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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조합과 입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조경석. 주민 제공.


“흉물스러운 돌 때문에 순찰을 돕니다. 한 개 6600만원짜리 돌입니다.” (서울시 동대문구 아파트 주민 A씨)

“아파트 옥상에 군사시설이라니요. 주민들 몰래 설치하려고 한 게 제일 화가 나요.” (서울시 강북구 아파트 주민 C씨)

재개발로 들어선 서울의 일부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조경·시설물을 놓고 재개발조합과 입주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아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아닌 재개발조합(이하 조합)이 아파트를 운영하는 와중에 입주민들은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속을 끓이고 있다. 이에 입주가 시작되면 재개발 조합에서 입주자대표회의로 아파트 운영 주체가 빨리 넘어갈 수 있도록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돌’ 때문에 ‘순찰’까지 도는 사연

조경석 설치 문제로 갈등이 불거진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에 지난 10일 주민들이 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올해 1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 최근 입주민 수십 명이 ‘순찰대’를 꾸려 아침, 저녁으로 단지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있다. 아파트 조경에 ‘수상한 변화’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단지 명칭을 새긴 커다란 조경석이 이 아파트에 처음 나타난 건 지난달 23일이다. 기존에 조성한 화단을 파헤치고 세운 조경석의 모양새와 붓글씨체가 신축 아파트 단지와 어울리지 않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다.

조경석 설치는 재개발 조합이 계획했다. 3개를 먼저 설치한 데 이어 20여개를 더 들여올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 여론은 들끓었다. 반대 여론에도 조합은 지난달 29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조경석을 설치할 용역 업체 선정을 의결했다. 자연석 30개를 20억원에 설치하는 조건이었다.

조경석 설치에 반대하는 조합원들과 대의원회의 참여 권한이 없는 일반 분양자들은 불만이 터트렸으나 조합 측은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조합 측은 지난 9일 입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보내 “아파트 시설, 조경 특화 공사는 준공 후에는 할 수 없다”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입주자 돈을 거둬서 하거나 수년 후 입주자의 관리비 충당금으로 해야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 A씨는 “돈을 주고 가져가라고 해도 거절할 돌을 하나에 6600만원을 들여 사 온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이번 일로 조합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조경석이 미관상 나쁠 뿐 아니라 안전도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입주민 B씨는 “기반도 제대로 다지지 않고 만지면 부스러지는 흙 위에 거대한 바위를 설치해둔 상태라 강풍이나 폭우가 오면 쓰러질까 걱정된다”며 “안전 문제인 만큼 구청이 개입해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동대문구청이 이미 설치된 조경석 3개 가운데 기부채납지에 설치된 1개는 철거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려 15일 철거됐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사유지에 설치된 나머지 조경석은 동대표 등 선출 후에 입대의 차원에서 주민 의견을 모아 결정하도록 행정지도했다”고 말했다.

조합이 ‘쉬쉬’한 군사시설 설치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옥상의 대공방어시설 공사 현장. 주민 제공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북구의 또 다른 아파트. 이곳에선 ‘군사시설’ 때문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옥상에서 벌어지던 ‘의문의 공사’가 대공방어시설(적의 공중 공격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시설) 설치 작업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이 아파트는 입주 1년이 다 돼가도록 준공 승인을 받지 못했다. 재개발 조합이 인허가 과정에서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에 약속한 군사시설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공 승인 만료 기한은 오는 8월이다.

아파트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높이’ 때문이다. 서울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라 ‘대공방어 협조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 구역에 77~257m보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 심의 결과를 반영해 건축 허가를 받아야 한다.

조합은 재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하던 2020년, 건축심의 과정에서 수방사로부터 아파트의 설계상 높이가 군이 허용하는 건축물 높이를 초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합은 심의를 통과하고 건축을 진행하려면 아파트의 높이를 낮추거나 군사시설을 설치하라는 군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했다.

조합은 군사시설을 설치하기로 하고 2021년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이같은 군사시설은 여의도의 IFC몰, 파크원 등 서울 일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옥상에도 설치돼 있다.

문제는 이듬해 진행된 아파트 입주자모집공고 때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입주민들은 조합이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조합 측은 기밀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조합장 D씨는 “아파트 분양 때 군사시설 설치 사항을 알리는 게 필수는 아니고, 군에서 비공개를 요청한만큼 이를 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강남구의 다른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군사시설물 관련 사항이 안내된 사례가 이미 있다고 반박한다.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옥상의 대공방어시설 설치 현장. 주민 제공


입주 후 반 년 이상 지난 시점에 공사를 진행하면서 제대로된 설명을 하지 않은 점도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키운 요인으로 보인다. 옥상을 찾았다가 설계 도면을 본 일부 주민들은 도면에 표시된 ‘탄약고’ 등 군사 용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입주 1년이 다 되도록 입대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점도 주민들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지난 2~4월 투표를 거쳐 입대의 구성이 완료됐지만, 선거 절차와 관련해 조합이 일부 동대표들에게 소송을 제기하고 구청도 임원 선거 과정의 위법 사항에 대한 추가 소명을 요구하면서 분쟁의 불씨가 남아있다.

입주민 E씨는 “경비·관리업체 선정 등 단지 환경을 위해 해결할 일이 쌓여있는데 조합과 입주민대표회의 사이 갈등이 계속되면서 아파트 관리 업무 추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강훈 참여연대 운영위 부위원장은 15일 “재개발 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입주자들과는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며 “아파트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려면 입주 후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운영을 끌고 나갈 수 있도록 감독 권한이 있는 기초자치단체가 신속한 조합 청산과 입대의 구성을 돕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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