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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고공 농성장서 마지막 유세
성폭력 피해자 이아무개씨가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류석우 기자

6·3 대선 본투표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의 유세 연설을 지켜보던 한 여성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흐느낌으로 시작했던 여성의 울음 소리가 점차 커지며 주변 사람에게까지 들릴 정도가 됐다. 하염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여성의 어깨 위로 후두둑 비까지 떨어졌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말없이 여성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주었다. 여성은 10분 남짓 진행된 권 후보의 연설 내내 펑펑 울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고 살아봅시다.”

연설을 끝마친 권 후보가 여성에게 다가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 여성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권 후보에게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편지를 보냈던 이아무개씨다. 권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노동당 유튜브 채널에 ‘비동의 강간죄 도입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이씨의 편지를 소개한 바 있다.

권 후보가 이씨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했던 건, 이씨가 보낸 편지에서 ‘(성폭력 피해 이후) 여러차례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권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도 이씨의 편지를 언급하며 “당선되면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비동의 강간죄를 반드시 제정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씨가 권 후보 유세 현장에 나온 건 이날이 처음이다. ‘비동의 강간죄’라고 적힌 손팻말도 들고 나왔다. 이씨는 “너무나 간절해서 누구라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권 후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비동의 강간죄 도입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와서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씨는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얘기하는 영상 속 권 후보의 말을 들으며 “정말 몇 시간을 울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 감사함에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하다가 이렇게 유세 현장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권 후보가 대선 끝나면 다시 만나자고도 이야기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옆에 앉아 다른 활동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류석우 기자

박경석의 옆에서, 구의역 김군의 동료들 앞에서

권 후보는 이날 ‘광장을 닮은 선거운동’이라는 콘셉트로 서울 곳곳을 찾았다. 유세 현장에선 ‘기호5번 권영국’을 외치기보다 장애인과 노동자, 여성 등 광장의 주역들을 더 많이 호명했다. 권 후보는 단상 위에 올라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유세 메시지를 내놓는 방식 대신, 광장의 주역들 옆에 서서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앞 유세 땐, 휠체어를 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옆에 쪼그려 앉아, 박 대표와 같은 눈높이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경험들을 들었다. 김정하 장애인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여성과 남성을, 청년과 노인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계속 갈라치기하고 혐오의 말로 몰아가는 특정 후보의 발언에 귀를 정말 씻고 싶었다”며 “권영국 후보님이 티브이(TV) 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향해) ‘질문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통쾌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에야 마이크를 잡은 권 후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와 다르다고 구분하고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려 목소리가 지워지는 그러한 세상”이라며 “등급을 나누고 차별하는 것을 이젠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가 2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김군의 동료들을 안아주고 있다. 류석우 기자

권 후보는 이후 발길을 돌려 서울 광진구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으로 향했다. 2016년 5월28일 오후 5시께, 이곳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살 청년 김군을 추모하고, 또다른 김군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서다.

권 후보는 이곳에서 김군의 동료들과 함께 헌화를 한 뒤, 김군의 동료 이승호씨와 이정호씨를 차례로 안아줬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작업환경이) 위험하다”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승호씨는 “이렇게 잊지 않고 신경 써주고 기억해 주셔서 저희는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선거운동의 시작과 끝, 한화빌딩

권 후보의 이날 마지막 유세 현장은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이었다. 김형수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두달 넘게 고공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현장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5월12일)에도 권 후보는 빌딩 앞에 지어진 철탑에 올라 농성 중인 김 회장의 두 손을 맞잡고,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권 후보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 선거 운동의 마지막을 한화빌딩 앞에서 시작한다”며 “21일의 대선을 치르며 호소드렸던 많은 분들과 함께 모이려 한다. 모여서 하늘에 가둔 이들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이 자리에서 앞서 강남역에서 만난 이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씨가) 저를 안고 ‘후보님이 있어 제가 살 것 같다. 살 희망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며 “우리의 정치는 바로 아파하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귀를 기울이고 아픔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덧붙였다. “티브이 토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그렇게 고맙다고 얘기할 때 저도 울었습니다. 진보 정치란, 바로 이런 거였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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