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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르 카티브의 집이 무너져 있다. 가디언 갈무리.

이란이 이스라엘에 보복 공습을 시작한 지 사흘째, 이스라엘에선 방공호 없는 마을에 미사일이 떨어지며 나라 안 차별을 또 한 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에는 공습에 대비해 공공 대피소와 지하방공호가 곳곳에 마련돼 있지만, 이 마을엔 공공 대피 시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을에는 아랍계 주민들이 살고 있다. 심지어 이곳에 미사일이 떨어지자 환호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며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13일 밤 공습 사이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가장 크고 번화한 하이파 항구를 노렸던 이란의 미사일 한 발이 인근 아랍계 주민들이 사는 오래된 마을 탐라에 떨어졌다. 이 미사일은 마을의 3층 석조 주택을 무너뜨렸고, 지역 교사인 마나르 카티브와 그의 대학생 딸 샤다, 열 세살 딸 할라, 그리고 시누이 마나르 디아브까지 4명이 사망했다. 카티브는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딸들을 데리고 집 안에 만들어 둔 두 곳의 ‘안전실’ 중 한 곳에 딸들과 함께 대피했지만, 미사일을 막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1층 안전실로 대피했던 시누이도 잔해에 깔려 숨졌다. 이웃 주민들도 충격파에 튕겨 나가며 부상자는 40여명에 달한다.

1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미사일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린 뒤 시민들이 대피해 있다. AP연합뉴스

이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내 유대계 주민과 아랍계 주민 간 안전 보호 조치의 격차 문제를 국제적으로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방공망을 갖춰 대부분 미사일을 격추하고 있으며, 전체 국민의 4분의 3이 지하 대피소로 접근 가능해 생존율이 높다. 하지만 이 마을은 대부분의 아랍계 마을과 마찬가지로 방공호가 없다. 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공공 대피 시설을 세워달라고 요청해 왔으나, 정부로부터 건설 예산을 지원받지 못했다.

무싸 아부 루미 탐라 시장은 “이스라엘 정부는 건국 뒤 아랍계 주민들을 위한 공공 대피 시설에 단 한 곳도 투자하지 않았다”며 “미사일이 전쟁의 일부가 된 만큼, 정부가 아랍계 시민을 위한 공공 대피 시설을 건설해 주길 바란다”고 읍소했다. 이스라엘에서는 법에 따라 1990년대 이후 건설된 건물엔 반드시 대피 공간을 만들도록 했지만, 이번 사태에서도 보듯 ‘안전실’은 하티브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나마 안전실이라도 있는 소위 ‘신축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3만7000명 인구 중 40%에 불과하다고 시엔엔은 보도했다.

지난 2023년 가자전쟁 발발 뒤 인권단체인 ‘이스라엘시민권협회’는 “가자전쟁 속 정부가 북부 지역의 방어 및 대피 시설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아랍계 마을은 여전히 예외여서 대응이 시급하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아랍계 주민들은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이 지역에 오래 살았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로, 여러 소수민족들이 있지만 아랍어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대부분 무슬림이며 기독교인도 있다.

마을 주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퍼진 영상이었다. 이웃 유대인 마을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미사일이 밤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빗나가 탐라 마을로 떨어지자 영상 속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 마을에 떨어졌다!”고 누군가 외쳤고, 다른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네 마을이 불타길”이라는 반아랍 구호를 반복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1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이 쏟아지는 동안 대공방어요격시스템인 ‘아이언돔’이 작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5일 영국 가디언은 “그날 떨어진 미사일은 이스라엘의 가장 보호받지 못한 땅으로 향했고, 단 한 순간에 이 나라의 깊은 분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현장을 찾은 가디언 기자는 주민들이 스스로를 “이곳에서 태어난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라고 소개했으며, “이란은 ‘테러의 근원’이다. 이란과의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녹음기를 끄고 난 뒤 기자를 찾아온 또 다른 이는 문제의 소셜미디어 영상을 거론하며 “제발 이 영상에 대해 기사화해 달라”고도 호소했다고 한다.

실제 이 영상은 이스라엘 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아마 라지미 의원(노동당)은 엑스(X)에 “인간도, 유대인도, 이스라엘인도 아니다. 수치스럽고 역겹다”고 비난했고, 아사프 자미르 텔아비브 부시장도 “역겹고 부끄럽다”고 밝혔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전했다. 중도파인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카티브 가족과 탐라 모든 주민은 미사일에 희생당한 이 나라의 국민이자 자매형제”라며 위로했다. 이스라엘에서 대통령은 상징적 역할이며, 실제 행정 권력은 모두 총리가 갖는다.

아부 루미 시장은 이스라엘 정부와 경찰에 이 영상을 신고했지만, 처벌이 이뤄질 거라고 믿진 않는다. 또 베냐민 네타냐후의 극우 연정이 집권한 뒤 증오 정치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이스라엘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증오 뿐이다. 여기엔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스라엘 정치에서 중도가 무너지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의지했던 몇 안 되는 보호 장치도 무너졌다. 정부 내 극우 정당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계 의원(하다시-타알당)인 아이만 오데는 “끔찍한 상황을 축하하는 이런 비극은 현 정부 정치와 연결돼 있다”며 “이 모든 것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존 전략이다. 네타냐후는 이란과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며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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