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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 MZ가 MZ에게
정서적 방임이 새긴 ‘마음 경로’ 이해
편도체 활성화로 타인의 친절 경계
나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서사 필요
흔히들 ‘내가 너무 꼬인 것 같다’고 자책하지만 그건 꼬여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을 즐겁고 안심되는 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신경적 경로가 잘 닦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돼서 괴로운 직장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대다가 아빠와 형에게 죽도록 맞은 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하지만 타고나길 목소리가 크고 말을 툭툭 내뱉어서 요즘도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회의 중 제게 새로운 업무를 맡기는 부장님에게 “이걸 제가 왜 해요?”라고 했다가 주의를 들었습니다. 부장님은 제가 일하기 싫어서 그런 거라고 오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불만스럽다기보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업무 성과가 안 좋은 대리님을 질책하다가 그분의 업무 일부를 제게 주신 상황이었거든요. ‘대리님이 못한 걸 내가 잘할 리가 없는데?’ 싶어 의아했습니다. 실수가 잦아서 부장님에게 혼난 적도 많아 ‘그만두라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야 ‘내가 아주 일을 못하는 건 아닌가 보다, 나 인정받은 건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스스로 일머리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회사 그만둬야 되는 것 아닌지 고민 상담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면 선배들은 ‘동기들 중에 너만큼 하는 사람 없다’며 격려해줍니다. 그 위로 덕분에 지금도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그 말을 믿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커피는 자기들끼리 마시고 싶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리를 비켜주려고 “커피는 세분이 드실 거죠?” 했더니 과장님이 “너 우리랑 있기 싫으냐”고 해서 당황했습니다. 이때도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나 보다’ 싶어 안심됐는데, 안도하는 순간 사람들이 다시 저를 싫어할 것 같아 믿지 말자고 경계합니다. 이쯤 되니 제가 저를 제일 싫어하는 것 같고,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유이준(가명·28)
영화 ‘말없는 소녀’는 애착 관계에서 외상을 경험한 사람이 타인의 친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줍니다. 주인공 코오트는 가난한 시골 마을의 넷째 딸, 어린 소녀입니다. 도박과 술에 중독된 아빠, 여섯째를 임신한 엄마는 코오트를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결국 뱃속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코오트를 먼 친척, 에이블린의 집에 맡기기로 합니다.

방임과 무관심 속에서 일생을 지낸 코오트는 에이블린의 상냥함이 영 어색합니다. 다정하게 웃어주는 에이블린의 시선을 불편한 듯 피하며 발끝만 봅니다. 스펀지에 따뜻한 비눗물을 묻혀 꾀죄죄한 코오트를 씻겨줄 때도 어린 소녀는 긴장을 풀지 못합니다. 이 부드러운 손길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두 눈만 깜박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코오트는 집에서 상냥함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이름 대신 ‘겉도는 애’로 불렸고, 없는 집에 먹성까지 좋아 구박데기 신세였고, 어루만지는 손길은커녕 애정 어린 눈길조차 소녀에게 머무는 법이 없었으니까요.

코오트처럼 이준님에게도 타인의 인정이나 초대 같은 긍정적인 경험이 생경한 것 같습니다. ‘커피는 세분이 드실 거죠?’ 하는 말은 ‘여기 제 자리도 있나요?’라는 말처럼 들리고, ‘저 그만둬야 하나요?’라는 말은 ‘저 계속 회사 다녀도 되나요?’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무도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쓸쓸한 믿음을 오래 품어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준님을 싫어하는 건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안테나를 펼치기도 할 것입니다. 남들이 이준님을 안심시킬 때도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알고 싶어 눈빛과 표정,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으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나를 싫어한다’는 단서를 발견하면 오히려 안도하고요.

이럴 때 흔히들 ‘내가 너무 꼬인 것 같다’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그건 꼬여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을 즐겁고 안심되는 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신경적 경로가 잘 닦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낯선 경험은 그것이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에서 튕겨 나갑니다. 뇌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현상을 점점 더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에 정서적 방임을 경험한 사람은 화난 표정뿐만 아니라 웃는 표정을 볼 때도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됐습니다. 뇌가 ‘낯선 친절’을 예외적 상황이자 비상으로 처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죽도록 맞고 자란 이준님이 타인의 호의적인 말을 경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맞은 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도 빨리 과거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상담하다 보면 문제를 다 알았는데 왜 좋아지지 않냐고 좌절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럴 때 심리적 변화라는 건 언어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떠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라면서 언어를 습득하지만 자주 들어온 말은 각자 다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저마다 다릅니다. 이준님의 경우, 자신에 대해서는 ‘나대서 미움을 사고, 남에게 짐만 되는 불청객’이라는 서사를 갖고 계신 듯합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언젠가 나를 싫어하고 상처를 줄 존재’라는 서사를 갖고 있고요. 이렇게 체화된 이야기에서 탈피해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갖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기가 말할 수 있기까지 2년은 걸리고, 어른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려면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자신과 타인에 대해 새로운 서사를 갖게 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일을 못하는 건 아니구나’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만은 않는구나’라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며 스스로에 대해 새로운 서사를 갖게 되면 누군가의 호의에 비상등이 켜지는 일도 줄어들 것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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