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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낮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 유세 현장에서 한 여성(노란 옷)이 전날 밤 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티브이(TV) 토론회에서 나온 이 후보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사이버레커로 활동하는 대통령 후보가 있다? 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3차 티브이(TV) 토론회에 나온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얘기다. 정확한 출처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가져와 상대 후보 검증에 활용하고자 한 것도 문제지만, 문제의 표현을 ‘인용’해 그대로 노출한 결과 토론회를 시청하는 이들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줬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서 공동 고발인을 모집한 지 12시간 만에 3만7천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했을 정도다.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단지 여성의 성기를 언급한 수준을 넘어서 성범죄를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유사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재경험되는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안녕을 빈다.

이번 기회에 특정 단어만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네거티브 캠페인에도 제동이 걸리길 바란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하고도 적절한 논평을 썼다. 독자들과 공유한다. “이준석이 오늘 토론에서 ‘여성 성기’를 두번에 걸쳐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언급했다. 인격체로서, 유권자로서, 시민으로서 여성이 실종된 자리에 ‘여성 성기’가 올랐다. 평소에 이재명을 공격하기 위해 특정 단어를 언급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이재명을 공격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여성을 ‘성기’로 대상화해서 공공의 영역에 던져 버리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쾌감을 얻는다. 그렇기에 성차별적인 인간일수록, 질이 안 좋은 인간일수록 이재명을 공격하기 위해 들고나오는 무기가 특정 단어가 된다. 그런 짓을 오늘 이준석이 티브이 토론에서 했다.”

그동안 이준석 후보에게 세대, 젠더, 장애 등에 전방위적인 차별주의자이자 혐오주의자라고 비판하면, 구체적인 증거를 대라는 반박이 돌아왔다. 보통 그는 구체적인 욕설이나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혐오 표현을 직접 하기보다는 지지 집단의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개입해왔기 때문에 구체적인 증거를 ‘단어 하나’로 말하기 어려웠다. 그는 혐오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서울서부지법 폭도들에게 애국청년들이라고 격려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애국청년들이라는 말 자체가 혐오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그 말은 폭도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들은 이렇게 ‘그럴듯한 부인’(Plausible Deniability) 전략을 통해 의미를 부인하기 쉬운 방식으로 혐오를 확산한다. 철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응용철학자 아리안 샤비시에 따르면 이 같은 간접 표현 혹은 맥락 의존적 선동은 주로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워 보일 가능성이 있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에서 구사하는 전략이다.

이번에도 이준석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에게 마치 일반론을 묻는 것처럼 질문하는 방식의 회피 전략을 쓰고자 했으나 권 후보가 답변을 거부하여 그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대신 여성 성기에 대한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언급이 남았다. 이 후보는 자신이 표현을 ‘순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순화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고 의심받을 여지가 상당하다. 그가 인용한 댓글은 여성 성기가 아니라 남성 성기를 대상으로 성폭력적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이준석 후보 스스로 기자회견에서 댓글 내용의 성별을 임의로 판단했다면서, “그중 하나(여성)를 골라서 가정적 상황을 물어본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남성 성기를 지칭하는 말로는 “여성 혐오 아닙니까?”라는 단순 되묻기 전략을 사용할 수 없기에 변형을 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번 대선에는 여성 후보가 한명도 없다. 여성은 아니지만 여성을 대의할 수 있다는 진정성 있는 공약이 나와야 할 토론 자리에 여성은 성기로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여성 혐오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후보에게 되물었을 것이다. “이준석 후보님, 개혁신당의 공동선대위원장 함익병씨가 50대 이상 남자들은 다 룸살롱 가 봤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남성 혐오 아닙니까? 함익병씨에 대한 개혁신당 차원에서 공식적 징계가 있었습니까? 개혁신당의 성폭력 관련 당헌·당규는 어떻게 됩니까? 언어적 성폭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되묻기는 금지다. 대선 후보답게 책임 있는 답변을 원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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