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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방에 있던 메모지

"제복 입은 경찰관 안 믿으면 누굴 믿을 건가요?"

지난달 2일, 대전동부경찰서 소속 지구대로 한 남성이 찾아옵니다. 이 남성은 경찰에게 '여자친구가 어제 아침부터 금융감독원, 경찰이라는 사람들과 계속 통화하는 것 같다. 어제 오후에 모텔에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같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바로 여성이 있다는 대전시 동구의 한 숙박업소로 출동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보이스피싱 의심 신고를 받고 왔다는 경찰관마저 믿지 않으며 부인으로 일관했습니다.

다행히 방 안으로 들어가 여성과 대화하던 경찰관은 탁자에 놓인 메모지 1장을 발견했습니다. '00은행', '대출 이력 조회' 등의 글자가 빼곡히 적힌 글자를 보고 보이스피싱을 직감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경찰관을 사칭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 같다'며 휴대전화를 살펴보겠다고 하자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휴대전화를 살펴 봤는데 (보이스피싱을 위한 악성 앱이) 안 깔려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며 오히려 경찰관에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이 여성은 보이스피싱 전담 수사팀까지 출동해 한 시간 가까이 설득한 뒤에야 의심을 풀었습니다.

대전동부경찰서 외경

숙박업소에 '셀프 감금'하는 피해자들.. 대체 왜?

이 여성은 신고자의 말처럼 전날 오후 3시쯤 모텔에 들어간 뒤, 20시간 넘게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 사건을 담당한 대전동부경찰서 소속 박영권 경위는 ' 보이스피싱 조직의 새로운 수법'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에게 일단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사용됐는데, 당신도 공범인지 아니면 피해자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접근하는 방법을 씁니다.

이어 피해자의 신원을 잘 알 수 있는 수사기관이라고 연락을 하는 방식으로 믿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일단 가까운 숙박업소로 가라고 한 뒤 경찰 수사관, 담당 검사, 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한 사람들이 차례로 전화를 해 장시간 통화를 이어가는 수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행동도 통제합니다. 3 0분 단위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만약 따르지 않으면 도주한 것으로 간주해 체포 영장을 발부해 구속해 버리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습니다.

이들이 피해자를 숙박업소 등에 가게 한 뒤 나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하나.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게 할 목적입니다. 아무래도 집이나 밖에 있다 보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계속 통화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 보이스피싱이 탄로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앞서 여성을 속인 보이스피싱 조직은 휴대전화도 새로 개통하게 했습니다. 조직은 자기들과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이라고 얘기해 신뢰감을 쌓았는데요. 알고 보니 여성이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기종은 원격 제어 등 통제가 쉽지 않아 소위 '작업'이 더 쉬운 기종으로 바꾸게 하기 위한 거였습니다. 경찰관이 확인한 결과 새로 바꾼 휴대전화에는 여러 개의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이 설치하도록 하는 악성 앱 가운데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까지 엿들을 수 있는 앱이 포함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내 속마음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조직을 더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아닐거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범죄 수법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연령층에 따라 속이는 방법도 다른데요. 20~30대 젊은 층은 사회 초년생이고, 사회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을 노립니다. 그래서 범죄에 연루됐다고 하면서 기관을 사칭한 범죄가 잦고요.

40~50대는 대출해 주겠다, 더 싼 이자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입니다. 60대 이상 고령층에게는 자녀를 사칭합니다. 휴대전화가 액정이 파손돼서 지금 전화가 안 된다며 문자를 보내 접근하는 수법을 씁니다.

또, 연령층에 따라 젊은 층에는 상품권을 결제하라고 한 뒤 핀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 돈을 가로채는 수법이 많고, 중장년층에게는 돈을 어디로 보내라거나 인출해서 누구에게 건네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난 2023년에만 우리나라에서 만 1,503명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봤습니다. 피해액의 총합이 천9백여억 원. 1인당 평균 천7백만 원 수준입니다.

나는 아니라고요?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수사기관이나 공공기관이라면서 공문이나 명함을 보내면 더더욱요.

경찰은 진위를 확인하고 싶을 때는 경찰서로 직접 찾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이미 휴대전화에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는 112로 전화해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를 가로챌 수도 있다는 겁니다.

대검찰청에서는 공문 등 서류를 보내는 보이스피싱이 많다 보니 진짜 서류인지 여부를 확인해 알려주는 보이스피싱 감별 콜센터, '찐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콜센터 이름이 어쩐지 사기 같고 미덥지 않지만 진짜 대검찰청에서 운영하는 게 맞습니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며, 국번 없이 1301로 전화해도 됩니다. 단, 찐센터에 신고할 때는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나 유선 전화를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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