥이스라엘에 사전 통보 랭크뉴스 2025.06.22
50552 트럼프 “미, 이란 핵 시설 3곳 공격 성공” [지금뉴스] 랭크뉴스 2025.06.22
50551 [속보] 네타냐후 "이란 핵 겨냥한 트럼프의 담대한 결단, 역사 바꿀 것" 랭크뉴스 2025.06.22
50550 트럼프 “성공적 군사작전…한국시간 오전 11시 대국민 TV 연설” 랭크뉴스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