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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률 탐사기획에디터 겸 경제에디터

불법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과 대선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몇달이었다. 한숨을 돌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그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앙상하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는 어느새 초록의 이파리로 덮여 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 하늘을 더럽히던 북의 오물 풍선도 사라졌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정상회담을 앞둔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서 발견되던 오물 풍선이었다. 서울 여의도 고층 빌딩에서 보면 오물 풍선이 열기구처럼 둥둥 떠다닌다고도 했다. 우리 쪽에서 대북전단 날리기를 먼저 중단한 것인지, 아니면 북측이 우리 상황을 간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라졌다. 윤석열 정부는 오물 풍선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실효적인 대응은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능했다.

“이제 일 좀 해야지요.”

5일 만난 대기업 간부 A씨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우리 기업들은 업무가 거의 ‘스톱’ 상태였다고 한다. 국내외 상황이 하도 불확실하다 보니 경영전략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초반 석 달 경영방향이 아주 중요한데, 그냥 날려버렸어요. 몇달을 날린 게 아니라 한 해를 날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돕니다.” 지난달 대기업 간부 B씨는 “빨리 대선이 끝났으면 좋겠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으킨 관세전쟁은 기업들이 겪어보지 못한 역대급 리스크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준의 고관세에 기업들이 개별 대응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었다. 상대의 속내를 읽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대응이 절실한데 불법계엄 사태로 정부는 부재했다. 미국 측은 빠른 협상을 압박해오고, 기업들은 버티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먼저 자동차 분야에 충격파가 전해지자 3월 말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에 4년간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 옆에 섰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단일대오도 무너진 상태였다고 재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런 상황은 공공부문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에서 새로운 행정은 꿈꿀 수 없었다. 기존 사업이 별 탈 없이 잘 굴러가는 것만 해도 다행인 상황. 중앙부처 관료 C씨는 “지난 6개월 그냥 손 놓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6·3 대선은 대한민국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첫날 밤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했다. 이튿날에는 점심으로 김밥을 먹으며 국무위원들로부터 현황 보고를 들었다. 비로소 멈춰 섰던 국정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12·3 불법계엄이 대한민국 경제에 끼친 해악은 생각보다 크다. 주가는 2300대까지 밀렸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한국은행은 계엄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30원가량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소비심리 악화, 마이너스 성장률, 외국인직접투자(FDI) 감소 등과 같이 드러난 지표를 차치하고 지난 6개월의 기회비용은 산정조차 하기 어렵다. 남들이 인공지능(AI)이다, 자율주행자동차다, 2차전지다 전쟁을 벌일 때 우리는 계엄법을 들여다봐야 했다.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젠슨 황의 한마디 한마디를 주목해야 할 때 이승만, 전두환의 망령과 싸워야 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6개월을 우리는 그렇게 허비했다.

새 정부 출범 이틀째 코스피가 2800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은 1350원대까지 떨어졌다. ‘실용적 시장주의’에 시장이 화답한 것일까. 새 정부와의 허니문 기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동안 답답했던 무언가가 막 분출하는 느낌은 확실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 일성을 통해 “박정희의 정책도, 김대중의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했다. 박정희의 산업화,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금융개혁, 김대중의 정보기술(IT)과 햇볕정책, 노무현의 권위주의 타파는 기억에 남는 성과다. 이 대통령의 ‘먹사니즘’은 역대 대통령의 성과를 어떻게 조합해 보일까.

이 대통령은 6·3대선에서 49%의 지지를 받았다.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과반에 부족한 1%포인트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는 이제 대통령 이재명에게 남겨진 숙제가 됐다. 그 답 중 하나는 민생이 틀림없다. 시작은 ‘일 열심히 하는 대통령’이다.

박병률 탐사기획에디터 겸 경제에디터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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