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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1년 만의 외출’ 영상으로 근황 알린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 저자 김온유씨
김온유(오른쪽) 작가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종합병원 내 산책로에서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잡은 채 동생 김주영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간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어요. 매 순간 나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기에 그분의 큰 뜻을 믿습니다.”

2008년부터 12년간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로 매 순간 숨을 이어온 김온유(37) 작가의 고백이다. 김 작가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02년 의료진의 오진에서 시작된 수차례의 수술로 갈비뼈가 소실돼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졌다. 기계 호흡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폐가 쪼그라든 그에게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 건 ‘앰부 천사’로 불리는 자원봉사자였다. 그의 곁에서 인공호흡기를 손으로 눌러주는 앰부 봉사 프로그램 ‘릴레이 온유’에 12년간 자원한 이들의 수는 4만3000여명에 달한다.



김 작가는 뜻 모를 고난을 마주해야 했던 심경과 신앙 고백, 그리고 기적 같이 이어져 온 앰부 천사를 향한 감사와 애정을 담아 2019년 책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생명의말씀사)를 펴냈다. 책은 4쇄를 돌파했고 신규 봉사자도 꾸준히 유입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병원에서 외부인 면회를 제한하며 더는 앰부 천사를 만날 수 없게 됐다. 12년간 이어진 릴레이 온유가 중단된 것이다. 그 대신 병원이 그동안 하지 않았던 기계 호흡 치료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호흡 기계가 모든 일상을 해결해주진 않지만, 앰부와 기계를 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릴레이 온유’란 이름의 유튜브 계정을 열고 다시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김 작가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이날 인터뷰에선 동생 김주영(31)씨가 곁에서 김 작가의 호흡을 도왔다.

-책 출간 이후 6년 만입니다.

“그동안 평범한 환자의 일상을 살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릴레이 온유가 종료되면서 ‘인생의 새 챕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내면서 제가 품은 소망 중 하나가 ‘병원에서 제 호흡을 책임지고 앰부 봉사는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책 출간 뒤 두 달 만에 이 소망이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해지자 병원에서 호흡 기계를 가져다 준 거예요. ‘4000여 일간 계속된 릴레이 온유를 주님이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하시는구나’ 싶어 참 놀랍고 감사했지요.”

김온유 작가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종합병원 내 산책로에서 앰부(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잡고 밝은 미소를 보이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이날 김 작가는 대화 내내 대부분 스스로 앰부를 눌러가며 호흡했다. 병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호흡 기계를 환자용 보행기에 실어 가져왔지만, 따로 사용하진 않았다. 손이 아프지는 않은지 묻자 그는 “저녁 운동 때마다 앰부를 누르면서 손가락을 단련한다”며 웃었다.

-릴레이 온유가 끝난 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사실 처음엔 기쁘고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이내 마음이 어려워졌습니다. 릴레이 온유를 할 땐 일정에 맞춰 봉사자를 구하고 매일 이들을 맞이하느라 쉴 틈이 없었거든요. 앰부 봉사가 중단되니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진작부터 이 세상 속도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는데…. 앰부 봉사자와 함께 하는 특별한 삶을 살다 평범한 환자의 삶으로 돌아가니 하루하루가 단조롭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무의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힘들었어요. 차라리 더 아플 때가 마음 편했습니다. 아프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으니까요.

이를 놓고 기도하던 어느 날, 하나님이 지상에서 당신의 삶을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나도 지상에서 3년 남짓 일했는데, 너는 왜 끊임없이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라고 말씀하는 것 같았어요. 주님은 당신을 위해 일하고 싶은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니, 아무것도 근심치 않고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김 작가의 묵상 글에 맞춰 동생 주영씨가 그린 작품. '주님을 알자. 애써 주님을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 주님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 비처럼 오신다'는 묵상이 담긴 그림이다.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개인 SNS에 묵상 글과 그림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마음의 평안을 되찾은 이후로 여러 온라인 성경공부에 참여하면서 주님이 제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받은 여러 은혜를 증언하며 사는 것, 이게 제 일이라는 확신도 들었고요. 그래서 매일 묵상하고 깨달은 내용을 틈틈이 기록했습니다. 이 내용을 가족을 비롯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와도 나눴지요. 책 출간 제안도 받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싶어 거절했어요.

김 작가의 묵상 글에 맞춰 동생 주영씨가 그린 작품. 그의 창세기 23장 1~20절 묵상이 담긴 그림이다.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이후 한 친구가 ‘동생이 서양화를 전공했으니 네 글에 그림을 붙어 달력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불신자인 또 다른 친구도 ‘어떻게 기도하는지 몰랐는데 네 글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하고요. 두 반응이 기도에 대한 하나님 응답인가 싶어 지난해 1월부터 매주 화요일 SNS에 그동안 쓴 묵상 글과 동생의 삽화를 정리해 올리고 있습니다.”

김 작가는 지난해 11월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21년 만에 병실 문을 나설 용기를 냈다. 이 과정과 결과를 담은 게 ‘21년간 병실을 떠날 수 없었던 내가 외출을 결심한 이유’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다. 조회수 2만을 넘긴 이 영상엔 “보다가 펑펑 울었다” “앞으로 더 자주 외출했으면 좋겠다” 등의 응원 댓글 200여개가 달렸다.

동생 주영씨 결혼식을 위해 21년 만의 첫 외출을 감행한 김 작가가 지난 8월 결혼식장에 도착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21년 만의 첫 외출은 어땠습니까.

“처음엔 동생의 결혼식을 당연히 못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홀로 산책을 하다 쓸쓸한 마음에 ‘제게도 즐거운 일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주님이 보내주면 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외출에 필요한 목록을 죽 써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습니다. ‘이런 역할이 필요한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죠. 다들 매우 기뻐하면서 뭐든 돕겠다고 했어요. 친구들 반응 덕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동생 주영씨 결혼식을 위해 21년 만의 첫 외출을 감행한 김 작가가 지난 8월 친구들과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승합차에 오르고 있다.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동생이 2월 프러포즈를 받은 뒤 8월에 결혼식이 있어서 그 6개월간 친구 40여명과 비밀리에 깜짝 방문을 준비했습니다. 더 많은 친구와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영상 촬영도 기획했고요. 가장 염려했던 게 의료진의 허락이었는데요. 다행히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았습니다.

릴레이 온유가 끝나고 잠잠히 지내면서 앰부 천사의 헌신과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어요. 그동안은 바빠서 이들의 소중함을 곱씹을 시간이 없었거든요. 손꼽아 기다리던 외출 당일, 메이크업도 받고 준비한 옷도 입은 채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친구들 얼굴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제게 시간과 사랑을 준 이들 얼굴을 종일 마주 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그 어느 곳이나 천국’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결혼식장 신부대기실에서 김 작가가 동생, 어머니와 함께 기념촬영하는 모습.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결혼식에서 언니를 본 동생의 소감도 궁금합니다. 동생분 어떠셨나요.

“사실 결혼식 한 주 전 언니의 계획을 눈치챘어요. 언니의 마음은 너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떡하나 싶어 많이 걱정됐어요. 결혼식 자체보다 언니가 온다는 사실에 더 긴장되더라고요.

결혼식 날 만난 언니는 평소와 달리 환자복이 아닌 예쁜 외출복 차림이었어요. 뒤풀이에도 참여한 언니와 함께 정말 잔치같이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좋은 가족을 만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김주영씨)

지난해 12월 그만을 위해 열린 음악회에서 공연을 보며 박수치는 김온유 작가.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현재 마지막 영상인 두 번째 영상은 지난 2월 그를 위해 친구들이 열어준 음악회 방문기다. 김 작가는 “‘나를 위한 음악회’를 기획해준 친구 덕에 4개월 만에 두 번째 외출이 성사됐다”며 “의료진의 허락을 구할 때마다 긴장되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앞으로의 외출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김온유 작가가 개인 SNS에 올린 일상 사진. 김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향후 계획과 기도 제목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동생의 그림과 함께 온라인에서 묵상 글을 나누면서 주님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살아가려 합니다. 이제 저는 병원을 나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어요. 칠순이 다 된 부모님과 함께 휴양지를 다니며 서로를 위로하고도 싶고요. 몸의 건강과 회복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병원과의 문제 역시 기도 중인데요. 얼마 전 저를 치료해 온 의료진 모두에게 ‘진실을 잘 아시는데, 꼭 법으로 문제를 풀어야겠느냐’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예요. 병원이 과실에 의한 피해를 인정하고 합당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지금도 내 삶을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인도하는 하나님이기에 앞으로의 길도 같은 방식으로 이끄실 거라 믿습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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