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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기로 돌아가 죽음을 맞는 이들이 있다.
치매를 말하는 게 아니다.
노인이 되면 몸도, 마음도 다시 어린아이처럼 약하고 어려진다.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두려움 탓인지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 도피한다.
철없는 아이처럼 된다.
뻔한 거짓말을 하고 숨긴다.
주변의 걱정으로부터 숨는다.
그러면 가족과 지인들은 모르는 줄 안다.

이번 현장은 지방에 있는 6평짜리 원룸이었다.
중장년층의 고독사는 가족과의 모든 관계가 단절된 이가 많다.
적게는 일주일, 길게는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고인은 다행히도 숨진 지 나흘 만에 발견됐다.

20대 중반의 딸이 20분 거리에 살았다.
매주 찾아와 빨래와 청소를 해줬고, 반찬도 챙겨줬다.
원룸도 딸이 마련해 준 것이다.

이지우 디자이너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때, 그러나 수입은 턱없이 적을 나이다.
거기에 아버지 뒷바라지까지 했다.
어린 딸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문제는 아버지다.
워낙에 술을 많이 마시는 이였다.
매일같이 부지런하게 술은 챙기면서 집안을 방치했다.
애써 챙겨준 반찬은 상하기 일쑤였고, 화장실이며 싱크대는 늘 지저분했다.

가끔은 남자친구도 함께 왔단다.
자포자기로 사는 아빠의 집에 남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아빠 집에 들를 때면 늘 쌓여 있는 그 많은 소주병을 치워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20대 여성이 말이다.
남친은 빈 소주병을 팔아다 자기 돈도 조금 보태 용돈까지 쥐어드리고 했던 모양이다.
말씀도 나눠드리고.
보기 드물게 심성이 고운 젊은이, 착한 커플이었다.

어쨌든 딸이 아버지를 줄곧 챙겼던 터라 현장 상황이 심각하진 않았다.
시신도 비교적 일찍 발견된 덕에 ‘특수한 오염’은 많지 않았다.
딸이 직접 정리해도 될 만해 보였는데, 어쨌든 돌연사로 숨진 뒤 며칠 동안 방치된 방이다.
가족이 아무렇지도 않게 청소하듯 치우긴 어려웠을 게다.

이렇게 착한 딸을 두고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삶을 포기한 듯 살았을까.
유품을 정리하다가 방 구석에서 상패를 발견했다.
지역 라이온스클럽에서 받은 거였다.
적혀진 날짜는 아주 오래됐다.

고인의 사연은 그 낡디낡은 상패에서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는 젊은 시절 대형마트를 운영하며 한때 잘나가던 이였다.
상인회니, 봉사단체니 사교모임에도 적극적이었다.
한마디로 왕년엔 떵떵거리고 살았던 양반.

그랬던 양반의 유품에선 이력서가 여러 장 나왔다.

“아빠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주유소에서 일했어요.
최근엔 술도 많이 줄이셨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만두셨더라고요.
잘리신 거죠.”

“언젠간 이럴 줄 알았던 것 같아요.
크게 충격받진 않더라고요.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었으니까요.”

많지 않은 짐을 정리하다가 옷장에서 커다란 종이가방이 나왔다.
뭔가 묵직하게 들어 있었다.
열어 보니 검은 비닐에 무언가가 여러 개 싸여 있었다.

“아이고, 아저씨 진짜….”

(계속)

아버지의 치밀한 거짓말, 딸은 끝까지 몰랐습니다.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왜 제대로 살지 못했을까요.
씁쓸한 그의 마지막 사연이 이어집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4948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이거다!” 큰오빠 환호했다…동생 죽은 원룸 속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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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냄새로 전했다…중년 형제의 황망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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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그림만 믿다 죽었다, 40대男 헛짚은 ‘행복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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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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