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정효진 기자


2023년 10월26일 아침을 기억한다. 서울중앙지검이 동료 기자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압수수색 소식을 접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검찰은 이 사실을 언론에 공지했다.

압수수색은 경향신문 기자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윤석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이뤄졌다. 2021년 10월 경향신문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때 대장동 대출 건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당시 주임검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고 보도했다. 다각도의 취재와 검증을 통한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합리적 문제 제기를 검찰은 명예훼손이라며 강제수사에 나섰다. 검찰이 검사 10여명의 특별수사팀을 꾸린 시점은 대통령실이 부산저축은행 수사 검증 보도를 “희대의 대선 공작”이라고 성명을 낸 지 이틀 만이었다.

해당 기사 작성자 중 한 명인 기자는 취재 활동에 큰 제한을 받기 시작했다. 회사가 수사 대상이란 이유로 검찰 반부패부(특수부) 취재는 어려워졌다. 검찰총장의 입인 대검 대변인마저 경향신문 법조팀 기자들의 연락과 만남을 피했다. 평소 알고 지냈던 검사들도 사건 관련자가 된 기자와의 접촉을 부담스러워했다. 언론으로서 검찰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었다.

기자와 동료들은 언제든 검찰이 집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기사로만 써왔던 검찰 수사 피해자의 심정을 처음 고스란히 느꼈다. “내일 수사관들이 집에 올 수도 있으니 설거지는 미리 해놓자”고 배우자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검찰 수사관을 사칭하는 보이스 피싱 전화를 받을 때도 긴장해 평소처럼 끊지 못했다. ‘02-820’으로 시작하는 서울중앙지검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뜰 때면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다. 담당 검사는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오지 않으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 “기소 전 증인신문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9개월이 다 된 지난 27일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정권교체가 유력시되는 6·3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다. 검찰은 단 몇줄짜리 공지로 이를 알렸을 뿐이다. 긴 시간 동안 정당한 검증 보도를 허위 보도로 몰고, 취재 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자들의 인권을 침해한 데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맞으면 땡큐, 아니면 말고’ 식의 수사를 해온 검찰에게 책임을 물을 마땅한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재판에 넘어가 무죄가 나왔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제자리에 없다. 강백신 당시 반부패수사1부 부장검사(현 성남지청 차장검사), 지휘자인 고형곤 당시 중앙지검 4차장검사(현 수원고검 차장검사), 송경호 당시 중앙지검장(현 부산고검장)은 모두 자리를 옮겼다. 당시 검찰 수장이던 이원석 검찰총장도 검찰을 떠난 지 오래다. 현 책임자인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는 무혐의 처분 일주일 전인 지난 20일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으로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기록하는 것뿐이다. 대선 후보 검증 보도에 대한 전례 없는 수사를 주도했던 강백신, 고형곤, 송경호 세 검사의 이름을 분명히 역사에 새기는 것이다. 기록 이상의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부당한 검찰 수사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개혁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9888 국정원 무단 촬영하던 대만인 남성 현행범 체포 랭크뉴스 2025.05.29
49887 [단독] 윤석열·김건희, 관저 물 2년 전부터 ‘월 800t’ 썼다…고지서 입수 랭크뉴스 2025.05.29
49886 [단독] "우리도 비화폰 기록 달라" 검찰, 경호처에 임의제출 요청 랭크뉴스 2025.05.29
49885 김종석 "이재명식 퍼주기는 복지병만 키워…규제 줄이면 그 자체로 감세" 랭크뉴스 2025.05.29
49884 '기체혹사 논란' 해군 해상초계기 훈련중 추락…탑승자 4명 사망(종합3보) 랭크뉴스 2025.05.29
49883 일방통행 도로서 시비…상대차 동승자 숨지게 한 40대 구속영장(종합) 랭크뉴스 2025.05.29
49882 야구팬들의 '불매운동'...SPC, 결국 '크보빵' 생산 중단 랭크뉴스 2025.05.29
49881 "한국서 숨진 딸 기리려" 미 원어민 교사 부모가 8년째 장학금 랭크뉴스 2025.05.29
49880 여직원 머리채 잡더니 "뽑으세요"…경산시 황당 '투표독려' 영상 랭크뉴스 2025.05.29
49879 '젓가락' 공방 국힘도 참전, 이재명 공격…대선 막판 최대 이슈로 랭크뉴스 2025.05.29
49878 대선 사전투표율 첫날 19.6% 역대 최고…869만명 주권 행사 랭크뉴스 2025.05.29
49877 대선 첫날 사전투표율 역대 최고…호남 30%대로↑, TK 10%대로↓(종합) 랭크뉴스 2025.05.29
49876 이준석, ‘단일화 확신’ 이재명 겨냥해 “헛것 보이면 물러날 때” 랭크뉴스 2025.05.29
49875 서울 신촌 사전투표소, 투표용지 든 채 건물 밖 대기 논란 랭크뉴스 2025.05.29
49874 조현범 구속에… 한국앤컴퍼니 ‘형제의 난’ 다시 주목 랭크뉴스 2025.05.29
49873 포항에서 4명 탑승 해군 초계기 추락…전원 사망 랭크뉴스 2025.05.29
49872 첫날부터 사전투표 참여 ‘역대 최고’… 막판 총력 득표전 돌입 랭크뉴스 2025.05.29
49871 대선후보 일제히 사전투표…첫날 투표율 19.58% 랭크뉴스 2025.05.29
49870 국힘, 돌연 '젓가락 논란' 참전…"이재명 아들 혐오발언 확인" 랭크뉴스 2025.05.29
49869 포항서 해군 초계기 추락…탑승자 4명 전원 숨진 채 발견 랭크뉴스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