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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를 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대선 막바지였던 지난달 28일, 이재명 당시 후보는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다소 갑작스러운 발언이었는데, 속내는 이런 뜻이었습니다.

· 무엇을 정리? : 기획재정부 조직을,
· 어떻게 정리? : 예산 기능을 분리해서,
· 언제 정리? : 되도록 신속하게…

사실 기재부 '정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70년 넘은 정부 조직에서 여러 번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 뗐다 붙였다, 뗐다 붙였다…

기획재정부는 이름 그대로 기획재정을 담당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장·단기, 그리고 국내·대외 경제정책을 구상하고 (기획), 세금을 걷어 예산을 짜는 (재정) 일을 합니다.

기획재정부 정원은 1,087명. 151명인 재외동포청, 234명인 법제처와 비교하면 초거대 부처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1948년 7월 대한민국 정부의 첫 정부조직법이 나옵니다. 당시에는 재무부와 기획처라는 두 부처였습니다.

1961년 기획처가 경제기획원으로 확대 개편됩니다. 산업 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무 부처가 여기였습니다.

재무부는 화폐와 금융, 세제 등 말 그대로 재무 정책에 집중했습니다. 이 밖의 경제정책과 예산은 경제기획원 몫이었습니다. 이렇게 33년이 흐릅니다.

1994년 큰 변화가 옵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집니다.

1998년 다시 쪼갭니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뉩니다. 이렇게 10년 유지됩니다.

2008년 또 바뀝니다. 기획재정부로 재통합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17년이 흘렀습니다.

스티커도 아니고 포스트잇도 아닌데, 뗐다 붙였다, 뗐다 붙였다…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림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EPB vs 모피아, 라이벌의 탄생

재밌는 점은 떼든 붙이든, 그 조각은 늘 일정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레고 블록 같았습니다.

재무(재정)가 한 조각, 기획 예산이 또 한 조각. 쪼개든 합치든, 이 구분은 늘 유지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종의 파벌이 생깁니다.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모피아EPB입니다.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와 같이, 뭘 먼저 부를지로도 신경전이 상당한 숙명의 라이벌 관계이기도 합니다.

모피아는 재무 라인입니다. 재무부의 영문 이름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를 합쳐 모피아라고 부릅니다.

EPB는 경제기획원의 영문 이름(Economic Planning Board, 경제기획원)을 그대로 줄인 약칭입니다.

검찰에 특수통, 공안통, 기획통이 있고, 검찰총장이 어느 쪽에서 배출되느냐에 대한 설왕설래와 비슷합니다.

모피아 출신 인사가 장관이 되면, 차관은 EPB 인사를 앉히는 식으로 안배를 맞추기도 하고, 반대로 어느 한쪽이 '싹쓸이'를 했다며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업무 특성상 미묘한 성향 차이도 있습니다. EPB는 대체로 중장기 경제정책 기획을 주로 맡고, 모피아는 금융과 세제가 전문 분야다 보니 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모피아는 땅을 살피고 EPB는 하늘을 본다", "모피아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축구, EPB는 개인의 특성을 자유롭게 살리는 야구"라고들 합니다.

보수 정부냐 진보 정부냐에 따라 중용 여부도 갈립니다. 대체로 진보 정부는 EPB를, 보수 정부는 모피아를 많이 기용한 경향이 강했습니다.

물론 모피아 출신이라고 다 같으며, EPB 출신이라고 다 같겠습니까. 관료 개인마다 다른 게 자연스럽겠습니다만, 이런 구분 짓기가 통용될 정도로 두 레고 조각의 라이벌 구도는 선명합니다.

■ "기재부 나라냐" 이제 안 들릴까

국회나 정부 부처 사람과 이야기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얘기, 이런 것들입니다.

"기재부 때문에…", "기재부 눈치 보느라…", "기재부가 안 된대서…", 혹은 반대로 "기재부가 하래서…"

예산 편성권뿐 아니라 공공기관 평가 등 많은 권한과 존재감을 가진 부처이다 보니, 많은 정책 주체는 종종 '기재부의 벽'에 부딪힙니다.

국정의 이인자, 국무총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장 유명한 일화,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어렵던 2021년입니다. 당시 정부는 거리두기 정책에 협조했던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이를 법제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재부 1차관이었던 김용범 현재 정책실장이 '그런 해외 사례가 없다'고 하자,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고 질타했다는 이야깁니다.

[연관 기사] 정 총리, 기재부 질타하며 ‘법제화’ 지시…속도 내는 손실보상 (2021년 1월 21일, KBS1TV 뉴스 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00412

이 일화의 주인공이었던 김용범 전 1차관이 기재부를 쪼개는 정부의 정책실장이 된 것도 일종의 아이러니이긴 합니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실 주관으로 열린 '기재부 등 경제부처 개편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나왔습니다.

당시 발제를 맡은 하태수 경기대학교 행정학전공 교수는 '가외성'을 들면서, "국방이나 공공경제처럼 담당 조직이 오작동하거나 오류를 발생시킬 경우, 국가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기능들은 의도적으로 겹치거나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로 나뉘어져 있던 체제에선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성과가 있었지만, 재정경제원으로 합쳐졌을 당시엔 1997년 IMF 경제위기가 발생했단 겁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도 "현재 재정 운영이 지나치게 행정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재정 운영 거버넌스의 합리적 개선을 위해선 예산 부서의 조직 개편과 재정 업무 프로세스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역할 분담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하 교수는 다소 기능이 겹치는 것처럼 보여도 상호 견제를 위해 기획재정부 정책과 예산 기능을 국무총리 산하 '기획예산처'로 분리하고, 남은 기능은 '재정부'로 개편하자는 안을 내놨습니다. 재정부에서 외환을 관리하고, 한국은행에서 통화량을 관리하는 등 공공경제 분야를 세 겹으로 다루자는 구상입니다. 박 교수도 예산 편성을 대통령 직속으로 편제하자고, 구체적으론 정책실장 산하에 재정 예산 수석을 두고 중장기 재정 정책과 예산 편성을 총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밖에 하 교수는 또 현재 국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장기 경제 전략을 수립할 기관이 부재"한 데에 있다며, 60~90년대 초의 경제기획원 같은 기구들이 필요하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박 교수도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을 "대통령 직속의 국가미래위원회를 신설해 이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정부 조직 개편의 세부 그림은 16일 현판식을 여는 국정기획위원회가 그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기재부 개편에 대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이미 국회에 두 건 발의돼 있습니다. 모두 예산 기능을 분리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오기형 의원 안 : 국무총리 소속 기획예산처(예산 기능) 신설, 재정경제부 명칭 변경(경제 기능)
허성무 의원 안 : 현행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재정 집행)와 기획예산부(정책 기획)로 분리

- 김인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기재부 등 경제부처 개편 토론회 자료집 중 -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 안을 중심으로 보면,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과 집행을 맡고, 나머지 중·장기 국가발전전략과 경제·재정 정책 수립과 외환·금융·세제는 모두 재정경제부에서 맡자는 내용입니다.

대통령 공약대로, 현재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이 떨어져 나갈 것은 매우 유력해 보입니다. 그것이 대통령 직속 기관이 될지, 또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이 될지 정도만 남은 듯합니다.

앞으로 "기재부의 나라냐"는 볼멘소리는 사라질까요. 아니면 기재부 대신 OOO 부처가 다시 득세하게 될까요.

(그래픽 :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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