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북 야산에 추락한 해군 초계기 P-3CK. 뉴스1
29일 경북 포항 야산에 추락한 해군 초계기가 사고 1분 전까지 관제탑과 정상 교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은 정상 비행하던 초계기가 급강하 한 원인을 찾기 위해 현장에서 수거한 음성기록장치(CVR)를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1분’에 조종사가 언급한 내용에 따라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실마리가 풀릴지 주목된다. 해군 관계자는 30일 언론 브리핑을 열고 전날 추락한 초계기가 사고 직전인 1시 48분까지 해군 포항기지의 관제탑과 정상적으로 교신을 했다고 밝혔다. 해군에 따르면 사고기 P-3CK의 조종사 고(故) 박진우 중령(순직 당시 소령)은 “장주 비행에 접어들겠다”는 취지로 관제탑과 교신을 주고 받았다.
P-3CK는 이날 조종사 이·착륙 교육 훈련을 위해 제주기지에서 포항기지로 왔으며, 이날 훈련은 ‘터치 앤 고’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타원형으로 선회 비행을 한 뒤 활주로에 착륙했다 뜨기를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사고기는 1시 43분쯤 이륙해 1차 이·착륙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2차 비행을 위해 이륙한 상태였다. 이후 우선회 비행을 하던 중 인근의 승마장 인근에서 급강하, 야산에 추락했다. 추락한 시점은 약 1시 49분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관제탑에 기록된 조종사의 마지막 교신은 훈련을 위한 정상 교신이었고, (비행)위험성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1시 48분에서 49분까지 약 1분 간의 짧은 시간 동안 기체 이상 등 급박한 비상 상황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해군은 이날 오전 현장에서 사고기의 음성기록이 담긴 CVR을 수거했다고 밝혔는데, 조종사와 부조종사 간의 대화 내용 등이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또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을 종합하면 사고기는 인근 승마장 부근에서 갑자기 수직에 가까운 급강하를 시작했다. 승마장 바로 옆엔 600여 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고도가 급격히 낮아진 상황에서 대규모 민간인 인명 피해를 우려한 조종사들이 관제탑과의 교신도 포기한 채 기수를 야산으로 틀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해군은 이날 사고기 P-3CK의 이 같은 비행 모습이 담긴 영상을 유가족들의 요구에 따라 공개했다. 영상에는 사고기가 정상적으로 이륙한 후 타원형으로 우선회 비행을 하던 중 아파트 인근에서 수직으로 급강하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체는 급격하게 흔들리는 움직임을 보인 뒤 불과 7~8초만에 지표면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이와 관련, 해군 관계자는 “평소 훈련에 따라 민간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 판단한다”면서도 “국민을 지켜야한다는 사명이 있었을거라는 조종사의 생각을 토대로 설명드린 것이고 실제 이런 상황이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륙을 위해 고도를 높여가던 중 이상이 발생, 900ft(피트)의 낮은 고도에서 하강을 시작했기 때문에 낙하산 등을 활용할 대피도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통상 P-3 초계기에서 비상 상황 발생시 낙하산을 통한 탈출은 3000ft 이상에서 시도한다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조종사인 박 중령은 비행 경력 1700시간, 부조종사 고 이태훈 소령(순직시 대위)은 900여 시간을 보유했다.
해군은 이번 사고로 함께 순직한 전술사인 고 윤동규 상사, 고 강신원 상사에게도 각각 1계급 추서 진급을 결정하고 포항 해군항공사령부 체육관 등에서 합동분향소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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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기, 60년된 노령 기체·비행기록장치도 없어
P-3 해상초계기. 사진 해군
행정안전부와 해군에 따르면 29일 사고 시점에 바람은 초당 5~6m, 기온 섭씨 18.8도, 시정 7마일(약 11.3㎞)로 맑은 날씨였다. 또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전라남도 무안군의 제주항공 참사 때와 같은 대규모 새 떼도 육안으로 관찰되진 않았다. 또 P-3CK의 터보프롭(프로펠러·가스터빈) 4개 엔진은 1개만 살아 있어도 저속 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고기의 갑작스런 급강하가 설명되지 않는 배경이다. 해군에 따르면 사고기는 1966년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생산한 것으로, 2007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인수해 개조한 것이다. 해군은 이를 2010년 7월 인수했다. 기체만 봐선 60년 가까이 된 '노령 항공기'였단 의미다.
또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항공기의 블랙박스 분석이 필수인데, 사고기엔 음성기록을 녹음하는 CVR만 있고 항적·고도 등을 기록하는 비행자료기록장치(FDR)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여객기에 장착된 블랙박스에는 CVR·FDR이 모두 들어있으며, 고온과 강한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러나 군용기엔 이런 규정이 필수는 아니라는 게 해군의 설명이다.
현재 해군이 보유한 P-3 초계기는 1995년에 도입한 P-3C 8대와 2010년 개량형인 P-3CK 8대 등 총 16대가 있는데, 이중 P-3CK 6대는 비행기록 저장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사고기(P-3CK)는 비행기록 저장장치가 없는 항공기였다. 또 4.5년 주기의 창정비는 4년 전인 21년 8월에 받아 올 연말에 창정비를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해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초 생산 연도가 오래되긴 했지만, 항공기를 개조할 때엔 엔진·날개 등 핵심 부품은 완전히 새 것으로 교체한다”며 “(사고기 역시)현재까지 크리티컬(중대한) 결함은 없었고, 올해 2월 야전 정비, 4월 부대 정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