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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주에너지원 '석탄'…현재는 존재감 적어
국·공영 탄광 '0곳' 시대…360여곳서 단 1곳만 남아
탄광 지역의 생존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


오늘로 석탄 채굴 작업 마치는 태백 장성광업소
(태백=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29일 강원 태백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직원들이 마지막 채탄 작업을 하고 있다.
국내 최대 탄광인 장성광업소는 오는 6월 폐광을 앞두고 이날 마지막 채탄 작업을 진행했으며, 내달부터 석 달간은 폐광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 2024.3.2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막장 드라마', '막장 인생'이란 말을 많이 쓴다. 갈 데까지 갔다는 의미로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막장'이라는 단어가 광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장은 탄광 내 오가는 길인 갱도의 마지막 부분, 막다른 곳을 칭하는 말이다. 탄광의 고된 이미지와 합쳐져 막장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을 뜻하게 됐다.

몇 년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은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이라며 이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탄광 자체가 이제 '막장'에 다다랐다.

6월 말이면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마지막 탄광인 강원도 삼척의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는다. 이로써 우리나라엔 국·공영 탄광이 모두 석탄 생산을 중단한다.

유일하게 민영 탄광인 경동상덕광업소만 남는다. 이를 계기로 석탄이 에너지원으로서 그동안 한국 현대사에 어떤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검증해봤다.

이번 검증에서 석탄은 무연탄을 의미한다. 석탄은 탈 때 연기가 나지 않는 '무연탄'과 연기가 많이 나는 '유연탄'으로 크게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석탄 대부분은 무연탄이다. 유연탄은 주로 북한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후 경제개발로 석탄 생산 늘어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통상자원백서',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정책 변천사', 석탄공사의 '대한석탄공사 50년사'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탄 생산은 전후 복구와 경제 개발에 힘입어 본격적인 성장세를 맞이하게 됐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주된 연료는 임업 자원, 쉽게 말하면 장작이었다. 탄광이 북한에 몰려 있었던 탓에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석탄이 부족했다.

한국전쟁(6·25전쟁)은 석탄산업의 위기이자 기회였다. 전쟁으로 인한 산림 황폐화로 심각한 연료 부족 사태가 벌어져 정부가 석탄 개발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 됐다.

영암선 개통 광경
[대한석탄공사의 '대한석탄공사 50년사'에서 발췌]


물론 탄광도 전쟁의 직격탄을 맞았다. 탄광 자체가 전쟁의 피해를 보거나 잠시 휴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석탄 생산은 1949년 112만9천t에서 1950년 66만1천t으로 반토막이 났고 이듬해인 1951년엔 16만2천t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유엔(UN)의 원조금을 받아 탄광을 복구하고, 영암선·문경선(1955년), 영월선(1956년), 함백선(1957년) 등 석탄 수송 철도망을 구축했다.

1955년엔 최초의 종합계획인 '석탄 생산 5개년 계획'을 수립했고, 이를 수정·보완해 1958년엔 '석탄 증산 8개년 계획'을 만들었다.

이보다 전인 1950년 11월 석탄공사의 설립은 석탄 산업의 하나의 이정표였다. 이로써 국·공영과 민영의 이원 체계가 형성됐다. 석탄공사는 설립 당시 석탄 생산의 80%를 차지할 정도의 독과점 기업이었다.

하지만 산업철도 개통으로 신규 탄전 개발이 촉진되면서 민영 탄광이 늘어나자 1960년 민영 생산이 국·공영을 앞지르게 됐다.

석탄, 1960년대 생산 급증…주종 에너지원 등극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발맞춰 1961년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석탄 증산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이 법은 연간 30만t 이상의 석탄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 내 광구들을 '탄좌'(炭座)로 묶어 종합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대단위로 탄광을 개발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석탄 생산은 1956년 181만5천t에서 1966년 1천161만3천t으로 10년 만에 9배로 급증했다.

천연자원 상태에서 공급되는 에너지를 뜻하는 1차 에너지에서 석탄의 비중이 1966년 45.7%로 정점을 찍으며 우리나라의 주종 에너지원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석탄 수요 역시 1950년대 말부터 연탄 보급이 확대되면서 급격하게 늘었다.

하지만 1966년 연탄 파동으로 한순간에 분위기가 반전했다.

석탄 생산량과 소비량 추이
[대한석탄협회 자료]


그해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연탄 가격을 통제하자 연탄값 인상을 요구하는 생산업체들이 연탄 생산을 줄였고 그로 인해 연탄값이 서너배 급등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석탄을 가정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가정 이외의 곳에서는 연료를 유류로 바꾸도록 한 '주유종탄'(主油從炭) 정책을 시행했다.

철도 연료는 1960년대 초 디젤기관차의 도입으로 이미 유류로 전환된 상황이었다.

실제 석유류 소비는 1966∼1968년 연평균 50%나 증가했고, 석탄 소비는 가정용 부문을 제외하고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석탄 생산도 1967년 1천200만t대에서 1968년과 1969년 1천만t대로 내려앉았다.

1·2차 석유파동에 석탄산업 반등하기도
하지만 석유 위기가 닥치면서 석탄 산업은 반등하기도 했다.

1973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해 원유 생산량을 감축하고 가격을 대폭 인상한 것이다.

제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중동산 원유 가격은 1년 만에 4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그 여파로 석탄 수요가 급증하며 석탄 생산도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에 앞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된 농촌지역의 연료전환도 석탄 수요 증대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이 연료전환 운동으로 농촌지역에 연탄아궁이와 연탄보일러가 보급된 덕분에 정부의 '주유종탄' 정책으로 인한 석탄 수요 감소세가 상쇄될 수 있었다.

석탄의 1차 에너지 중 점유율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정책 변천사'에서 발췌]


1979년에 제2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 가정용 연탄 사용이 재차 촉진됐다. 1978년엔 급기야 무연탄을 수입하게 됐다.

석탄 생산은 이런 수요 증가에 힘입어 1980년대 중반까지 재차 고도성장을 이뤘다.

실제 생산량은 1988년 2천429만5천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년 전인 1968년 1천24만2천t의 2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석탄산업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후엔 끝없는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석탄 수요 급감
1980년대에 이미 석탄 몰락의 씨앗이 뿌려졌다.

두 차례 걸친 석유 파동으로 석유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이 제기되자 정부는 1981년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가정 연료를 LNG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1987년에 도시가스용 LNG의 공급이 개시됐다.

마침 1986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연탄의 가격 경쟁력마저 크게 떨어졌다.

87년 만에 폐광한 태백 장성광업소
(태백=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1일 강원 태백시 장성광업소에서 한 직원이 갱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탄광인 장성광업소는 1936년 문을 연 이래 87년 만에 이날 광업권 소멸등록을 마치고 공식 폐광했다. 2024.7.1 [email protected]


서울시는 아시안 게임(1986년), 서울 올림픽(1988년)을 앞둔 1985년 신규 주택에서의 연탄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그 여파로 석탄 수요는 1986년을 정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석탄 생산의 고점인 1988년보다 2년 이른 시점이었다.

감소세는 극적이었다. 석탄 수요는 1992년에 1천7만4천t으로, 6년 만에 고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연탄 부문이 수요 감소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후 수요가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올 상반기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인 양금명이 1987년 대학에 입학한 뒤 자취방에서 살다가 연탄가스 중독에 걸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기는 가정용 연탄 사용이 사양길에 접어든 때로, 이런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지지 않았다.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1970년대 중후반이 가장 많았다.

정부, 석탄산업 '합리화' 구조조정 추진
석탄 수요 감소로 석탄 생산은 비상이 걸리면서 문을 닫는 탄광이 속출했다. 운영 중인 탄광 수가 1987년 363개에서 1988년 347개로 줄었다.

1980년대 석탄 생산은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면 캘수록 탄맥(땅에 묻혀 있는 석탄의 줄기)의 위치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어 생산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석탄산업 구조조정 실적
산업통상자원부의 '제6차 석탄산업장기계획'에서 발췌


또한 영세성을 면치 못했다. 1988년 기준 생산량이 10만t 이하인 영세 중소 탄광이 전체의 87%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에 정부는 1988년 말 '석탄산업 합리화 방안'을 수립해 폐광 탄광을 지원하고 경제성 있는 탄광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석탄산업을 구조조정했다.

이에 따라 실제 석탄을 생산하는 탄광 수는 1988년 347개에서 1992년 115개로 4년 사이 3분의 1토막이 났다.

그만큼 석탄 생산도 급감해 1차 에너지 중 무연탄의 점유율이 1980년대 20% 초반대에서 1995년 이후 1∼2%로 쪼그라들었다. 연료로서 석탄의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으로 전락한 셈이다.

정부는 1995년에 재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탄광 11곳만 이른바 '장기가행탄광'으로 선정해 관리하고 나머지는 사실상 폐광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석탄 생산 탄광 수 추이
['에너지통계연보'에서 발췌]


이런 구조조정의 결과는 확연했다.

산업부의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에 따르면 2020년 석탄 생산은 최대치를 기록했던 1988년과 비교해 96% 감소했다. 근로자 수는 같은 기간 96%, 운영 중인 탄광 수는 99% 급감했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 등의 영향으로 연탄이 한때 '반짝' 주목받기도 했다. 석탄 수요가 2005∼2008년 400만t대로 반등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감소해 지난해 74만4천t까지 줄었다.

석탄공사는 2023년 운영 중인 탄광을 단계적으로 조기 폐광하기로 하고 일정에 따라 그해 화순광업소, 지난해 장성광업소를 폐광한 데 이어 올해 도계광업소의 문을 닫는다.

이 세 곳 모두 1930년대 개발된 탄광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장성광업소는 폐광할 때까지 생산한 석탄의 양이 석탄공사가 1950년 창립된 이후 생산한 석탄의 49%를 차지할 정도로 '맏형' 역할을 해왔다. 직원 규모도 전성기에 6천명에 달했다.

석탄산업을 '합리화'하겠다는 취지지만 탄광이 문을 닫으면 탄광촌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탄광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탄광으로 지역 경제가 돌아갔기 때문이다.

탄광촌 주민들이 폐광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1995년 2월 고한·사북지역 부민들을 주심으로 한 항의 시위는 거셌다. 상가 철시, 등교 거부, 삭발·단식 투쟁, 야간횃불 시위 등을 벌였다.

"생존권 보장 없는 조기 폐광 반대"
(삼척=연합뉴스) 생존권 보장 없는 폐광 반대 투쟁에 나선 삼척시민 총궐기 대회가 17일 도계역 광장에서 열렸다. 궐기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대한석탄공사의 마지막 탄광인 삼척 도계광업소의 폐광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조기 폐광에 따른 대체 산업은 요원한 상태라며 반발하고 있다. 2025.6.17 [독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그 결과 1995년 말 '폐광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대체 산업으로서 1998년 설립됐다.

정부는 이후에도 폐광지역의 경제진흥을 위한 대체 산업의 발굴과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도계광업소의 조기 폐광을 앞두고 강원도 삼척시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등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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