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쟁 수단으로 전락한 안보와 평화, 무너진 민생과 경제, 파괴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시간”이라며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의 1호 행정명령은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신설 지시였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 같은 내용으로 통화하고, 오늘 오후 7시30분까지 관련 부서 책임자 및 실무자의 소집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광역·기초 지방정부까지 아우르는 재난·치안·재해 등 안전 분야 실무책임자급 회의도 5일 오전 소집할 것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의 첫 업무지시엔 ‘경제 살리기’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는 판단이 담겼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당장은 바로 시행할 수 있는 경제 회생 정책이 필요하고, 가장 핵심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오늘 저녁이라도 관련된 모든 부처의 책임자뿐 아니라 실무자들까지 다 모아서 당장 할 수 있는 경제 회생 정책이 무엇인지 규모와 방식, 절차를 최대한 점검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주재한 비상경제점검TF 회의에는 기재부·산업부·국토부·중기벤처부 등의 윤석열 정부 차관과 정책 실무진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유하면서 “작고 세세한 발상이나 입법적 요구사항이 있다면 직급과 무관하게 언제든 제안해 달라”고 했다.
취임 첫날 이 대통령의 발걸음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전체회의에서 당선인을 확정 의결한 시각인 이날 오전 6시21분부터 임기는 공식 개시됐다. 이에 따라 군 통수권 등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이주호 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이 대통령에게 이양됐다.
오전 8시7분쯤 인천시 계양구 사저에서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부터 군 통수권 이양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근간으로 북한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빈틈없는 대비 태세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전 9시30분쯤 이웃들의 환호를 받으며 집을 나선 이 대통령의 첫 행선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10분쯤 도착해 참배한 뒤 방명록에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인 세상,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과 함께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이날 밤 자택 대신 안가에서 머물렀다고 강 대변인은 밝혔다.
여야 대표 오찬 메뉴 ‘통합 상징’ 비빔밥
앞서 국회 사랑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김용태 국민의힘 위원장,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 천하람 권한대행,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과 오찬을 함께했다.
메뉴는 통합의 의미를 담은 비빔밥이었다. 이 대통령은 “정치가 국민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저부터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천하람 대표도, 김용태 대표도 제가 잘 모시겠다. 자주 뵙길 바란다”며 “제가 자주 연락드릴 테니 시간 내주시고, 의제와 관계없이 대화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모든 것을 혼자 100% 취할 수 없기에 양보할 건 양보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해서 가급적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들로 국민이 나은 삶을 꾸리게 되길 소망한다”며 “적대와 전쟁 같은 정치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인정하고 실질적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비공개 오찬에서 이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대선 공통 공약을 신속히 추진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인공지능(AI) 분야 경쟁력 확보 대책과 ▶소상공인 금융·경영 부담 줄이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민생 분야에 공통 공약이 많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챙겨 보지 못했던 반도체특별법 제정과 홈플러스 사태도 합리적으로 풀어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취임 첫날 야당 대표와 점심 식사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 첫날 서울 용산 집무실에서 참모진과 전복죽 식사를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비공개 오찬을 했다.
하지만 오찬에선 이날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을 둘러싼 설전도 오갔다. 김용태 위원장은 “국민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인다는 건 대통령이 말한 국민 통합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고, 천하람 대행도 “삼권분립 훼손과 관련해 충분한 반대 의견을 들으며 신중히 추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사법부가 권력에 대해 독립하는 건 좋은데 국민과 헌법에 대해서도 독립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지적하며 “사법개혁이 뒤로 밀릴 경우 ‘왜 뜬금없이 사법개혁을 하느냐’고 (반발)할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방향으로 사법개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 뒤 이 대통령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통화도 했다.
합참 찾아 군사 대비 태세 보고받기도
이 대통령은 오후 2시30분 합참 지휘통제실을 찾아 군사 대비 태세를 보고받았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안보와 국방은 대한민국의 물리적 안전을 지키는 것이기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군의 신뢰 회복과 우려 불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대통령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의 사표만 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