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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필사본 출간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지난 1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정혜신 박사는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절박하고 힘겨운 순간에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이라고 했다. 정지윤 선임기자


외로움과 고립감은 ‘세계의 급소’

충고·조언·평가·판단만 안 해도

상대방에 대한 공감의 절반 시작


가장 절박한 순간 필요한 건 수용

속마음 나눌 꼭 한 사람 필요한데

관계 연결해줄 사회안전망 절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배우자, 친구, 회사 동료, 자녀 등과 어떻게 대화하고 행동해야 서로에게 의지, 위로가 되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지 답을 찾고 싶어 한다. 감정을 노출하거나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가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감추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결과로 상당수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마음은 지독한 외로움과 불안 등으로 병들어 있다.

지난 30여년간 상담실에서, 거리에서, 사회적 참사 피해자부터 기업 CEO, 정치인, 일상 속 시민들까지 수많은 이들의 마음 치유에 힘써온 정신건강의학과 정혜신 박사(63)는 “감정은 존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50만부 이상 판매된 <당신이 옳다>의 필사본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해냄) 출간을 계기로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난 그는 “존재(감정, 느낌)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지 못하면 심한 결핍, 나아가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다”고 했다. 외모, 권력, 재력, 재능, 학벌은 물론 가치관이나 성향, 취향 등도 존재를 둘러싼 외곽 요소일 뿐, 한 사람이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스펙은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마음이 어떠냐?’는 질문 하나가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곧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공감’에 대한 행동지침이며, 이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다고 한다. “가장 절박하고 힘겨운 순간에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이라는 것이다.

“2018년 펴낸 <당신이 옳다>는 서울시와 2013년부터 8년간 진행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힐링’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에요. 상처받은 사람을 교육해 다른 상처받은 이를 릴레이로 치유케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그때 만난 시민이 5000여명에 달했어요. 최근 필사본을 펴낸 이유는 계기가 있었어요. 지난 정권 때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지인이 이 책의 문장들을 필사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해요. 저 역시 12·3 불법계엄 후 불안에 시달리다 같은 방법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효과를 봤어요.”

흔히 증오, 질투,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을 갖거나, 이를 타인에게 토로하는 것은 미성숙한 행동으로 치부된다. 정 박사는 이를 “거대한 심리적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내 감정을 자책하고 억지로 누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그 같은 감정이 생긴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기에 우선 내 감정에 주목하고 마음을 따라 들어가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충조평판 없이 묻고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숨통이 트이면서 스스로의 마음도 정돈된다.

그는 외로움, 고립감이야말로 “세계의 급소”라고 했다.

“고도화되는 문명사회에 살면서 본질(존재)과 동떨어진, 예컨대 엄마는 아이의 존재 자체보다는 투자 대비 학교 성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남편도 아내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경우가 흔해요. 그러니 모두가 외롭죠. 제가 북토크를 하면서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 ‘당신, 괜찮아요?’ ‘마음이 어때요?’라는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쏟는 분이 많았어요. 다른 곳에선 다들 방긋방긋 웃으며 씩씩하게 사는 분들이겠지만 계속 눈을 맞추며 존재에 집중하는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렇게 반응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기도 하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더구나 맞벌이 부모 밑에서 외동으로 자라 ‘학원 뺑뺑이’ 도느라 친구와 뛰어노는 경험조차 빼앗긴 아이들, 고립·은둔 청년 및 1인 가구 증가, 모든 인간관계를 효용성 관점에서 맺고 끊으라고 부채질하는 사회 분위기 등은 이런 암울한 현실을 더욱 가속화한다. 정 박사는 “그 속에서 모두가 외롭고 무력하지만 그로 인한 깊은 ‘빡침’이 어떤 순간에 여러 가지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묻지마 범죄, 자살도 여기에 해당한다.

“공감해주는 꼭 한 사람은 있어야 하는데, 가까운 데 없을 수 있잖아요. 가령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퇴소한 자립준비청년들의 경우 간절히 바라는 게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의논할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부모가 있어도 그런 존재가 못 되는 경우도 많지만, 이 아이들의 경우는 아예 싹조차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공감해줄 사람이 없는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그런 관계가 가능한 사람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게 사회안전망이라고 생각해요.”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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