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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전자의 트윈워시 세탁기(왼쪽, LG 전자 홈페이지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업 리더들과 가진 ‘미국에 투자하라’ 라운드 테이블에서 연설하는 모습. (A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냉장고·세탁기·건조기 등 가전제품에 사용된 철강에도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 현지생산’으로 귀결된 10년간의 한·미 세탁기 분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분쟁 끝에 삼성·LG는 세탁기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이전했는데, 그 덕에 미국 내에선 16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에서 그만큼의 일자리가 증발됐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가전업계로까지 확장함에 따라 국내 제조업 공동화·고용감소를 막을 대책이 더욱 절실해졌다.

■가성비가 좋았을 뿐인데…

한·미 세탁기 분쟁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에 미국 세탁기 시장은 ‘월풀 독주체제’였으나 그 아성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위협하기 시작했다. 세탁칸 두개가 분리된 세탁기 등 삼성·LG전자가 다양한 고급 기능을 추가한 모델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주로 나왔다. 그러나 월풀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삼성·LG 급부상 이유를 ‘저렴한 가격’에서 찾았다.

월풀은 2011년 삼성·LG가 세탁기 덤핑을 하고 있다며 미국 상무부에 제소했다. 덤핑이란 정상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대량 수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미국 정부는 조사에 나섰고, 2013년 2월부터 두 기업의 세탁기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렸다. 관세율은 삼성전자 9.29%, LG전자 13.02%였다.

두 기업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한편 대미수출용 세탁기의 생산기지 상당 부분을 중국으로 이전했다. 이전까지 삼성과 LG는 대미수출용 세탁기를 각각 전남 광주, 경남 창원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이후 3년간의 판정을 거쳐 WTO는 2016년 9월 한국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엔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두 기업의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새롭게 물리기 시작했다. 삼성·LG는 세탁기 생산기지를 태국, 베트남으로 재이전하며 대응했지만 더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2017년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듬해 두 기업 세탁기 세이프가드(수입 제한 조치)를 발동한 것이다. 120만대 쿼터에 한해 최대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쿼터 초과 물량에 대해선 최대 50%의 관세를 적용하는 조치였다. 캐비닛, 바스켓 등 부품에도 별도 관세를 물렸다.

■“내가 없었다면 미국의 (세탁기) 회사들은 다 망했을 것이다”

미국이 끈질기게 ‘관세 폭탄’을 투하한 끝에 결국 삼성·LG는 미국 생산을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LG전자는 테네시주에 세탁기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한국 측은 미국의 세이프가드에 대해서도 WTO에 제소해 2023년 승소했으나 이미 생산시설이 미국으로 옮겨진 뒤였다. 10년에 걸친 한·미 세탁기 분쟁은 결국 ‘미국 생산’으로 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삼성·LG 세탁기의 현지 생산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웠다. “한국산 세탁기가 덤핑 판매되고 있어 50%에서 100%까지 관세를 물렸다. 내가 없었다면 미국의 (세탁기) 회사들은 다 망했을 것이다.”(지난해 12월 NBC와의 인터뷰)

일자리 창출 효과를 홍보하기도 했다. “우리는 수천 개의 일자리, 수만 개의 일자리를 구했다. 그들은 세탁기를 덤핑해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관세를 부과하자 그들은 (미국으로 와서) 성공적인 사업체로 거듭났다.”(지난 2월 미국 공화당 연방하원 콘퍼런스)

한·미 세탁기 분쟁 끝에 미국의 일자리가 늘었다는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니다. 2019년 시카고대의 ‘미국 무역 정책의 생산, 이전 및 가격 효과: 세탁기의 경우’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삼성·LG가 미국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창출한 일자리는 약 1600개에 달한다.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그만큼의 일자리를 앗아갔다는 얘기다.

다만 해당 연구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물가를 끌어올려 미 소비자들에게 15억달러의 손실을 입혔다고도 지적한다. 일자리 하나당 81만7000달러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는 것이다.

■가전도 때리기 시작한 트럼프…속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전제품으로 ‘관세전쟁’의 전선을 확장한 속내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품목관세’와 ‘상호관세’라는 두 개의 지렛대로 무역상대국을 압박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생산시설 현지화를 이끌어낼 방침이었다. 품목관세의 경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선 3월12일부터 25%를 부과하다가 이달 4일부터 50%로 인상했다. 아울러 완성차는 4월3일부터, 자동차 부품은 5월3일부터 각각 25%의 관세를 적용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 관세를 두 배로 올린 시점(지난 4일)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라는 지렛대를 잃은 때와 맞물린다. 앞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연방무역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해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항소로 항소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상호관세 효력이 유지된다.

상호관세의 법적 정당성을 잃은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력을 유지하기 위해 품목관세를 ‘독하게’ 물고늘어질 것이란 관측은 지속적으로 나온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철강관세 두 배 인상에 이어 가전제품으로까지 ‘철강 관세’를 확대 적용키로 함으로써 이 같은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 모색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기업·협력사 대표, 임원들이 참여하는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미 정부가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에 추가한 가전제품은 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동기, 오븐, 음식물처리기 등으로, 이들 제품은 철강·알루미늄 함량에 따라 50%의 관세가 적용된다. 국내 가전기업들은 세탁기 외 대부분의 제품을 한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국내외 영향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산업부는 향후 ‘가전업계 공동 TF’를 운영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가전기업 및 중소·중견협력사들에 미칠 영향을 수시로 점검하고 지원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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