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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미제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
책 '이윤희를 아시나요?' 저자 이동세씨
"진실 알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서울경제]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이윤희씨


“이렇게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는, 내 딸 이윤희가 어딘가에 살아 있건, 죽었건, 2006년 6월 6일 이후에 왜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밝히기 위해서다.”
(책 ‘이윤희를 아시나요?’ 中)

2006년 6월 6일, 학교 종강 모임 후 행방이 묘연한 전북대학교 수의대생 이윤희(당시 29세)씨가 이날로 실종 19년을 맞았다. 딸이 실종된 그날 이후 시간이 멈춘 윤희씨의 아버지 이동세(88)씨는 지난해 ‘이윤희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는 등 여전히 발로 뛰며 딸을 찾고 있다.

네이버 도서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이었던 윤희씨는 2006년 6월 5일 저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자신의 원룸에서 1.5㎞가량 떨어진 음식점에서 교수, 학과 동료 40여 명과 종강 모임을 가졌다.

그는 모임이 끝난 다음 날 6일 새벽 2시 30분께 원룸으로 귀가했다. 경찰 조사 결과, 윤희씨는 동기인 남학생 A씨의 배웅을 받으며 걸어서 원룸에 도착했다. 원룸에 들어선 이씨는 6일 오전 2시 59분께부터 1시간 남짓 데스크톱 컴퓨터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이용했다. 그러던 중 검색창에 '112'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3분간 검색했다. 이후 컴퓨터는 오전 4시 21분에 꺼졌다. 그게 윤희씨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아직도 가족은 윤희씨의 생사조차 모른다.

사건 발생 이틀 뒤인 8일 낮 학과 친구들과 A씨는 윤희씨의 원룸을 찾았다. 이들은 경찰과 119구조대를 불러 현관문 도어락을 부순 뒤 방 안에 들어갔으나 윤희씨는 없었다. 당시 방은 몹시 어질러져 있었다고 친구들은 회상했다. 이들은 경찰 지구대 직원의 허락을 받고 방을 깨끗이 치웠고, 이로 인해 경찰은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경찰은 당시 윤희씨를 집까지 데려다준 A씨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지만 실종과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A씨는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받았으나 '진실' 판정을 받았다.

이동세씨가 2006년 윤희씨가 살던 전주시 덕진구 소재 원룸 인근 골목을 돌아보고 있다. 김수호 기자


◇경찰 초동수사 부실 의혹 =
이동세씨는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20년 이씨는 단서를 찾기 위해 윤희씨의 컴퓨터를 사설 포렌식 업체에 맡겼다. 그 결과, 실종 이틀 전인 2006년 6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의 일부 기록이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누군가 윤희씨의 컴퓨터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했고, 이 사실을 경찰이 은폐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실종 당시 이씨는 경찰로부터 컴퓨터 기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지난해 4월 윤희씨의 부모가 전북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규명을 촉구하자 경찰은 사건 기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윤희 사건 한정 전주 경찰은 ‘범죄집단’이에요. 수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19년째 듣고 있는데, 경찰의 움직임이 거의 없어요. 제기하는 의혹들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들어본 적도 없어요. 초장에 수사를 잘못했다는 거죠.”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 이씨는 책에
“내가 외치는 이야기는 ‘경찰을 벌해달라!’가 아니다. 이윤희 실종 사건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살아생전에 경찰들이 이 사건을 꼭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동세씨가 최근 전북대 앞에 설치한 윤희씨 등신대. 이씨는 설치한 등신대 10개 중 8개가 훼손됐다고 밝혔다. 김수호 기자


◇윤희씨 등신대는 왜 훼손됐나 =
딸을 찾기 위해 전주 시내 곳곳에 윤희씨 등신대를 설치한 이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등신대 일부가 누군가에 의해 훼손되거나 사라진 것이다. 지난달 이씨는 등신대 훼손 사건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남성 B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윤희씨 대학 동기인 B씨는 실종 이틀 뒤 윤희씨의 원룸으로 찾아간 무리 중 한 명이다. 사건 당시 윤희씨 부모와 가깝게 지내던 B씨는 이씨에게 “윤희 누나는 살아 있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최근 들어 수상한 행적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이씨는 실종 당시 B씨가 홀로 윤희씨 집에 들어가 컴퓨터로 인터넷 메신저를 한 정황을 발견, B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고소했으나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B씨가 윤희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윤희씨 컴퓨터 속) 인터넷 메신저 로그인 기록이 확인됐으니 B씨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짜 범인은 수의대 내부에 있다고 본다”며 “이윤희 실종과 관련해 뭔가 알고 있는 B씨가 입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윤희씨


◇법 사각지대에 놓인 '성인 실종' = “이 책은 ‘이윤희를 아시나요?’로 쓰이고 ‘실종자를 찾습니다’로 읽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인 실종, 특히 성인 여성과 노인 실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법, 일명 ‘이윤희법’을 제정해야 한다.”
(책 ‘이윤희를 아시나요?’ 中)

윤희씨를 찾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는 이씨는 그동안 ‘전북대 이윤희 실종사건’ 네이버 카페에 게시해 온 글을 모아 지난해 7월 책을 발간했다. 제목은 ‘이윤희를 아시나요?’다.
이씨는 “책을 통해 성인실종법, 일명 ‘이윤희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며 “성인 실종법은 2019년부터 매년 국회에서 발의되고 있지만 입법의 문을 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윤희씨처럼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성인이 적지 않지만, 현행법으로는 이들을 찾는 데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종 사건 발생 시 만 18세 미만 아동,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에 대해서는 위치추적 등 적극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18세 이상 성인이 실종됐을 경우엔 가족과의 DNA 확인 및 비교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CCTV 확인 절차도 까다로워 수사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동세씨가 전주 시내에 설치한 윤희씨 홍보물을 철거하고 있다. 김수호 기자


“지난 19년 동안 길바닥에 뿌린 돈이 억이 넘어요.” 윤희씨를 찾느라 한가할 틈이 없다는 이씨는 매주 본가가 있는 철원군과 전주시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제 그만하라’는 얘기도 많이 듣지만, 내 자식이 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진실을 알 때까지 계속 전주를 돌아다닐 것”이라고 굳게 말했다.


딸이 살아있을 거라고 믿는 이씨는 윤희씨를 향해 “네가 자랐으면 46세지. 엄마, 아빠가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상황이니, 살아 있다면 툴툴 털고 일어나서 스스로 사건을 마무리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19년 전 딸이 걷던 전주 시내 거리에서, 88세 아버지는 매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이윤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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