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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부터 월드투어를 개시하는 '블랙핑크' / YG엔터테인먼트


지난해 K팝 시장엔 위기론이 불거졌다. K팝 음반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거품이 빠르게 사그라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예상대로 음반 판매량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히려 분위기는 반전됐다. 올해 1분기 K팝 기획사들의 전체 실적은 증가세를 보였다. 엔터주 주가도 오랜만에 일제히 상향 곡선을 그렸다. 음반 판매량이 줄었는데 실적이 개선된 이유는 무엇일까?

K팝 아티스트의 콘서트 매출이 급증한 덕분이다. 최근 K팝 가수들은 월드투어를 통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규모 콘서트를 열고 있다. K팝 아이돌의 일정 대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기존에 예정됐던 것만으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수요를 다 충족하지 못해 월드투어 일정을 연이어 추가하고 있기도 하다.

K팝이 월드투어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K팝 산업은 음반 판매 감소로 위기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하며 흐름을 다시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공연은 음악과 노래의 본질로 돌아가는 행위에 해당한다. 나아가 팬들과의 소통을 통해 강렬한 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앞으로도 K팝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하다. 하지만 새롭게 마련된 월드투어 전략을 통해 K팝의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음반 상술 대신 공연으로 정면승부
그동안 K팝의 위기론이 불거졌던 원인은 단순히 음반 판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욱 심각한 점은 K팝이 초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K팝 관계자들은 글로벌 팬덤이 서서히 형성되자 이를 발판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 핵심은 대대적인 외형 키우기였다. 이 과정에서 음반을 과도하게 찍어 ‘초동 판매량’(음반 발매 후 첫 일주일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적극 추진하게 됐다. 음반마다 포토카드, 이벤트 응모권의 종류를 달리하여 팬들이 한 번에 음반을 여러 개 사도록 유인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팬들도 호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도는 점점 높아져 갔다. 도쿄 시부야의 어느 거리에 K팝 음반 수백 장이 폐기된 채 쌓여 있는 사진이 공개되며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우려대로 음반 판매량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써클차트의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K팝 음반 판매량은 전년 대비 17.7%, 음원 이용량은 7.6% 줄었다.

하지만 K팝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음반 판매 대신 직접 전 세계를 돌며 대형 공연을 여는 월드투어에 주목했다. 그러자 공연 매출이 빠르게 증가했다. 1위 기획사인 하이브의 올해 1분기 공연 매출은 1552억원으로 전년 동기(440억원)에 비해 252.3% 늘었다. 같은 기간 음반·음원 매출이 1451억원에서 1365억원으로 5.9%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이에 따라 공연 매출 비중(30.99%)은 음반·음원 매출 비중(27.27%)보다 높아졌다. SM엔터테인먼트의 올해 1분기 콘서트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58.0% 증가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콘서트 매출도 같은 기간 292.7% 늘었다.

공연은 아티스트의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실력을 많은 팬들 앞에서 보여주고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 팬들과 직접 마주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팬들 가까이에 서서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들의 함성을 느끼며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은 세계 곳곳에 흩어진 팬덤을 결집하고 공고히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월드투어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생겨난 새로운 음악 시장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이제 팬들은 음악을 귀로만 듣지 않는다. 영상을 통해 눈으로도 재밌게 감상한다. 그리고 시청각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실제 공연을 관람하며 온몸과 감각으로 즐기길 원한다. 이는 K팝의 장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K팝을 좋아하는 해외 팬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춤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에 빠져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월드투어 무대를 통해 K팝 그룹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실제 본 팬들은 이들의 정확하고 완벽한 동작에 크게 감탄하고 있다.

월드투어는 K팝의 높아진 위상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월드투어는 일정 규모 이상의 인원이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결집할 수 있는 큰 팬덤을 갖추고 있어야만 진행할 수 있다. 월드투어 자체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도 있지만 곳곳에 텅 빈 좌석을 보여주면 기존의 팬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기존의 유명 아이돌뿐만 아니라 신인 그룹들도 월드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K팝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신인 그룹의 공연까지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이들의 월드투어는 영상 플랫폼 발달과 맞물려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신인들의 월드투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이다. 다른 K팝 아티스트 영상을 본 글로벌 팬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신인들의 월드투어 영상까지 보게 되면서 이들의 무대를 직접 감상하러 티켓을 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K팝 아티스트의 월드투어를 현장에서 본 해외 업계 관계자들이 잇달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글로벌 유명 페스티벌에 출연 요청을 하거나 인기 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추진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월드투어의 효과는 극대화될 전망이다.

K팝의 더욱 끈질긴 생명력을 기대하며
마침 시장 상황도 K팝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K팝은 국내 수출 업종 가운데 미국발 관세전쟁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유일한 업종으로 꼽힌다. 또한 201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한한령(한류제한령)이 해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K팝이 이미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대 시장인 중국까지 문을 다시 연다면 파급력은 더욱 막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중국 시장이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중국 자본이 K팝 산업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 점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하이브는 보유 중인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전량에 해당하는 221만2237주(9.38%)를 텐센트에 매각했다. 이에 따라 텐센트는 SM엔터테인먼트의 2대 주주가 됐다. 텐센트는 이미 YG엔터테인먼트 지분 4.3%, 카카오 지분 5.95%도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는 현재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면 K팝에 대한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K팝 팬들을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도 필요하다. 월드투어를 통해 해외 팬들을 만나러 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한국을 찾아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하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연장이 다수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공연장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반면 가까운 도쿄엔 대형 공연장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이 때문에 K팝 팬들이 K팝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도쿄에 몰려가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K팝의 위상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과거 해외 유명 가수들이 내한할 때마다 엄청난 화제가 되고 국내 팬들이 몰렸던 것을 떠올려 보자. 1969년 영국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내한 공연을 열었던 일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많은 국내 팬들이 공연장에 모여 환호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해외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먼 훗날 이 같은 현상이 K팝의 얘기가 될 것이라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본래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일은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 노래, 춤을 직접 보고 함께 즐긴 추억은 더욱 오래 남지 않을까. 하지만 이 추억을 보다 긴 시간, 다양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적으로 정비해야 할 부분들을 꼼꼼히 챙기고 보완해야 한다. 위기론이 불거질 때마다 보란 듯이 성장한 K팝. 앞으로도 K팝의 더욱 길고도 강인한 생명력을 기대해 본다.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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