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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왼쪽 세 번째)가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통령실 노동비서관실 행정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석우 기자

“대책위랑 유가족들과 실제로 협의할 수 있는 소통 구조를 가져야 해요. 대통령실에선 대책위와 협의 테이블을 어떻게 가질 건지에 대한 방안이 있어요?”(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

“최대한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대통령 노동비서관실 행정관)

“금요일까지 답을 주세요. 그리고 대통령실에서 책임 있는 소통 창구를 만들고 대책위와 어떻게 협의테이블을 만들지에 대한 안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세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

12일 낮 서울은 최고 기온이 32도를 넘을 정도로 더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뜨거운 날씨에 검은색 양복을 입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섰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 아직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권 대표가 대통령실을 찾은 건 벌써 두 번째입니다. 전날(11일)엔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대표로서 폭염 대책을 촉구했고, 이날은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서 대통령실을 향해 대책위와의 협상테이블을 만들라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대선이 끝나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대선 완주 뒤 남은 것

권 대표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로 완주해 0.98%라는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민주노동당에서 목표로 했던 수치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율입니다. 권 대표 스스로도 처음엔 실망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대선을 완주하면서 얻은 성과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남았을까요?

진보정치의 지지자들이 남았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대선은 내란 청산을 위해 다른 후보를 찍었지만 지지하는 마음만은 권영국 후보님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응원했던 분입니다. 부디 다음 대선 때도 꼭 나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땐 제 소신껏 후보님을 뽑겠습니다”

6·3 대선이 끝난 뒤 한 유권자가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보내며 함께 적은 말입니다. 투표가 끝난 지 12시간 만에 민주노동당에는 13억원이 넘는 후원금이 쏟아졌습니다. 후원자 숫자만 1만명이 넘습니다. 권 대표에게 투표는 하지 못했지만, 지지한다는 응원 글귀가 많습니다. 민주당원이지만 권 대표를 지지한다는 글도 있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지지가 높았습니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가 발표한 공동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권 대표는 20대 이하 여성 5.9%의 표를 받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독자 진보정당 세력도 남았습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는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3당과 노동사회단체가 대선 과정에서 독자적 진보정치를 추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연대체입니다. 이들은 대선을 거치며 조금씩 결집했습니다. 대선은 끝났지만 연대회의는 계속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연대회의에 참여했던 이영주 노동해방을위한좌파활동가전국결집 대표는 “자본주의 체제에 단결하여 맞서지 못했지만 한 달 동안 많은 변화를 만들었다”며 “진보 진영의 연대를 완성해 준 전국의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진보정치를 이끌어 갈 지도자가 남았습니다. ‘거리의 변호사'로 불리며 노동 현장에선 유명했던 권 대표는 정치권에선 신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적은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습니다. 2024년엔 원외로 밀려난 정의당 대표에 취임했습니다. 대중에겐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권영국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진 건 세 차례의 티브이(TV) 토론을 거치면서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다른 대선 후보들이 외면한 진보 의제를 꾸준히 언급하고,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악수를 거부하는 등 분명한 태도를 보이며 인지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은 “사실상 정치 신인이었던 권 대표가 30만표를 넘게 받은 건 (진보정치가) 새롭게 출발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소중한 대중적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왼쪽 네 번째)가 1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류석우 기자

진보정치에 필요한 것

남은 것에 흐뭇해하기엔 갈 길이 멉니다. 한상균 공동선대위원장은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진보정치의 갈증을 해소할 오아시스는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고,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진보정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투표로 이어지지 못한 건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원내 의석도 없을뿐더러 대선에서 3% 미만 득표율을 달성하며 내년 지방선거 이후엔 티브이 토론 출연도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악조건에서 진보정치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요?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민주노동당이 노동 약자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싸우는 식의 전략을 분명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장석준 위원은 “이재명 정부가 해야 할 과제를 해나가도록 압박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박상은 플랫폼씨(C) 활동가는 연대회의가 함께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한 것을 바탕으로 지역의 ‘진보 풀뿌리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권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뭐 그리 달라지겠습니까. 제가 살아온 인생이 그랬고 약자들의 삶이 정치로부터 외면 받아왔는데. 그들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겠습니다.”

대선이 끝나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권 대표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조만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방문했던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여수국가산단도 다시 찾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만난 한 노동자는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약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겠다며 다녀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권 대표는 이 말이 가슴에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권 대표가 대선 기간 가장 많이 한 말이 있습니다. “정치는 아픈 곳에 말을 건네는 것이어야 합니다.” 권영국 표 진보정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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