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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 살아보기’ 현장 가보니
신상운(뒷줄 오른쪽)씨를 포함한 ‘고흥스테이’ 3기 참가자들이 지난 5일 오후 전남 고흥군 고흥읍 고흥스테이 건물 앞 화단에 어린 동백나무를 기념용으로 심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전북 전주에서 은퇴 후 한가롭게 지내던 신상운(62)씨는 지난 4월 바다와 가까운 전남 고흥에 새로운 집을 얻었다. 현재 일주일에 절반 정도는 원래 거주지인 전주에서, 나머지 절반은 고흥에서 생활하는 ‘두 집 살림’이지만 주거비는 걱정하지 않는다. 고흥군이 신씨에게 빌려준 집은 보증금도, 월세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입주자가 실제로 쓴 만큼 전기·수도요금 등 약간의 관리비만 내면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공짜로 제공한 임대주택이라고 해서 내부 상태가 나쁘거나 입지 조건이 불리한 건 전혀 아니다.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와 TV·에어컨·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 무상 대여로 입주민 만족도가 높다. 집 밖으로 조금만 걸어나가면 마트·식당·카페 등 상점가와 시외버스 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어 생활에 편리한 위치다. 옛 한국전력 사택을 리모델링한 방 두 개짜리 공공 임대주택(12가구)으로 ‘고흥스테이’란 이름을 붙였다.

월세도 공짜, 가전도 무상 대여
‘생활인구 유치’ 고흥군의 실험

주민등록 인구 증가 어렵지만
체류형 생활인구로 대안 모색

복수주소제 도입 주장도 나와
일본은 ‘고향주민등록제’ 추진

내륙에 사는 신씨에게 남해안 끝자락에 위치한 고흥은 처음 만나는 낯선 고장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고흥스테이를 알게 돼 신청서를 냈는데 운 좋게 입주자 선정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고흥에선 산·바다·섬이 모두 가까워 다채로운 매력이 있다. 고흥에 더 머물러 살고 싶어 귀농·귀촌센터 등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 최금규(59)씨는 “다른 가족들도 종종 찾아와 머물다 가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월간 단위로 생활인구 통계 발표
한국전력 사택을 리모델링한 공공 임대주택인 고흥스테이 건물 전경. 현재 4기 참가자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주정완 기자
신씨 같이 원래 주소지와 별도로 다른 지역에 머무른 사람을 전문 용어로는 체류형 생활인구라고 부른다. 생활인구는 2023년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새롭게 만든 개념이다.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교류 등 다양한 목적으로 해당 지역에 하루 3시간 이상 머문 날이 월 1일 이상인 사람을 가리킨다. 한 달에 단 하루만 방문한 사람도, 거의 한 달 내내 머무른 사람도 모두 생활인구에 포함한다.

통계청과 행정안전부는 지난해부터 월간 단위로 생활인구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조사 대상은 행안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한 전국 89개 시·군·구다. 전남에선 고흥을 비롯한 16개 군이 포함됐다. 통계청은 해당 지역에서 행안부·법무부의 공공 정보와 이동통신 3개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신용카드 4개사(신한·BC·삼성·하나카드), 신용정보회사(KCB) 등 10곳의 데이터를 취합해 생활인구 통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통계에서 생활인구가 최대치를 기록한 때는 지난해 8월이었다. 이 기간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에서 주민등록(외국인등록 포함) 인구를 제외하고 타지역에서 온 체류형 생활인구는 2872만 명이었다. 통계청은 “8월은 휴가철의 영향으로 체류인구(체류형 생활인구)가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휴가철이 아닌 지난해 6월의 체류형 생활인구는 2357만 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을 제외하면 체류형 생활인구는 매달 2000만 명을 웃돌았다.

경제 활성화와 지역 홍보에 도움
그동안 인구감소지역 지자체들은 주민등록 인구 유입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현실적으로 인구감소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러자 대안으로 체류형 생활인구 유치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꼭 주민등록 인구가 아니라도 해당 지역에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지역사회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고흥스테이는 2023년부터 행정안전부가 추진해온 ‘고향올래’ 사업에 속한다. 고흥 같은 인구감소지역에서 체류형 생활인구를 늘린다는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다. 행안부는 지난 3년간 고향올래 사업으로 모두 45건을 선정했는데 고흥스테이를 대표적인 성공 사례의 하나로 꼽았다. 고흥스테이 참가 경쟁률은 기수마다 다르지만, 최고 45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흥군은 고흥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주민등록을 옮기는 것까지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참가자들이 고흥에서 여행도 다니고 밥도 먹고 지인도 초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혜령 고흥군 지방소멸대응팀 주무관은 “참가자를 선정하는 점수표가 있어서 나이가 젊을수록, 멀리서 올수록, 가족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준다. 고흥을 처음 알게 된 참가자들이 이 지역의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독일은 복수주소 등록하면 세금 감면
두 군데 이상 지역을 오가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 독일 등에서 시행 중인 복수주소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미래세대 비전 및 중장기 전략’에도 복수주소제 관련 제도 개편을 검토하자는 의견이 포함됐다. 예컨대 독일에선 제1 주소지와 별도로 6개월 이상 생활하는 제2 주소지를 신고할 경우 소득세 공제 혜택 등을 준다고 한다. 이 위원회는 박재완 전 기재부 장관(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이 위원장을 맡은 민간 자문기구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기 이전에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에선 복수주소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대선 직전 발간한 공약집에는 복수주소제가 빠졌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인구감소지역에 한정해 복수주소제를 시범 실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고쳐 주민등록 특례를 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본은 ‘고향주민등록제’를 신설해 모두 1억 명(복수등록 포함)을 등록시킨다는 정책 목표를 세웠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현재 거주지와 별도로 원하는 지역을 골라 등록하면 해당 지역의 정보와 할인 혜택 등을 주는 방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복수주소제는 아니지만 현재의 1인 1주소제로는 인구대책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복수주소제 앞서 생활등록제 해보자” 복수주소제 논의에 앞서 중간 단계로 ‘생활등록제’를 시도해 보자는 제안이 국책 연구기관에서 나왔다. 생활등록제는 주민등록 주소가 아닌 지역에서 생활인구라는 이름으로 등록하면 부분적으로 행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국토연구원은 지난달 ‘체류형 생활인구의 생활등록제 도입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를 맡은 안소현(사진) 국토연구원 국토정책·지역계획센터 박사를 최근 세종시 국토연구원 본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안 박사와의 일문일답.


Q : 생활인구나 생활등록제라는 용어부터 낯설다. 무슨 뜻인가.

A :
“2023년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생활인구 개념이 들어가고 지난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중엔 하루 이틀 관광으로 오가는 사람도 있지만, 월 20일 이상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는 중장기 체류 인구도 상당하다. 생활인구라는 용어로 묶는다고 해서 다 같은 생활인구가 아닌 거다. 그런데 현지에서 중장기적으로 머물더라도 주민등록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행정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이런 사람들을 별도로 등록하게 해서 일정 부분 지방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생활등록제다.”

Q : 일본은 관계인구라는 용어를 쓰지 않나. 한국의 생활인구와 뭐가 다른가.

A :
“일본의 관계인구는 말 그대로 해당 지역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여기엔 해당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거주하거나 활동하지 않는 사람도 포함한다. 한국의 생활인구는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준 이상 머무른 사람만 계산한다. 관계인구보다는 생활인구가 좀 더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범위가 넓다. 그래서 중장기적인 ‘체류형 생활인구’를 대상으로 생활등록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Q : 생활등록제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

A :
“예컨대 ‘5도 2촌’이라고 해서 일주일에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농촌에서 생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농촌에서 주말농장 대여를 신청해도 해당 지역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땅을 빌려주지 않는다. 또한 지자체가 다양한 청년 유치 사업을 하려고 해도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청년의 창업·주거 지원에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 이럴 때 생활등록제를 활용하면 현장 수요자에게 맞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근거가 생긴다.”

Q : 생활등록제와 복수주소제는 어떻게 다른가.

A :
“복수주소제는 말 그대로 두 군데 이상 주소지에 주민등록을 하는 것이다. 주민등록을 하면 각종 권리와 의무가 따르기 때문에 현행법 체계상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생활등록제는 주민등록이 아니기 때문에 권리와 의무도 따로 정하기 나름이다. 생활등록 인구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할 것인지는 지역 실정에 맞게 지자체가 조례로 정할 수 있다. 전국의 지자체가 일률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지역별로 청년 창업 지원에 중점을 두거나, 농촌 유학 가족을 우대하거나, 은퇴자 생활 지원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정완 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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