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에서 시험 비행 중인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용 무인기(드론). 유탄 발사기가 장착돼 있다. 자포리자=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5월 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으며,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은 물론 하르키우·수미 등 다른 지역까지 추가로 장악하기 위해 여름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미국과 유럽 각국은 휴전 협상에 응하지 않는 러시아를 비판하면서 러시아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걸어둔 ‘제한 조치’를 해제하겠다는 경고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독일·영국·프랑스 3국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서방제 무기의 사거리·타격 목표 제한을 해제한다고 밝혔고, 독일은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500㎞급 순항 미사일인 ‘타우러스’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장거리 타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이미 공급했고, 우크라이나 현지 생산까지 시작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휴전에 소극적이던 러시아가 먼저 협상을 제안한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습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푸틴은 완전히 미쳤다”거나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장악하려고 하면 러시아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례 없는 수위의 경고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휴전 협상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던 러시아가 태도를 바꾼 것은 지난 5월 29일이었다. 그동안 미국이나 우크라이나 측에서 휴전 협상에 응할 것을 요구해오던 모습과 달리, 러시아가 먼저 협상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는 6월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2차 접촉을 갖자는 제안을 먼저 내놨다. 러시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5월 28일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대한 충격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5월 20일부터 최소 1,000대 이상의 장거리 자폭 드론을 러시아로 날려 보낸 우크라이나는 5월 28일 새벽부터 모스크바 방면으로 대량의 자폭 드론을 날렸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 외곽 4개 국제공항이 일시적으로 폐쇄됐고, 시내 곳곳에서 전투기와 헬기, 대공포가 드론을 요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겨냥해 드론을 날린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러시아가 놀란 것은 그들의 심장부, 크렘린 상공이 처음으로 뚫렸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방공 강화를 위해 도심 외곽에 대량의 저고도 탐지 레이더와 대공포,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을 배치했지만, 이번 공습에서 우크라이나군 자폭 드론이 처음으로 크렘린 인근 상공으로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28일 오후, 러시아는 크렘린과 붉은광장 일대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병력을 급히 투입해 ‘최후방어선’을 치기도 했다. 크렘린의 방공이 뚫린 것은 1987년 마티아스 루스트 사건 이후 거의 40년 만이었다. 크렘린 상공을 통과한 드론들은 북쪽으로 110㎞를 더 날아가 드론과 미사일 등을 생산하는 전략시설인 크론슈타트 군수공장에 명중했다. 대량의 드론이 러시아 심장부를 관통해 무려 700㎞를 날아가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놀라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베르나드스키 대로에 있는 미락스파크 주거단지 아파트 창문 사이로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모스크바=AP 뉴시스
러시아 주요 공군기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거미줄작전'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 며칠 뒤, 더 충격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현지시각 6월 1일, 전략폭격기들이 배치돼 있는 러시아의 주요 공군기지들에서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보고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동안 러시아 서부는 물론, 몽골 국경과 가까운 곳의 공군기지에서까지 폭발과 화재가 보고됐지만, 많은 수의 폭격기와 탄약고가 터져 나가는 동안에도 러시아군은 도대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보국(SBU)이 주도한 이 작전은 일명 ‘거미줄작전(Operation Web)’이라는 코드로 수행됐다. 공군기지 인근에 정차한 컨테이너 트럭의 뚜껑이 열리면서 트럭 1대당 20~30대의 FPV 드론이 날아올랐다. 드론들은 무방비 상태의 러시아 공군기지로 들어가 주기돼 있던 폭격기들에 쇄도했다. 덩치가 꽤 크고, 장거리를 비행해야 하는데다 소음도 컸던 기존의 장거리 자폭 드론과 달리, 이번에 사용된 FPV 드론들은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고, 소음도 거의 없어 러시아군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공격을 받은 기지에는 북방함대 거점인 무르만스크 인근의 올레냐 공군기지, 모스크바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이바노보 공군기지와 댜길레보 공군기지, 심지어 몽골과 가까운 이르쿠츠크주의 벨라야 공군기지까지 포함됐다.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러시아 군용기.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영상 캡쳐
러시아는 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폭격기 전력을 사라노프 지역의 엥겔스-2 공군기지에 집중 배치해 운용했지만, 전쟁 발발 이후 이곳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이 거세지자, 앞서 언급한 공군기지들로 폭격기들을 분산 운용해 왔다. 현재 러시아군이 운용 중인 폭격기는 초음속·장거리 전략폭격기인 Tu-160M 시리즈 20여 대, 터보프롭 방식 장거리 전략폭격기인 Tu-95MS와 초음속 중거리 폭격기 Tu-22M3 각각 50여 대 등 120여 대인데, 이번 공격으로 무려 42대의 폭격기가 피격돼 완파 또는 대파됐다. 러시아 전체 폭격기 전력의 3분의 1이 단 몇 시간 만에 파괴된 것이다.
러시아 폭격기의 3분의 1을 파괴한 우크라이나 FPV 드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런 공격은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공격이다. 공군기지를 방어하는 방공무기들은 대부분 적의 미사일·항공기나 미터 단위 크기의 장거리 자폭 드론 대응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기껏해야 가로·세로 크기가 수십 센티미터 수준인 소형 FPV 드론은 격추는 고사하고 탐지하기도 어렵다. 지상에 배치된 방공무기들은 대부분 레이더를 이용해 표적을 탐지·추적하는데, 현재 러시아군이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레이더는 소형 FPV 드론과 같은 물체는 아예 탐지하지 못하거나 작은 새 정도로 인식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요격이 가능할 턱이 없다. 실제로 이번 공격에 사용된 드론들은 프로펠러가 4개인 쿼드콥터 방식의 소형 FPV 드론이었다. 기지 인근의 컨테이너 트럭에서 날아오른 이 드론들은 낮은 고도로 유유히 기지 상공에 침입한 뒤, 카메라로 표적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폭격기들의 가장 취약한 중앙동체나 날개 쪽에 정확히 명중했다. 러시아군이 이 드론들을 발견했다면 소총이나 산탄총 따위로 직접 쏴서 격추하거나, 휴대용 전자전 재머를 사용해 드론을 떨어뜨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떨어뜨린 드론들은 주기장에 있는 항공기나 연료탱크, 미사일 등 탄약에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유폭 우려를 생각하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사방에 항공기와 미사일이 있는 공군기지에서 재머를 썼다가는 1967년 미 항공모함 포레스탈 화재 사건 때처럼 미사일이나 로켓의 전자식 신관이 오작동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기지 밖에서 막지 못하면 사실상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을 받은 건물과 차량이 파손돼 있다. 하르키우=AP 뉴시스
소형 FPV 드론은 탐지·추격 어려워...우리도 대비책 마련해야
러시아는 이런 유형의 공격을 2023년에도 당한 적이 있었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남쪽에 있는 먀슐리시치 공군기지에 우크라이나군과 협력하는 파르티잔들이 침투해 이 기지에 있던 러시아 공군 A-50U 조기경보기 레이돔 위에 내려앉아 ‘인증샷’을 찍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러시아는 FPV 드론의 공군기지 접근 위험성을 간과했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결과는 6월 1일, 러시아 언론들이 ‘러시아판 진주만 공습’이라고 부르는 대참사였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공격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단들을 활용해 이루어졌다. 공격에 사용된 FPV 드론은 일반인들도 온라인 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품을 간단하게 개조한 것이었고, 드론에 장착된 탄두 역시 러시아 국내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혼합화약이었다. 이러한 드론은 국내에서도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화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있으면 질소 등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폭발물을 제조, 드론에 장착해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에도 중국인들이 국가정보원이나 공군기지 주변에서 드론을 날리다 체포됐다는 보도들을 계속해서 접하고 있다. 우리 공군기지나 국가전략시설들도 이런 형태의 공격에 아주 쉽게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도 이번 러시아 공군기지 드론 피격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당장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대당 1,000억~2,000억 원짜리 전투기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