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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대통령 선거날인 3일 저녁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개표방송을 보던 시민들이 출구조사 발표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서울 한복판답지 않은 정적이 이내 눈물과 환호, 몰아서 뱉는 긴 숨소리로 뒤덮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낙승을 점치는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온 3일 저녁 8시,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 방송 중계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여기 나와서 같이 소리라도 쳐야 지난 6개월 느낀 갑갑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 같았어요.” 경기 고양에서 온 직장인 권일량(50)씨가 환호의 의미를 설명했다. 기쁨보다 ‘일단 안도’에 가까워 보였다.

12·3 내란사태로부터 꼭 6개월, 지난했던 겨울과 봄을 지내고 이재명 당선자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한 시민들은 ‘다시 시작’을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시민들의 당부는 상식적이고 무거웠다. “안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일한 만큼의 보상”, “법을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요청했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하여 “새 대통령의 5년은 무사하길” 바랐다.

딸 이주영을 이태원 참사로 잃은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새 대통령의 당선 소식을 휴대전화로 보며 또다시 ‘안전과 생명’을 떠올렸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기본이잖아요. 최소한의 역할을 외면하는 정부가 두번 다시 반복돼선 안 됩니다.” 이 당선자는 참사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생명안전기본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대통령과 공직자가 책임을 지는 자세도 간절하다”며 “잘한 일은 칭찬받고 잘못은 책임질 줄 아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란사태 이후 긴 시간을 탄핵 광장에서 보낸 서창원(27)씨는 광장을 통해 알게 된 ‘고공농성 노동자’ 이야기를 새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옵티칼 노동자 박정혜씨의 고공농성은 세계 기록을 경신할 정도고, 세종호텔 노동자 고진수씨도, 조선 하청 노동자 김형수씨도 고공에 있다는 걸 잊지 않고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공약대로 노동조합법 개정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시민이 바라는 ‘경제 회복’은 거창하지 않았다. 자신과 주변의 사정을 되짚으며 정당한 대가, 복지의 선순환을 되찾아달라고 요청했다. 택시기사 신아무개(72)씨는 “나와서 일하고 (회사에 사납금을) 입금도 못 하고 들어간다. 차를 운전하며 다니다 보면 건물 대부분이 공실”이라며 “서민층이 잘살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권혁환(55)씨도 새 대통령이 “일한 만큼 보답받을 수 있다는 믿음만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소영(22)씨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들을 위한 복지가 확충됐으면 한다”고 했다.

내란과 수사·재판 과정의 혼선, 세를 불린 극단적인 주장 앞에 불안과 혼란을 겪으며 ‘안정과 기본’을 새 대통령의 우선 과제로 주문하는 시민도 많았다. 윤선봉(67)씨는 “이번 일을 겪으며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국민들이 법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이현우(24)씨는 “여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태도가 만연해 있는데 새 대통령은 더 다양한 국민의 존재를 챙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재민(46)씨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대통령이 당연히 품고 있으리라고 믿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희망찬 시작이기를 기원했다. “정치 보복보다는 화합을 이뤄 의미 있는 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한번 이런 일을 겪어 봤으니 새 대통령은 조심하리라고 믿어요.”(서울 서초구 주민 김아무개씨)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투표했어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부디 무사히 5년을 마쳐주길 바랍니다.”(서울 종로구 주민 박정민씨)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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