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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2명 중 1명이 학생에게 교권 침해를 당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5월에만 제주에선 고등학교 교사가, 경기도 의왕에선 초등학교 교사가, 경기도 수원에선 중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교사에 대한 교권 침해는 신체적 폭력에서 그치지 않고 성적 가해 양상으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KBS는 이 사건을 통해 교내 교권 침해 실태를 진단해 보고자 합니다.

■ "연고 발라 주세요"…"초6 남학생이 '신체 주요 부위' 두 차례 노출"

지난 4월 2일,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보건 교사 A 씨는 보건실을 찾은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부탁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신체 주요 부위'가 아프니 연고를 발라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접 연고를 바르면 된다"며 제지하고, 학생 손에 연고를 묻힌 면봉을 들려 보냈지만 학생은 또 다시 A 씨를 찾아왔습니다.

이어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A 씨에게 '신체 주요 부위'를 보여줬습니다.

"저한테 그걸(신체 주요 부위) 들이밀면서 "저 자연 포경해야 돼요? 아니면 이거 진짜 포경해야 돼요?" 이렇게 저한테 물어보는 거죠."
- 피해 교사 A 씨

학생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까지 하다가 A 씨가 학부모를 부르겠다고 하고 난 뒤에야 보건실에서 나갔습니다.

■ '교권 침해' 인정됐지만 "특별 교육 10시간 이수"가 전부

해당 교육청의 교권보호위원회 결정통지서

A 씨는 사건 다음 날 가해 학생을 교육청에 신고했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는 한 달간의 검토 끝에 학생이 A 씨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고 보고, '교권 침해 행위'로 인정했습니다.

해당 교육청의 교권보호위원회 결정통지서

하지만, 교육청에서 학생에게 내린 처분은 특별교육 10시간 이수가 전부였습니다.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아이가 아파서 보건실에 찾아갔을 것"이라고 두둔했습니다.

"(교감 선생님께) '형제끼리 자라서 원래 이제 벗고 집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이제 말씀하시면서"
- 피해 교사 A 씨

사건이 일어나고 약 두 달의 시간이 있었지만 가해 학생은 물론 학부모 또한 A 씨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KBS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학부모는 뒤늦게 A 씨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경찰은 강제 추행 혐의로 가해 학생을 입건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건실에 온다는 생각만 해도"…피해 교사, 트라우마 호소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이 되어 가지만, A 씨는 여전히 일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부터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교내 상담 센터를 찾아가야 했고. 교권보호위원회의 진술 과정에서, 옆 방에 가해 학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A 씨는 사건이 벌어진 그 순간부터, 어떻게 대처했어야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매 순간을 곱씹어 본다고 말합니다.

"제가 잠도 잘 못 자고. 제가 시뮬레이션을 되게 많이 돌려 봤거든요. '어떻게 하면 내가 이걸 막았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대처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하면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렸었는데…."
- 피해 교사 A 씨

피해 교사 A 씨의 진단서

이 사건으로 인해 A 씨는 적응장애와 우울증, PTSD 장애 진단도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병가를 내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 "가지 말라는 말밖에"…교내 가해자-피해자 분리 유명무실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A 씨는 학교에서 가해 학생을 만나는 게 가장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내에서 가해 학생과의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가해 학생의 처분이 전학이나 퇴학이 아닌 특별 교육 이수에서 그쳤기 때문입니다.

사건 발생 이후 가해 학생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던 A 씨는 학교 측의 배려로 교권침해 특별휴가를 사용했지만, 5일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4일은 자신의 병가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학교는 가해 학생에게 접근 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은 없습니다. 교내에선 물리적 분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해 줄 수 있는 분리 조치는 걔가 보건실로 들어오는 거를 누군가 목격한 사람이 '너 가지 말아라' 이렇게 하는 것밖에 없어요."
- 피해 교사 A 씨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 교사가 가해 학생을 피해 다니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교사 대상 성범죄 늘고 있지만…퇴학·전학·학급 교체는 15%


A 씨의 사례처럼,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내 성범죄는 최근 5년 동안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2023년부터 교사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만 교사 대상 성범죄를 이유로 600건 넘는 교권보호위원회가 개최됐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교보위에서 가해 학생에게 전학이나 퇴학, 학급 교체 처분을 내린 경우는 전체 교보위 개최 건수의 15% 안팎에 불과합니다.

성범죄의 가장 기본적인 피해자 보호 지침인 가해자와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교원단체는 성범죄 사건이 발생해도 학교라는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교사가 휴가나 휴직을 신청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선생님들은 개인적으로 병가를 쓴다거나 연가를 통해서 학교를 벗어나는 방법밖에는 실제적으로 효과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 유상범/교사노조 교권국장

■ "드러나지 않은 사건도 많을 것…'전문 인력' 충원해야"

유상범 교사노조 교권국장이 KBS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교원단체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은 드러나지 않은 게 더 많을 거라고 지적합니다.

가해 학생이 미성년자, 특히 촉법소년인 경우에는 형사 처벌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도리어 피해 교사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될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미성년자, 특히 촉법소년인 경우는 신고 절차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그대로 은폐되는 경우도 많고요. 피해 선생님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거나,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교사들이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 유상범/교사노조 교권국장

피해 교사가 교육청에 신고를 해 교보위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A 씨 사건의 가해 학생처럼 낮은 수위의 처분을 받는 게 대다수입니다.

퇴학, 전학, 학급 교체 등 높은 수준의 처분을 내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증거와 목격자의 진술 등이 필요한데, 수사 기관이 아닌 교권보호위원회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 학생과 분리되지 못한 교사는 남은 학기 동안 가해 학생을 만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합니다.

"보통 1년 남짓 같이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선생님들은 너무 괴로워하세요. 그 공간 자체에서 수업을 진행하기가 굉장히 어려울뿐더러, 트라우마 치유가 잘 안되기 때문에…."
- 유상범/교사노조 교권국장

교원 단체들은 '학교'라는 장소의 특성상 범죄가 발생해도 자체적 처리가 어려운 만큼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내 범죄에 대해서는 더 전문적인 분석과 교사 보호를 위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또, 성범죄 사건일수록 피해자가 나서서 진술하는 것을 꺼리는 만큼,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사의 입장을 더 충실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전국 교사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교사 81%는 교권 침해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촬영기자 심규일 / 영상편집 전혜지 / 그래픽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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