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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이던 내가 사라진 기분”

32살 여성 온라인 에세이 작가가 있습니다. 자신의 프랑스 유학 생활, 건강한 먹거리 등에 대한 단상을 글과 그림으로 독자와 공유합니다.

그런데 게시물 중 ‘우울증’ 관련한 내용이 다수 눈에 띕니다. 활동명이 ‘미엘라’인 작가는 중학교 때 당한 학교 폭력, 대학 유학 시절 부모님의 잇단 별세 이후 우울증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털어놓습니다.

KBS 기획취재팀은 청년 우울증 환자를 찾던 중 ‘미엘라’에게 섭외 요청을 했습니다. 작가는 인터뷰에 동의했지만 직접 만남은 사양했습니다. 아직 대인기피증이 남아있어 사람을 대할 때 두려움과 초조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대신 작가는 취재팀이 보낸 질문에 혼자 답변하는 영상을 찍어서 보내왔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으로만 느껴지고 이 세상에 내가 원래 없던 것처럼 나를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반짝반짝이던 제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고, 제 정신이 건강하지 못했고, 저 혼자 있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그런 상황 속에서 우울증은 더 심해졌던 거 같아요.”

현재 우울증을 치료 중인 또 다른 여성은 대면 인터뷰에 응했지만 익명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29살인 이 여성은 대학생이던 20대 초반 어머니의 암 투병과 여러 일들이 겹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자해 충동이 심했고, 제일 심할 때는 밖에 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무기력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너무 하기 싫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정말 누워서 일어날 수 없는 게 꽤 지속이 됐어요. 그래서 그때 휴학을 했어요. 글씨를 못 읽어서, 글이 안 읽히더라고요. 사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었으니까, 일상생활도 잘 안됐고요.”

■청년 우울증 10년 만에 225% 증가…“몸보다 마음이 아파”


KBS 기획취재팀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10년 치 만성질환 통계를 분석했습니다. 2014년 11만 명이던 청년기(19~39세) 우울증 환자 수가 2023년 36만 명이 됐습니다. 10년 만에 225% 증가한 겁니다. 우울증은 2020년부터 계속해서 청년기 만성질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14년부터 3년간은 간질환이, 2017년부터 3년간은 고혈압이 1위였습니다. 우울증은 2014년 5위에서 차츰 순위가 올라 2020년부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아픈’ 청년, 원인이 뭘까요?

■“과도한 사회적 경쟁으로 스트레스 누적”

우울증 발병에는 개인적인 원인과 함께 청년기의 특성, 경제적·사회문화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김선영 이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입니다.

“단기 계약직이나 플랫폼 노동시장의 확대로 청년기들이 사회 초년생이니까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게 되고, 전세난이나 월세 급등 때문에 주거 불안정이 생기다 보니까 청년 우울증이 증가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에 디지털 환경도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SNS에서 타인의 좋은 모습만 보고 본인과의 격차를 확대 해석한다든지, 아니면 온라인 위주의 단절된 인간관계 때문에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돼서 청년기 우울증이 급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울증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발견됩니다. 세계 평균 우울증 유병률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증가합니다. 우리나라는 20~30대 유병률이 70대만큼 높습니다. 스트레스가 우울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걸 고려하면, 한국 청년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영섭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은 사회적 경쟁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청년기는 계속 뭔가 더 성취해야 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해야 하고, 이런 요인들이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청소년기부터 과도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보호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신체적 활동, 사회적 교류 이런 것들은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청년기에서 우울증이 더 늘어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로움은 우울증의 강력한 촉발 요인”


배성만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청년의 유년기와 성인기 경험, 사회적 고립, 외로움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유년기와 성인기의 불행한 경험, 사회적 고립, 외로움은 우울증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특히 외로움은 우울증과 가장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냈습니다.

미엘라(활동명)/32세
“외로움은 우울증의 좋은 재료가 되는 거 같아요. 음식을 만들 때 꼭 있어야만 하는 재료가 하나씩은 있잖아요. 그런 핵심 재료처럼 외로움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김선영/이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청년기 외로움은 우울증의 강력한 촉발 요인이고 악화 요인이고 위험 요인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 이유는 청년기 자체가 어떤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시기이기 때문에 외로움이 한번 발생하면 심리적 고립감이나 자존감 저하로 훨씬 더 쉽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다”…빠른 치료가 정답

만일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흥미를 잃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울증 환자와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빠른 치료’를 권합니다.

항우울제 치료와 함께 부정적인 인지 패턴을 교정하는 인지행동 치료,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다루는 대인관계 치료, 청년기의 자존감 회복 훈련 등 적극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미엘라(활동명)/32세
“우울증은 혼자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병이니까 꼭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치료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더 큰 고통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저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되게 싫어하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독이 되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울증 치료 중/29세 여성
“상담이 훨씬 더 많이 도움이 됐어요. 우울증 속에 있으면서 ‘인지 왜곡’이라고 하죠. 그냥 A를 A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A라는 상황이 있으면 그걸 더 확대 해석한다든가, 파국적으로 생각한다든가, 그런 경향성이 있는 걸 스스로는 몰랐는데 상담받으면서 ‘아,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이것 때문이구나’ 하고 인지 왜곡을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김선영/이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청년기는 치료를 하면 굉장히 예후가 좋고 빠른 반응성을 보이기 때문에 빠른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문가들은 조기 발견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대학교와 군대, 직장 등 청년들이 밀집하는 곳에서 정기적인 우울 척도 검사를 통해 우울증을 조기 발견하고, 심리 상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도 사셨으면 좋겠다”

‘미엘라’는 30살이 되면서 우울증이 인생을 망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꾸준한 약물 치료와 상담, 운동을 통해 우울증을 대부분 극복했습니다. “우울함이 많이 사라지고 일상의 행복을 느끼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한 창작자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취재팀과 만난 29살 여성도 꾸준한 병원 치료를 통해 이제는 일상을 회복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생활도 무리 없이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을 겪는 또래 청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취재팀에게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도 사셨으면 좋겠다, 죽지 않는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끝이 있으니까 그걸 믿고 지내면 터널이 끝나 있는 순간이 오니까 죽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자료분석: 이지연, 윤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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