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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성매매 업소 철거에
종사자·활동가 무릎 꿇고 애원
시, 공무집행방해로 고발
활동가 “실태 조사부터 하라”
지난 25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활동명)이 파주시장 명의로 작성된 고발장을 들고 있다. 최혜린 기자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 게 죄가 될 줄 몰랐다. 경기도 파주시 용주골의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별이(활동명)와 성노동자해방운동 활동가 여름(활동명)은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며 업소를 강제철거하는 파주시에 끊임없이 면담을 요구했다. 1년여간 거절과 무관심이 반복되자 시청 직원 앞에 무릎을 꿇고 외쳤다. “우리도 사람이고 가장입니다. 제발 한 번만 면담 날짜를 잡아주세요.”

이들의 행동엔 ‘공무집행방해’라는 죄명이 붙었다. 파주시의 고발로 여름과 별이는 경기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6단독(최동환 판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파주시가 눈앞의 성과를 만드는 데만 급급해 종사자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성매매 피해자’라 부르더니, 찾아가면 ‘범법자’ 취급”

파주시와 용주골 여성들의 갈등은 3년째 이어져 왔다. 파주시는 2023년 1월부터 지난 22일까지 총 9차례 행정대집행을 했다. 종사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며 반대한 용주골 내 단속용 CCTV 설치도 강행했다. 2023년 초 200명에 달했던 성매매 종사자는 현재 50여명으로 줄었고, 업소는 20여곳만 남았다. 종사자들은 “철거 전에 이주보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파주시는 “불법과 타협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파주시는 2023년 5월 제정된 ‘성매매 피해자’의 자립을 위한 지원조례를 근거로 들어 “지원을 받고 나가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해왔다. 파주시는 ‘탈성매매가 확인된 여성’을 대상으로 월 50만~100만원의 생계비 등을 지원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해당 조례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별이는 “종사자 대부분이 싱글맘이고 가장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조례”라며 “실태조사 한 번도 없이 만들어진 조례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 파주시는 ‘현장에 와서 실제 삶을 봐달라’는 요구마저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2023년 이후 용주골을 떠난 150여명 종사자 중 파주시의 지원을 받은 사람은 15명 뿐이다. 대부분은 다른 집결지나 안마방 등으로 떠났을 뿐 성매매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여름과 별이는 2023년 8월 있었던 김경일 파주시장과의 첫 면담도 “형식적인 자리”로 기억한다. 김 시장은 “3년 뒤에는 선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 않느냐”며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를 그대로 두고 자리를 떠났다. 이들은 김 시장이 용주골을 직접 방문했을 때도 찾아가 면담을 요구했지만 “범법자들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알겠더라고요. 여성들의 말을 들을 마음은 없고, 용주골 폐쇄를 본인의 정치적 업적으로 삼으려는 생각뿐이구나.” 지난 2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름이 말했다. 별이도 “언론에는 우리를 성매매 피해자라고 말해놓고 ‘너희랑 할 말이 없다’고 하는 건, 사실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했다.

이후로 파주시장과의 면담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이 파주시의 행정대집행은 본격화했다. 여름은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지붕을 부수고, 굴착기를 갖다 대는 상황까지 벌어지니까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고 했다.

지난해 4월19일 밤 10시, 두 사람은 용주골에서 ‘성매수자 감시 캠페인’을 하던 공무원 전씨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길을 주지 않고 걸어가는 전씨의 바지를 붙잡은 별이는 무릎이 아스팔트에 쓸려 상처가 나면서도 손을 놓지 못했다. 언제 다시 면담을 청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두 사람의 손을 뿌리친 전씨는 아무런 답 없이 용주골을 떠났다고 한다.

무릎 꿇고 애원해도 대답 없던 파주시…‘면담 날짜’ 대신 ‘고발장’이 돌아왔다

지난해 4월19일 별이(활동명)가 무릎을 꿇은 채로 파주시청 여성가족과 담당 공무원의 바지를 잡고 끌려다가 무릎에 상처를 입은 모습. 차차 제공


한 달 뒤 파주시는 두 사람을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했다. 공무원 전씨가 손목 염좌 등 부상을 입었다는 이유였다. 고발장엔 “공무원을 옴짝달싹도 못 하게 잡아당기는 식의 폭행으로 위협했다” “발목을 잡히고 밀쳐져 쓰러지는 상황으로 수치심을 느꼈다”는 등 두 사람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혔다. 여름과 별이는 경찰 조사에서 “무릎을 꿇었는데도 (전씨가) 그냥 지나가려 해서 급한 마음에 바지를 잡았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파주시가 이들의 저항에 형사고발로 맞선 건 처음이 아니다. 여름은 행정대집행 당시 스크럼을 짜고 용역들을 막아선 혐의로도 고발됐다 불기소 처분됐다. 별이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파주시에 총 5번 형사고발을 당했다.

파주시 측은 강경 대응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파주시 관계자는 “처음부터 고소고발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돼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파주시의 형사고발이 ‘종사자들을 입막음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한다. 여름은 “벌금을 물리고, 전과를 만들어서 종사자들에게 ‘범법자’라는 낙인을 더 강하게 만들려는 것”이라며 “대화해달라고 말하는 것까지 죄로 만들어서 면담 요청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편견 없이 들어달라’는 여름의 호소는 법정 안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16일 판사 앞에 선 여름은 이날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어요. 부모님 간병비가 필요해서, 양육비가 급한 싱글맘이라서 성매매에 유입된 사람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먼저 들어보고 제대로 지원했다면, 여성들은 스스로 용주골을 떠났을 겁니다.” 여름과 별이의 재판은 다음 달 18일 마지막 변론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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