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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근우

김성모의 만화 <걸푸> 중 한 장면. 작중 “날 보고 돼지라고 했었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 돼지라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라는 문장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밈으로 사용되고 있다.


명대사 ‘밈’ 제조기인 만화가 김성모의 유명한 대사 중엔 이런 게 있다. “전에 날 두고 돼지라고 불렀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날 돼지라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우선 사람에게 돼지라고 놀리지 말자는 걸 당부하고 부연하자면, 요즘 자신 있게 차별적 발언을 내뱉는 이들의 반응을 보면 인용한 대사가 떠오른다. ‘날 두고 차별 차별주의자라고 불렀지? 난 그 말이 좋아, 사실이니까.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날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최근 단 사흘 간격으로 벌어진 전라도 비하 논란을 보라.

지난 5일 먹방 유튜버 잡식공룡은 이번 대선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 비율로 투표한 전라남도에 대해 ‘전남 X랄 났음 ㅋㅋㅋㅋ’라고 쓴 글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나라 진짜 나눠야지. 같이 살 필요가 없다. 여행이나 비자 받고 가면 될 듯’ 따위의 전라도 혐오 발언이 담긴 게시물에 대한 캡쳐본 역시 공유했다. 이에 대해 누군가 ‘일베충이세요? 왜 비하하셨나요’라고 하자 적반하장으로 ‘(전)라도인임? 긁혔나보네’라고 대거리했다. 8일엔 방콕아시안게임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조희연이 스레드의 5·18 북한 간첩 개입 음모론 게시물에 ‘제가 맨날 하고 다니는 말. 5·18은 폭동이다! 반항 정신으로 똘똘 뭉친 폭동! 근데 무슨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느니 어쩌느니. 한숨만 나옴’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계엄에 대항한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발언에 누군가 ‘선을 넘었다’고 지적하자 그는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나, 선을 넘는 발언은 안 된다고? 그 선은 누가 정하나. 네가 정하나’라며 뻗댔다. 두 사례 모두 패턴이 흡사해 어디서 단체로 리박스쿨 극우 원데이 클래스라도 듣고 온 건가 싶다. 근거도 당위도 논리도 없는 전라도를 향한 온라인 혐오 ‘밈’을 토해내고, 극우적 세계관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회피하는 패턴. 떳떳하게 차별주의자 인증을 하고선 왜 스스로를 부정하나. 잡식공룡은 ‘응 일베 맞아, 전라도는 비하해도 됨’이라 답해야 했고, 조희연은 정치적 견해 차 운운할 것 없이 ‘내가 맞고 너는 좌파에 세뇌되었다’고 답하면 됐다. 김성모 만화 캐릭터처럼, 차별주의자인 게 사실이면서 차별주의자라고 불리는 건 왜 못 받아들이나.

이 둘이 논란 이후 사과하는 방식 역시 동일한 패턴인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혐오 발언은 언어의 형태를 띄지만, 생각을 언어로 구조화하는 발화라기보다는 특정 상황을 보면 준비된 ‘밈’을 반사적으로 꺼내 드는 코드화된 반응이다. 그들의 뇌는 전라도와 광주라는 키워드를 보는 순간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민주당 몰표-빨갱이 동네-여권 준비하자, 5·18-간첩 개입 폭동-5·18 정신은 북한 추종. 그들은 차별과 혐오에 대한 지적에 대해 일종의 자기 부정을 하지만, 이 역시 차별이라는 평가를 감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어쨌든 주체적으로 거부하는 것보다는 코드화된 반응에 가깝다. 비판에 대해 ‘긁혔냐?’라고 하는 건 반론하는 대신 반론할 가치가 없는 감정적 반응으로 격하하는 것이고, ‘선을 누가 정하느냐’ 되묻는 건 도덕적 질문에 도덕적 상대주의로 회피하는 것이다. 이 역시 온라인 커뮤니티와 한국형 키보드배틀이 만들어낸 나름의 필승 ‘밈’이다. 즉 잡식공룡과 조희연의 문제는 지역 혐오를 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본인들의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문이 그 모양이다. 잡식공룡은 “최근 제가 올린 게시물에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과 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내용이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분들께 불편을 끼쳐 드렸습니다”라고, 조희연은 “5·18 운동에 대해 폭동이라고 언급한 댓글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이 많으신 듯합니다”라 했다. ‘치우친’ 게 아니라 틀린 것이고, ‘불편을 끼친’ 게 아니라 분노하게 한 것이며, ‘폭동이라고 언급한’ 게 아니라 폭동이라 모욕한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사과라기보다는 역시 온라인의 흔한 책임 회피용 답안을 반복하는 수준이다.

해당 사과문은 변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미 무책임하고 조금의 공감도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패했지만, 그들이 그저 자기 잘못을 회피하려다 망한 사과문을 썼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아니라, 무엇을 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로 발화된 언어를 사회적 대화의 맥락에 기입할 땐 그것이 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결과적으로 맞든 틀리든 최소한의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틀렸을 때 교정하거나 책임질 수 있다. 그게 사회화된 주체의 언어 활동이다. 언어를 언어가 아닌 ‘밈’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이들에겐 그런 게 불가능하다. 그들의 세계엔 소통이 없다. 단지 반응이 있을 뿐이다. 반은 재미 반은 아니꼬움으로 전라도 차별 ‘밈’을 던지지만, 그 ‘밈’이 상식적 세계에서 어떤 역사적 맥락으로 해석되고 어떤 구체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상호주관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무지를 감안해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앞서 두 사람의 문제를 지역 혐오를 한 것과 본인들의 언어가 없는 것이라 했지만 이 둘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의 구체적 의미를 상상할 수 없다는 건 언어가 불러올 구체적 감정과 상처를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밈’에 의탁해 언어의 사회적 성격을 포기할 때 그 귀결은 온라인의 소시오패스가 되는 것뿐이다.

잡식공룡과 조희연의 명백한 지역 혐오에 대해, 그러니까 온라인 세계에 속한 우리 모두의 책임과 잘못이라는 식으로 뭉개려는 건 아니다. 잘못은 잘못한 개인이 책임질 문제다. 다만 뇌에 힘을 주고 살지 않으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구체화해 표현하려 노력하는 대신 ‘밈’ 혹은 온라인 방언을 반사적으로 주절대다가 그런 소시오패스가 되진 말자고 제언하고는 싶다. 지역 혐오 비판에 대한 ‘네다홍(네, 다음 홍어)’ 같은 전라도 혐오 ‘밈’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접할 수 있는 그 수많은 반사적 반응을 보라. 싫어하는 정당에서 성범죄 의혹이 터지면-여성 단체는 하는 일이 뭐냐, 윤석열의 내란 시도가 비판받으면-그럼 민주당 입법 독재는요?, 여성 대상 강력 범죄에 대해 여성을 죽이지 말라고 호소하면-이은해랑 고유정도 있잖아, 라는 반응들. 그 빈약한 언어와 키보드배틀에서 승리했다는 과잉된 자의식을 보며 또 다른 온라인 소시오패스의 등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심지어 예시 중 마지막 사례를 실제로 발화한 한 남성 정치인은 이번 대선에서 8퍼센트 넘게 득표했다. 잡식공룡과 조희연의 잘못은 개별적으로 책임질 일이지만 그런 이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공적 언어에 대한 의식 없이 혐오의 ‘밈’을 배설한 건 우연이 아니다.

서두에 인용한 김성모 만화의 대사에 이어지는 상대방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무…무슨 소리야!” ‘밈’ 제조기인 김성모 세계관에서도 이 정도 상식적 반응은 나온다. 상식의 언어를 복원하기 위해선 반사적인 헛소리에 대해 계속해서 되물어야 한다. 대체 무슨 소리냐고.

<위근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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