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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부진에 폐업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 임대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맷집’이 약해지면서 역성장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생ㆍ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는 데다, 수출 품목 다변화 등 구조 개혁이 지연되면서 미국 관세정책과 같은 대외 충격에 더욱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장기 저성장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돈 풀기식 단기 부양의 유혹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경제 체질 개선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분기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08년 4분기(-3.4%)뿐이다. 하지만 출생아 수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로는 2017년 4분기(-0.2%), 2020년 1분기(-1.3%)와 2분기(-2.7%), 2022년 4분기(-0.5%), 2024년 2분기(-0.2%)에 이어 올해 1분기 -0.2%까지 이미 6차례에 달한다.

2017년은 연간 3.4%의 성장률을 기록한 만큼 전 분기 실적이 좋았던 기저효과에 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경제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나빠지면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ㆍ2022년 반도체 경기 둔화와 같은 충격에 더 크게 휘청였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기준금리 인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잠재성장률 평균이 3%에서 2% 이하로 내려왔는데, 수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경기 변동 폭은 커져서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지거나 역성장이 될 가능성도 기계적으로 굉장히 커졌다”며 “분석을 해보니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역성장할 확률이 5%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14%에 이른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2010년대 중반 이후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그 이전에 비하면 3배 가까이 커졌다는 의미”라며 “조만간 이와 관련한 분석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평균 5% 내외였지만 2010년대 들어 3% 초중반으로 하락했고, 2016~2020년 2% 중반으로 낮아졌다. 팬데믹 충격까지 반영해 산출한 2021~2023년 잠재성장률은 2.1%로 나타났고, 당분간 2%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여기서 만약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향후 잠재성장률이 2025∼2029년 연평균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까지 계속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저출생·고령화는 내수의 기반인 민간소비를 더욱 짓누르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한은 보고서(‘인구구조 변화가 소비 둔화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생산인구 감소, 경제 기반이 취약한 1인 가구의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가 2013~2024년 소비증가율을 연평균 약 0.8%포인트 둔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소비의 추세증가율이 2001~2012년 대비 1.6%포인트 하락했는데 그중 절반이 인구 절벽 때문이라는 의미다. 세분화해보면 노동투입 감소에 따른 소득창출 여력 저하가 0.6%포인트, 노후 불안에 따른 소비 성향 감소가 0.2%포인트만큼 씀씀이를 줄이게 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은 생산인구의 비중이 73.4%로 가장 높았던 해다. 박동현 한은 구조분석팀 차장은 “인구수 감소와 고령화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025~2030년 중에는 인구구조가 소비 둔화에 미치는 영향이 1%포인트로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불어난 가계부채, 소득 양극화 등이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물가가 더욱 안정되고, 이에 한은이 금리를 내려 시장에 돈이 돌도록 하더라도 기대만큼 소비가 회복되긴 어렵다. 박 차장은 “경기적 요인에 따른 소비 둔화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경기 대응 정책이 효과적이겠지만, 추세ㆍ구조적 요인에 의한 소비 둔화 현상은 구조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예컨대 2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 이후 자영업으로 과도하게 진입하지 않고 안정적인 상용 일자리에서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로 들어설 정부가 구조 개혁의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절대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임기 5년간 씨를 뿌린 다음 수십년 후 거둘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신성장 동력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인공지능(AI) 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찾아내 전권을 주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연속성은 훼손할 수 없는 장치를 마련해 기업의 투자와 관련 인재 양성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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