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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호연

필자가 서울 동묘시장과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구매한 옛 시계들.


중고 물건의 메카인 서울 동묘시장에는 아직도 옛날 손목시계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1970년대 이후 유행한 세이코나 오리엔트 시계들은 50년 남짓 흘렀음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결혼 예물로 마련했거나 여러 달 월급을 모아야만 살 수 있던 고급 시계이지만 오래된 시계를 비싸게 사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잘 팔리지 않는다.

시계 전문 가게를 벗어나 중구난방으로 물건이 쌓인 매대를 살피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린 국산 시계들이 주로 발견된다. 카파, 갤럭시, 로만손 등이다.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남은 시계는 재미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굳이 고백하자면, 나는 ‘작동하는’ 시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가 그 시계의 생애에 기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집요하게 ‘작동하지 않는’ 시계를 골라서 집으로 가져온다. 그때부터 시계와 나의 밀당은 시작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의 일방적인 구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집하는 것은 대부분 쿼츠 시계*다. 기계식 시계는 비싸니까. 손목시계의 뒤 뚜껑을 열고 시계 전지를 넣어 작동 여부를 살핀다. 어떤 것은 뚜껑이 열리지 않아서 고치지 못하고, 어떤 것은 전지를 넣어도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 고장은 살 때부터 예상했으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다.

뚜껑을 연 시계는 용두(crown, 시곗바늘을 움직이는 장치)를 뽑고 시계판을 분리해 안과 밖을 닦는다. 기계장치에는 윤활유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 당장 움직이지 않아도 새 전지를 빼지 않고 뚜껑을 닫아 두면, 복불복이지만 운이 좋으면 한두 시간 안에, 혹은 다음 시계 수리 행사를 위해 꺼냈을 때, 멈춰 있던 시곗바늘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본다. 새 생명을 얻은 시계는 줄을 교체하거나, 긁힌 유리를 연마해 시계판이 잘 보이도록 다듬는다.

수리한 중고 시계는 워크숍이나 수리 행사 등에서 소소하게 판매한다. 5000원에 사서 1만원에 팔기도 하고, 3만원에 사서 3만원에 팔기도 한다. 비싼 시계일수록 이문이 남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시계를 수리하는 전달자에 가깝다. 그리고 구매자는 중고 시계의 생애를 이어받는다. 그는 종종 시계를 들여다보며 일상을 운영하고, 시계에 할애한 나의 시간도 그 사람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그런 것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물건의 생애를 함께 나누는 것. 그렇게 고요히 연결되는 것.

얼마 전 당근마켓에서 중고 시계를 몇점 구했다. 아직 작동 여부는 모른다. 수리 가능한 시계인지도 알 수 없다. 그저 마음 한편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앞으로도 시계 전달자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쿼츠 시계: 태엽이 아닌 수정(quartz) 진동자를 이용해 전지로 작동하는 시계. 진동자는 초당 3만2768번 진동하도록 만들어지며, 시간의 오차가 하루에 1초 이하로 작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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