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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청년이 떠난 자리]
<중> 오답 속 청년을 부를 해법
장기 정책 이끌 강력한 '컨트롤타워'부터
몸집 커진 수도권엔 '초광역권'이 대극돼야
행정통합 논의 필수, 지방재정 확충도 고민
"2차 추경, 최소 10조 원은 균형발전 위해"

편집자주

지난 20여 년간 '균형발전'을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지방소멸 위기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출생, 가계부채 상승으로 이어지는 지방소멸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0%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최대 리스크입니다. 이런 기로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일보는 지방을 떠난 청년들의 시선으로 위기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 해법을 모색해봤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첫 국무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신속히 준비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5일) 첫 국무회의에서 내린 지시가 소강 상태였던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 곧장 반발이 터져 나왔다. 현재 해수부가 위치한 세종과 ‘항만산업의 경쟁자’ 격인 인천이 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시급하다
고 목소리를 높였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방해양수산청·항만공사 기능부터 지방에 적절히 분산하는 게 먼저"
라고 강조했다. 해수부 내부도 술렁였다. 노동조합이 진행한 설문에서 본부 직원의 86.1%가 이전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해수부 이전 추진단 구성은 시작됐다.

이 갈등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의 균형발전 공약에는 △5극 3특(5개 초광역권·3개 특별자치도) 구현 △행정수도 세종 완성 △공공기관 2차 이전 등 굵직한 과제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은 정책들이다.

"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그만큼 그 정책들을 실현하는 게 어려웠다는 뜻이죠. 가야 할 방향과가치는 분명합니다. 관건은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느냐죠." 20년 넘게 균형발전 정책을 연구한 박경현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장의 설명이다.

한국일보 창간기획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공멸’로 치닫는 상황에 제동을 걸 마지막 기회가 현 정부 앞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공약들이 효과를 내도록 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를
①누가(Who) ②무엇을(What) ③어떻게(How to)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눠 정리했다.

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는 지난 20년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발전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라는 여러 이름으로 존재했다. 정부마다 그럴싸한 슬로건도 항상 내걸었다. 하지만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상황은 매번 반복됐고, '지방소멸' 위기는 우리 눈 앞에 다가왔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①누가: 강력한 권한의 '지휘자'부터... "부총리급 행정부처 必"



"교육, 과학기술, 인구(지방소멸). 이런 의제들은 백년지대계예요.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 정책을 밀고 갈 부처가 필요한 겁니다."

김종한 경성대 교수만의 답변이 아니다. 균형발전 실패 원인을 묻는 질문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처음 꺼낸 답변은 '컨트롤타워' 부재다.
'정치'와 무관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체계부터 만들자는 뜻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어떤 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해도 한 걸음 전진했다가 두 걸음 후퇴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균형발전 정책 관련 자문위의 역사는 참여정부가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고 설치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형위)'가 시작이다. 이후 '지역발전위원회' '지방시대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는데,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라는 성격은 그대로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부총리급이 수장인 '국가균형원' 설립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들렸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예산 배분권이라든지 다른 부처의 정책을 기획, 조정할 권한을 갖추지는 못했어요. 오로지 '대통령의 힘'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초대 균형위 위원장인 성경륭 상지대 총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대통령의 관심이 떨어지면 자문위 힘도 빠지는 불안정한 상태로 20년을 지나온 것
이다. 그는 "부총리급이 맡는 부처를 하나 지정해 정책을 전담하게 하고, 청와대에도 수석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들까지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균형' 정책을 조율할 수 없다고 봤다. 실제 지방시대위원회의 '2024 균형발전사업 편람'에 따르면, 지난해 균형발전사업을 맡은 부처만 19곳에 달한다. 각 부처에서 파견 근무를 온 인력 중심 구조에서 오는 한계도 크다. 김종한 교수는 "다들 원래 근무지로 돌아가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내놓은 균형발전 정책 공약들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공약 내용은 더불어민주당의 '제21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에서 발췌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②무엇을: 동반 성장 위해 행정 통합 고민해야



강력한 지휘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N분의 1'식 사업 진행으로 정책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밑바탕 작업부터 손대야 한다
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잘 달리려면 신발이 제일 중요해요. 그런데 신발 살 돈은 한 지역에만 줄 수 있으니까, 그 돈을 균일하게 나눠 여러 지역에 양말 살 돈만 주는 식으로 정책을 펼쳐 온 거예요. 양말만으로는 잘 달릴 수가 없죠. 발전이 없는 겁니다."

박경현 센터장은 제한된 예산으로 효율을 높이기 위한 초광역권 정책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수도권과 대적할 만한 규모를 갖춘 권역을 만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공약과 같은 맥락이다. 큰 뭉칫돈을 한 권역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성장을 일으키고, 그 열매를 권역 안에서 분배하는 방식이다.

장기적으론
원활한 초광역권 운영을 위한 행정체계 개편
도 불가피하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추진했던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의 좌초는 곱씹어 봐야 할 사례다. 여야 정치 갈등도 걸림돌이었지만, 정책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대지역주의와 소지역주의가 부딪혔다.

"가령 50억 원 규모의 사업을 같이하자고 하면 부산과 울산, 경남이 각각 3분의 1씩 그 예산을 나눠 쓸 생각만 하는 거예요."

유기적으로 초광역권을 구상하고, 균형 잡힌 성장을 지속하는 데 행정 통합은 바탕이 된다. 지역의 인구 구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면서 행정안전부도 행정 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자문위원회가 낸 권고안이 담은 기초 전략들은 새 정부도 참고해야 할 부분
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권고안은 자치단체 통합·연계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방안이나 자치단체 계층·기능 고도화를 통한 행정 효율성 제고에 대한 방향을 담고 있다.

지난달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13조8,000억 원 규모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됐다. 새 정부는 오는 19일 국무회의에서 20조 원대의 2차 추경예산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③어떻게: "2차 추경, 최소 절반은..." 예산부터 잘 나눠 쓰자



결국은 예산이다. 성 총장은 새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20조 원 플러스 알파(+α)'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언급하며
"절반, 최소 10조 원을 균형발전 관련 정책에 투입해야 한다"
고 힘줘 말했다. 과감한 투자 없이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전환기에 이미 들어선 상황이라 시급함은 더 커졌다. 첨단 산업들이 수도권과 충청권에 쏠려 있는 현실에서, 관련 지원책들을 균형발전과 떼어 놓고 추진하면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천 기술력은 미국에 택도 없고, 중국이 이를 따라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균형발전 문제와 이 문제(산업 전환)를 결합하지 않으면 나라가 완전히 양극 분해될 겁니다. 전통적 강점이었던 제조업도 기반이 무너져 버릴 거예요."

이소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부원장도 같은 의견을 냈다. 또 과감한 투자와 함께
지방의 정책 실행력을 키우는 노력
도 강조했다. '중앙정부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벗어나 지역에 알맞은 정책들을 직접 지자체가 기획, 집행할 수 있게 해야 장기적으로 지역 체력을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예산 구조에서는 지방 정부가 사업을 주도할 여력이 없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의 총 예산 규모(326조 원)는 전년보다 약 16조 원 늘었으나, 재정자립도(48.6%)는 변화가 없었다. 1997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재정자립도는 2021년 처음 50% 아래로 떨어진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교부세 등 자체적으로 끌어모을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정부 부처에서 요구하는 기획 의도에 맞춰 사업 내용을 설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에요. 지역의 재정력도 더 키워 줘야 현장과 동떨어지지 않은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상> 청년, 지방과 헤어질 결심
    1. • ‘최고의 직장’을 떠날 결심 “너 여기서 계속 살 거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8210001385)
    2. • "떠난다면, 보내 줄 수밖에"... 청년도, 기업도, 경쟁력도 놓치는 지역의 속앓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000180002963)
  2. ② <중> 오답 속 청년을 부를 해법
    1. • 10년째 주말이면 고요한 혁신도시... "수도권 쏠림에 질식사할 지경"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14540005674)
    2. • '해수부 부산 이전' 포문 연 이재명 정부 균형발전, 성공 열쇠 3가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416270005449)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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