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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쉼표, 내가 원할 때 찍는다
Z세대 은퇴 활용법, 재부팅 기회로
‘평생직장’이나 ‘60세 정년’이라는 말이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 중간에 짧은 은퇴를 반복하며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마이크로 은퇴’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정지윤 선임기자


퇴근 후 거울을 보니, 눈 밑 다크서클 너머로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이 읽혔다. 지친 삶의 일면을 외면할 수 없었던 3년 차 디자이너 이미현(26·가명)씨가 올 초 ‘마이크로 은퇴’를 선언한 이유다.

1년 무급 휴가를 낸 이씨는 처음 두 달간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8시간 숙면을 하고 필라테스 수업으로 굳은 몸을 풀었다. 휴대전화 알람도 끄고, SNS도 일부러 멀리했다. 이씨는 “할 일이 없어 불안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 은퇴는 마지막 챕터가 아니다

최근 20~30대 직장인 사이에서 ‘마이크로 은퇴(Micro Retirement)’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60세 정년 이후의 은퇴가 아니라 경력 중간중간에 짧은 소규모 은퇴를 반복적으로 가져가는 새로운 노동 형태를 의미한다. 해당 개념은 ‘미니 은퇴(Mini Retirement)’라는 이름으로 2007년 팀 페리스의 저서 <주 4시간 일하기(The 4-Hour Workweek)>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작가는 “왜 60세까지 일을 하다 갑자기 인생을 소비하려 드는가”라며 평생 한 번의 은퇴가 아닌, ‘은퇴 같은 시간’을 삶의 중간중간에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개념이 원격근무가 가능한 디지털 노마드나 자산 여유가 있는 장기 여행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보편적 직장인의 현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컸다.

‘미니 은퇴’가 ‘마이크로 은퇴’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팬데믹 이후 일과 생활의 경계가 흐려지고, Z세대를 중심으로 번아웃과 삶의 불균형을 경험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나아가 이들은 ‘생계를 위한 노동’을 넘어 ‘삶의 질과 정신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 변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은퇴는 먼 미래의 ‘목표’가 아닌, 현재 내 삶을 점검하고 회복하는 ‘쉼표’가 된 것이다.

이씨는 마이크로 은퇴를 “지속 가능한 삶과 노동의 균형을 위한 ‘삶의 인터벌’”이라고 정의했다. 현재 그는 디자인 관련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영화나 전시를 관람하면서 창의력을 되살리고 있다. 올가을에는 2개월간 유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단기 연수도 계획 중이다.

조기 은퇴나 자산 독립을 추구하는 ‘파이어(FIRE)족’과 달리 마이크로 은퇴는 원직장 복귀나 재취업을 전제로 한 ‘일시적 퇴장’이다.


■ ‘경력 단절’ 아닌 ‘일시적 퇴장’

Z세대가 마이크로 은퇴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휴식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조기 은퇴나 자산 독립을 추구하는 ‘파이어(FIRE)족’과 달리 마이크로 은퇴는 원직장 복귀나 재취업을 전제로 한 ‘일시적 퇴장’이다. ‘백수 기간’이 아니라 ‘창의적 커리어 재정비’의 기회인 셈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 역시 Z세대의 마이크로 은퇴를 “정신건강뿐 아니라 창의성과 직업 정체성 회복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했다.

직장을 떠난 시간을 단순한 공백이 아닌 ‘전환의 자원’으로 여기는 인식은 온라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MicroRetirement, #MiniSabbatical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지며 “쉼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퇴사 후 1년 유럽 여행’ ‘6개월 쉬면서 새로운 기술 배우기’ 같은 실천형 콘텐츠가 젊은층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김윤재씨(28·가명)는 첫 직장에서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살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국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환경과 몰입 가능한 일을 실험했다. 그 결과 ‘프리랜서 마케터’라는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김씨는 “예전엔 정답 같은 인생을 좇았지만, 지금은 방향 없는 걸음도 나를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며 “누군가는 ‘끈기 없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도망이 아니라 탐색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마이크로 은퇴를 더 나은 경력을 위한 ‘재부팅’이라고 풀이한다. 이나영 커리어 컨설턴트는 “기업도 ‘끊임없는 근무’가 미덕이던 문화를 넘어 이런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필요하다. 경력 공백을 이탈이나 결함이 아니라 창의성과 몰입 회복의 ‘재정비 시간’으로 인식해야 효율적인 인재 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 은퇴는 철저한 준비 없이는 실행하기 어렵다. 전문가들 역시 재정적·심리적 안전망이 없는 무계획한 휴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탈정규적 삶’을 위한 리허설

마이크로 은퇴는 ‘평생직장, 한 직업’이라는 전통적 경력 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 하반기 6개월 휴직을 앞둔 박준호씨(29·가명)는 “이제는 한 직장에서 정년을 보장받기 어려운 시대다. 여러 길을 미리 시도하며 내 방식의 경력을 찾아가고 싶다”며 “‘탈정규적 삶’을 살아보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려 마이크로 은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지원 여부나 고용 형태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실행 방식은 다르지만, 마이크로 은퇴의 핵심은 ‘계획된 멈춤’이다. 결국, 마이크로 은퇴는 철저한 준비 없이는 실행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하거나 가족 부양 책임이 크면 갑작스러운 휴직이 장기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 역시 재정적·심리적 안전망이 없는 무계획한 휴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마이크로 은퇴 계획서’를 작성하고, 예상되는 위험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것을 권한다. 고용 상태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도 현실적 전략이다. 무급휴직은 고용보험 유지가 가능하지만, 퇴사 시 실업급여를 받기까지 대기 기간이 생긴다.

조성호 재무 설계사는 “생활비 최소 3~6개월분을 마련하고 복귀 후 수입 공백까지 고려한 자금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금 고갈은 정신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면서 “은퇴 기간 건강보험 유지, 단기 아르바이트 가능성,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험 설계 등 보완 계획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력서에 어떤 식으로 기록할지 생각해봐도 좋겠다. ‘창작 콘텐츠 제작’ ‘해외 문화 체험’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포함하면 ‘공백’을 ‘내력’으로 만들 수 있다.


마이크로 은퇴 가이드


[준비편] “추상적 ‘쉼’은 공감받지 못한다”

① 목적 명확히 하기= 마이크로 은퇴는 “왜 쉬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기간, 목적, 예산, 활동 목표 등 포함된 ‘마이크로 은퇴 계획서’를 써보는 것을 추천한다.

② 재정 점검하기= 생활비 최소 3~6개월분은 확보해야 한다. 렌트비, 식비, 보험료, 비상금까지 포함해 ‘월 고정 지출’을 계산하고 필요하면 주거비 절감이나 시간제 아르바이트도 고려한다.

[실전편] “놀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① 루틴 만들기= 일정한 기상·취침 시간, 주간 루틴(예: 월·수·금은 공부, 화·목은 운동)을 세운다. 지나친 방임은 무력감으로, 과도한 통제는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② 이런 삶도 괜찮아=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 반드시 성과가 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실험은 해보는 것이 좋다.

[복귀편] “다음 챕터를 위하여”

① 복귀 경로 설정= 기존 직장 복귀, 이직, 프리랜서 전환 등 경로별로 필요한 준비를 점검한다. 퇴사한 경우 구직활동 계획과 일정, 재정 시뮬레이션을 다시 세워야 한다.

② 공백 활용하기= 이력서에 어떤 식으로 기록할지 생각해봐도 좋겠다. ‘창작 콘텐츠 제작’ ‘해외 문화 체험’ 등 의미 있는 활동을 포함하면 ‘공백’을 ‘내력’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형태든 자신만의 리포트를 남겨두는 방법도 추천한다. 향후 복귀 시 포트폴리오로도 활용할 수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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