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어머니 부엌에서 시작한 화장품 가게를 세계 3위 뷰티 제국으로 키워낸 레너드 로더가 15일(현지시각) 9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에스티로더컴퍼니는 이날 성명에서 “선견지명이 있는 리더이자 업계의 상징이었던 명예회장 레너드 로더가 뉴욕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그의 별세 소식에 뉴욕타임스(NYT),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화장품 업계를 현대화하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만든 인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전했다.

레너드 로더 에스티로더 그룹 명예회장이 2018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엘튼 존 AIDS 재단 갈라에 참여해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1933년생인 레너드 로더는 1946년, 어머니 에스티 로더가 아버지 조셉 로더와 함께 설립한 작은 화장품 회사에서 경영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에스티로더는 4가지 스킨케어 제품이 전부인 작은 동네 가게였다. 레너드는 1958년 회사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그는 1972년부터 1999년까지 27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했다. 이 기간 연 매출 80만 달러(약 11억원)에 불과하던 회사는 그가 물러날 무렵 연 매출 40억 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으로 자랐다. 지난해 기준 에스티로더 연 매출은 177억 달러(약 24조 5000억원)에 달한다.

레너드 로더 이름 앞에는 늘 ‘립스틱 지수(Lipstick Index)’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01년 9·11 테러 여파로 미국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졌을 때, 유독 립스틱 판매량만 11%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그가 직접 고안한 경제 이론이다.

그는 여성 소비자들이 경기가 어려워지면 비싼 옷이나 가방, 보석을 사는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립스틱 같은 화장품으로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고 기분 전환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공황 시절에도 화장품 판매가 25% 늘었다는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CNN은 “립스틱 지수는 오늘날 불황기 소비 패턴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경제 용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2019년 미국 뉴욕 노드스트롬의 에스티 로더 매장. /로이터뉴스1

레너드는 에스티로더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소비자 경험’ 철학을 접목했다. 창업자 에스티 로더는 1940년대 미용실을 직접 찾아다니며, 소비자 손등에 일일이 크림을 발라주는 식으로 제품을 알렸다.

그는 “텔레그래프(전보), 텔레폰(전화), 텔어우먼(여성에게 말하라) 이 셋을 믿으라”고 주장하며 입소문과 체험의 힘을 강조했다.

레너드는 화장품 업계에 적극적인 샘플 전략을 처음 선보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국 전역 백화점 매장에 이 프로모션 방식을 적용해 업계 표준으로 만들었다.

블룸버그는 “레너드는 ‘구매 전 체험’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샘플을 무료 증정하는 프로그램을 화장품 업계에 처음 도입했다”며 “이 전략은 막대한 광고비 없이도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2023년 4월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 소비재 박람회에서 에스티 로더 부스를 참관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뉴스1

에스티로더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결정적 한 방은 공격적인 브랜드 확장 전략이었다. 그는 ‘에스티로더’ 단일 브랜드에 만족하지 않았다. 1960년대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아라미스’와 피부과 의사 자문을 거친 저자극 브랜드 ‘클리니크’를 직접 선보이며 사업 다각화를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는 인수·합병(M&A) 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이 시기 에스티로더는 캐나다 색조 전문 브랜드 ‘맥(MAC·1994년)’, 메이크업 아티스트 브랜드 ‘바비 브라운(1995년)’, 기적의 해저 크림으로 불리는 ‘라 메르(1995년)’, 친환경 브랜드 ‘아베다(1997년)’, 영국 향수 브랜드 ‘조 말론(1999년)’ 등 현재 에스티로더 그룹 핵심 브랜드들을 사들였다.

그 결과 에스티로더는 로레알, 유니레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 화장품 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 전 세계 150여개국에서 25개가 넘는 브랜드를 전개한다. 스킨케어부터 메이크업, 향수, 헤어케어까지 피부에 관한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1995년 주당 26달러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에스티로더 현재 시가총액은 약 243억 달러(약 33조 6000억원)에 이른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레너드는 개인 순자산이 156억 달러(약 21조 6000억원)에 달한다.

에스티로더 네덜란드 매니저 헹크 반 더 마크(왼쪽 두번째), 뮤지컬 스타 샹탈 얀젠(오른쪽) 등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바우에서 열린 핑크 리본 갈라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티로더는 20세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성장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화장을 치장이 아닌, 자신을 가꾸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셀프 케어 문화로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창립 철학 ‘모든 여성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Every Woman Can Be Beautiful)’는 1940년대 이후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에스티로더는 그의 아들 윌리엄 로더가 현재 이사회 의장을 맡아 3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에스티로더 매장. /트위터 캡처

예술계에서는 레너드 로더는 열정적인 예술 수집가, 자선가로 기억했다. 그는 2013년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 거장들 작품을 포함한 10억 달러 상당(약 1조3600억원) 입체파 미술 컬렉션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2020년 CBS와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경청했고, 친절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도왔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조선비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3143 李 대통령, 대미 관세 협상 두고 "최소한 다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게"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42 중국에 떠넘긴 희토류, 중국의 무기가 되다[사이월드]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41 이스라엘, 이란 국영방송 공습…“이란, 다급히 휴전 신호 보내”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40 청래파 vs 찬대파…1년짜리 당대표 두고 李팬덤 쪼개졌다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9 배민·쿠팡이츠 떨고 있니...李 대통령 공약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 속도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8 세계는 원전 회귀 중? “말로만 ‘원전’ 실제론 ‘재생에너지’ 중”[정리뉴스]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7 ‘통일교’ 샤넬백, 신발 교환 정황… 김건희 여사 특검 앞두고 입원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6 [영상] “웃돈에 주먹질까지”…중국 캐릭터 ‘라부부’가 뭐길래?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5 이 대통령, 캐나다 도착…G7 일정 시작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4 李대통령, G7 회의 열리는 캐나다 도착…정상외교 데뷔전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3 이 대통령 “특검 얼굴도 못 봐···감사원 그 양반, 공안검사로 기억”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2 이재명 정부 '여성' 실종… 여권 도로 '오륙남' 정치로 회귀 우려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1 [속보]이란, 이스라엘에 미사일 · 무인기로 재 보복공격<이란TV>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30 [단독] "집값 띄울라" 우려 일자...금융위, 업무보고에 '지분형 모기지' 배제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9 캐나다 인디언 환영 받은 이재명 대통령 [현장 화보]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8 [단독] 국가경찰위, 도검·석궁 등 소지 허가·갱신 때도 “정신질환 진단서 제출”···범죄 감소 효과 있을까?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7 트럼프도 쩔쩔맨 中 희토류, 선진국 환경 신경쓸 때 장악해 무기화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6 [올드&뉴] 이과생의 문사철行 속도…이 판국에 AI 인재 육성?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5 [속보]이재명 대통령, 캐나다 도착···“관세협상? 최소한 불리하진 않아야” new 랭크뉴스 2025.06.17
53124 공식 출범한 국정기획위…위원들 '입단속' 나섰다[Pick코노미] new 랭크뉴스 202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