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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평등의 약속들] ③ 비동의 강간죄 도입
지난 2023년 7월25일 여성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국회 본관 앞에서 형법 297조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우리나라 강간죄는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을 당해야만 성립합니다. 그렇기에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판결이 나와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반면 세계적 기준은 ‘동의 없는 성적 행위는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21년 11월25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청년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며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약속한 후보는 누구일까요? 바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입니다. 안 후보는 “거절 의사를 밝힌 혹은 명시적 동의 의사라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관계를 시도했다면 성폭행으로 처벌하도록 형법 297조를 개정하겠다”고 했죠. 이 공약은 2019년 여성단체 등 시민사회에서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라는 이름을 붙인 단체를 결성해 꾸준히 정부·국회에 요청해온 내용과 같았어요. 성범죄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범죄’로 인정받지 못해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바꿔달라는 요청에 대선 주자가 응답한 중요한 순간이었죠. 당시 안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공약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정치권에 등장한 뒤 다양한 ‘철수의 길’을 걸어와서일까요. 안 후보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공약마저 철수하고 맙니다. 공약 발표 두달가량이 지난 2022년 1월 “고민해야 할 지점이 아직 존재한다”고 공약을 철회한 겁니다.

■ 퇴보

‘안철수의 철수’는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안 후보가 막판 단일화를 이룬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한다는 게 공약이었는데요. 사실상 성범죄 무고죄를 타깃한 거였어요. ‘꽃뱀론’ 같은 그릇된 신념을 법률로 만들어 성폭력 피해자의 수사기관 신고 결심을 한층 어렵게 만드는 ‘퇴행’이라는 비판이 잇따랐죠.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거셌던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포함한 원내 정당 5곳이 모두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위한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하기도 했었는데요.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공약은 페미니즘 백래시(반발성 공격)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21년 11월25일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유튜브 채널 ‘안철수’ 갈무리

■ 이번 대선

이번 대선에서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명시적으로 약속한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동연 경선 후보가 비동의 강간죄 도입 입법을 공약했는데, 지난달 28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가 공개한 정책공약집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2022년 3월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충분히 거쳐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비동의 강간죄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는 아직 없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여부를 묻는 경향신문 질의에 ”강간죄 구성요건은 입법부의 권한 또는 법원의 판단 영역”이며 “피해자 권익 보호 제도는 필요하나 법률 정비는 국회의 입법 사항”이라는 답변을 보냈다고 합니다.

■ 왜 필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하는 대표 논리 중 하나는 ‘억울한 사람이 성폭력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는 겁니다. 강간죄 성립 요건을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바꾸면, 동의와 관련한 피해자의 속마음(내심)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대체로 성폭력의 유죄 판단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의 말(진술)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과장된 우려에 가깝습니다. 이미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한 영국, 독일, 스웨덴, 일본 등의 사례를 보면, 동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규정을 추가해 우려점을 보완했어요. 예컨대 폭행과 협박이 없더라도 피해자가 술·약물에 취했거나 상대가 직장 상사 등 위계 관계라는 등 동의 여부를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과 피고인 입장에서 상대방이 동의했다고 합리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있었음이 입증되어야 하면 ‘죽을 만큼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사라질 수 없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강간 피해를 상담한 218명의 상담일지를 분석한 결과 153명(70.2%)의 사건은 폭행·협박 없이 발생했다고 해요. 피해자 보호와 구제를 제대로 하려면 강간죄 구성요건을 하루빨리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미죠.

또한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가 차원에서 ‘상대방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범죄’라는 원칙을 확립하는 거예요. 일본에서 형법상 ‘강제 성교죄’(강간죄)를 ‘부동의 성교죄’(비동의 강간죄)로 바꾸는 변화를 주도한 시민단체 스프링의 다도코로 유 공동대표는 최근 한국을 방문해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동의 없는 성행위가 처벌 대상이 된다는 메시지를 죄명 변경을 통해 국민에 명확히 전달한 덕분에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신고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 저희는 (법 개정) 성과를 실감한다”고요.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피해자를 더는 침묵시키지 않을 수 있는 약속이란 뜻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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