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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가 새롭다. 1년 전 이맘때 천안 능력개발교육원에서 받았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났다. 새로운 선생님들도 알게 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난달 26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씨(50)는 자신의 블로그에 ‘전공 분야 보수교육’ 소감을 올렸다. 이 글은 지난 2일 숨진 그가 올린 마지막 글이 됐다. 김씨는 정비 부품 등을 선반으로 깎는 작업을 하다 기계에 옷이 끼면서 사고를 당했다. 혼자 일하고 있어 기계의 비상 스위치를 눌러줄 사람도 없었다.

김씨 블로그를 보면 그는 지난달 24~25일 이틀간 충북 음성에 있는 전문건설공제조합 기술교육원에서 배관 시공과 관련한 보수교육을 받았다. 그는 교육 내용, 숙소 모습, 실습장 모습, 수압시험 결과를 하나씩 사진으로 기록해 블로그에 올렸다. 새로 장만했다는 레고 모양의 가방도 기록했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씨(50)가 발전소에 입사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대책위 제공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충현씨는 지난달 24~25일 충북 음성에 있는 전문건설공제조합 기술교육원에서 배관 시공과 관련한 보수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블로그에 교육 내용 등을 기록했다. 김충현씨 블로그 캡처


김씨는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꾸준하게 기록해왔다. 지난해 8월에는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자격증 사진을 올려두기도 했다. 건축설비설계·시공 2급, 신재생에너지생산 2급, 선박정비 2급, 조선 2급, 정밀화학제품제조 2급, 냉동공조설비 2급, 플랜트 2급, 용접 2급, 발전·송·배전 2급, 금속재료제조 2급, 기계가공 3급, 기계장비설치·정비 3급, 기계조립·관리 3급, 토목시공 2급 자격증 등이 기록된 14개 사진에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보령지청장’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는 해당 글에 “국가자격증에는 국가기술자격증과 국가전문자격증으로 나눠진다. 국가전문자격증은 면허 성격이 강하다”라고 적었다.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급하는 국가자격증으로, 직업훈련기관에서 노동자들에게 직업교육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증명서다. 김씨는 다양한 분야에서 직업교육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김충현씨가 읽던 책 <이재명과 기본소득>
12월 14일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기도

김씨 사고 현장이었던 사무실 책상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다룬 책 <이재명과 기본소득>이 놓여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던 책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해 12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도 참석한 사진도 기록했다. 그는 사무실 책상 달력의 6월 3일 자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려 21대 대통령 선거를 강조해뒀지만 결국 대선 하루 전날 투표도 하지 못하고 숨졌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충현씨의 책상 모습. <이재명과 기본소득>을 읽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 제공


6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씨도 생전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었지만, 열흘 뒤 산재 사고로 숨졌다. 그는 당시 1차 하청업체에 입사한 지 3개월 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김씨 사망 이후 유족과 당시 대책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고 만남이 성사됐다. 문 전 대통령은 유족과의 만남에서 안전한 작업장, 차별 없는 작업장, 신분이 보장되는 작업장을 만들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광장에 김충현 노동자도 있었다”며 “그가 꿈꾼 세상은 차별받지 않고 죽지 않는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김씨 유족과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6일 서울역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며 김씨를 추모하는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이들은 이 대통령에게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자고 요청할 계획이다.

김충현씨는 지난 4월 블로그에 방산업체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에게 인사하기 위해 들른 일상을 기록했다. 그는 상사에 대해 “멋있다. 사람 앞날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생각난다. 근면 성실히 생활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되나보다”라고 적었지만 그 말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충현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물을 올렸다. 김충현씨 블로그 캡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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