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책임지는 새 정치문화를
양당 공약 “악순환 끊을 돌파구” 평가
문제는 디테일…소급적용시 위헌 논란
어디까지 적용할지 범위도 쟁점
양당 공약 “악순환 끊을 돌파구” 평가
문제는 디테일…소급적용시 위헌 논란
어디까지 적용할지 범위도 쟁점
편집자주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권력의 함정에 빠졌다. 절제하지 않고 권한을 남용하거나 협치의 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소불위 대통령제의 한계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기회를 살리되 위험 요인은 줄여 박수받고 임기를 끝내길 바란다. 그래서 제언한다. 이것만은 꼭 지켜달라고. 5회에 걸쳐 구성해봤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의 거취를 둘러싼 잡음이 반복됐다. 대통령과 임기가 다른 탓에 서로 엇박자가 불가피하다. 임기를 일치시키면 '알박기-찍어내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만 그간 정치권은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여야 공히 방향성엔 공감하고도 막상 정권을 잡고 나면 생각이 달라졌다.
새 정부 출범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물론 국민의힘도 대선과정에서 관련 공약을 내놨다는 점에서 진전이 기대된다. 다만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같게 하더라도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에게도 소급 적용할지,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 가운데 어디까지 적용할지를 포함해 세부적으로 풀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공기관장 임기는 주로 3년이다. 임명 시점은 제각각이다. 정권이 바뀌고도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이 적잖이 남아 있는 임기 불일치가 생기는 이유다. 특히 대통령들이
임기 막바지에 인사권을 한껏 활용해 공공기관장을 대거 임명할 경우 '알박기' 논란
으로 이어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불법 계엄을 저지른 후 50명 넘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국민의힘 전직 의원들이라 보은성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윤석열 정부 초반 국민의힘은 문 정부 임기 말 임명된 알박기 인사만 59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021년 2월 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관한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이 바뀐다 해도 법에 정해진 기관장 임기를 무시하고 내쫓을 방법은 없다.
전 정권 기관장을 겨냥한 표적 감사, 모욕 주기 등 무리한 찍어내기가 생기는 이유
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홍장표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눈엣가시였다. 그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소득주도성장 설계자"라고 공개 압박했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사표를 받아 내려 환경부 장관이 발 벗고 나섰다가 직권남용으로 사법 처리됐다.주요 공공기관 기관장 및 임원 임기. 그래픽=신동준 기자
양당 공약 "악순환 끊을 돌파구" 평가
양당이 공공기관장-대통령 임기 일치를 대선 공약으로 앞다퉈 내건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공공기관장과 임원의 임기를 임명한 대통령의 임기와 일치해 공공기관 경영 및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
했다. 이에 대해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10일 통화에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새로운 정부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개인적인 불편함을 넘어 기관의 미션을 달성하는 데 제약 조건이 될 수 있다"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민의힘이 비슷한 대선 공약을 내 최소한의 공감대는 마련됐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긴밀하게 뒷받침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자리를 여야 논의로 선정해 'K-플럼북(대통령실이 임명하는 공직의 명부)'을 작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과거 정권 교체기 공공기관장 잔여 임기. 그래픽=신동준 기자
문제는 디테일…소급적용시 위헌 논란
문제는 디테일이다. 소급 적용 문제부터 논란의 소지가 크다.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남동발전 등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대형 공기업 사장들은 임기가 1~3년이나 남아 있다. 대통령 임기와 맞춘다며 이들을 전부 내보낼 경우 소급입법에 따른 위헌 논란
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소급효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법은 과거 친일재산 환수법처럼 중대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임기 일치 문제가 소급 적용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고 특별한 사유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진 교수는 "소급 적용이 어려울 경우 무리하게 전 정부 기관장들을 물러나게 하기보다는, 법 개정 이후 새로 임명된 기관장부터 적용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고 말했다.어디까지 적용할지 범위도 쟁점
적용 범위도 조율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31개 △준정부기관 57개 △기타공공기관 243개로 구성된다. 이 중 기타공공기관이 개수는 가장 많지만 위탁 등 단순 업무를 맡은 곳이 많아 대통령 임기와 맞춰야 할 필요성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혁신처장을 지낸 김판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임기 일치는 공기업이 가장 시급하며, 필요시 준정부기관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작은 기타공공기관까지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
라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무리하게 임기를 대통령과 맞추기보다 기관장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2023년 5월 4일 전현희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에 반발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임기제 공무원을 포함시킬지는 정치적 인화성이 큰 만큼 새 정부의 결단이 필요
하다. 임기가 법에 정해진 감사원이나 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전현희 권익위원장,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사퇴를 공개 압박해 표적 감사 논란이 일었다. 새 정부에도 잠복한 갈등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 소추했던 이진숙 방통위원장 임기는 2027년 7월
까지로 2년 넘게 남았다. 윤 전 대통령 옹호 논란을 자초했던 안창호 인권위원장 임기도 2027년 9월
까지다. 윤 전 대통령 대학 동창인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임기 만료는 2027년 1월
이다.박진 교수는 "임기제 공무원도 대통령과 임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무리한 소급 적용은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