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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행 : <4> 유가족에 대한 예의

편집자주

완숙기에 접어든 '장청년'들이 멋과 품격, 건강을 함께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합니다.

‘쓰레받기’가 촉발한 장례 예의
정서 배려, 업무 효율만큼 중요
품격 있는 작별 위해 고민해야


일본의 한 화장장에서 시설 직원(맨 왼쪽)이 유골함을 든 유가족들을 배웅하고 있다.


Q :
50대 남성 A다. 얼마 전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화장 시설에 가족들과 동행했다가 깜짝 놀랐다. 화장한 유골을 분골한 뒤 수골하는데, 갑자기 가정에서도 보기 드문 ‘플라스틱 쓰레받기’가 등장한 게 아닌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화장을 모두 마친 후, 직원이 작은 창문이 달린 창구 너머로 유골함을 물건 건네듯 내주었다.
화장시설에서 인격과 배려는 실종된 것인가? 머지않아 다가올 부모님의 장례, 그리고 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씁쓸한 현실이다. 개선돼야 하지 않을까?


A :
우리나라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봉안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중 화장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전국 대부분 화장장이 효율적으로 시신을 화장하는 데에만 업무를 집중하는 점이 눈에 띈다. 관리자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니, 사용자 입장에서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화장이 막 끝난 유골은 잔열 때문에 여전히 뜨겁다. 이를 빨리 모아 담기 위해선 사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편리한 도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고인의 유골을 담는 도구이기에 ‘일반 청소용 빗자루·쓰레받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 고가의 특수 재질로 별도 제작한 것을 사용한다. 문제는 일부 화장장에서 예산을 핑계로 대충 다룬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수 이적씨도 2022년 SNS에 ‘쓰레받기’란 제목의 글을 올려 장례 업계에 경종을 울린 적이 있다. 당시 “화장장에 처음 갔을 때, 화장이 끝난 유골을 작은 빗자루로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 모습을 본 것은 충격이었다”면서 “엄숙하게 진행된 장례 절차 끝에 등장한 싸구려 플라스틱 빗자루와 쓰레받기. 고인에 대한 예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물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적었다. 절차만 빠르게 끝내는 기계적 동작과 과정에 대해 아쉬움과 공허함도 토로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남긴 육신을 마치 ‘치워 내듯’ 수습하는 행태도 지적했다. 필자는 가수 이적의 오랜 팬으로서, 그리고 관련 분야에 종사할 인재를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당시 큰 책임감을 느꼈다.

일부 직원들의 태도도 문제다. 화장이 끝나면 유족들은 수골실 작은 창구를 통해 유골함을 건네받는다. 이를 건네는 직원의 모습은 창구 틈 사이로 얼핏 보일 뿐이다. 대부분 무표정하고 기계적이며, 감정도 없다. 유족은 그 순간이 지나면 슬픔을 표현할 겨를도 없이 밀려나듯 유골함을 받아 퇴장하고 아무 의식도 없이 다음 장소로 향한다. 배웅은커녕 안내도 없다.

대단한 변화를 바라는 게 아니다. 조용한 음악, 간단한 위로와 인사말 정도를 기대하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무리인 걸까. 그래서 배웅 공간의 개념이 필요하다. 유골함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고인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따뜻한 공간 구성이 필요하다. 수골 공간은 은은한 조명이나, 편안한 우드톤의 인테리어, 간접 조명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창문이나 천장을 설치하고, 실내 식물 배치로 공기를 정화할 뿐만 아니라 자연 친화적 분위기도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유족이 추모할 수 있는 심리적 배려가 필요하다. 고인을 기리는 한 줄의 명언도 좋고,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꽃장식도 좋다. 유족이 잠시 앉아 유골함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모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

2년 전 방문한 일본 화장시설은 우리와 달랐다. 유족이 화장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제복 입은 직원이 주차장까지 동행하며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짧은 동행과 목례, 두 손으로 조심스레 건네는 유골함 뒤에는 친절을 넘어선 정서적 배려가 느껴졌다. ‘유족은 직원의 작은 몸짓으로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친절’이 아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방식, 이별을 마주하는 철학을 돌아봐야 한다.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 화장장 부족 문제에 밀려 우리는 인간다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국 62개 화장시설은 ‘업무 처리’ ‘관리 편의’ 중심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삶의 마지막 배웅의 절차를 의례이자 정서적 지원의 과정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시설에 몸담은 종사자들의 인식 전환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고인과 유족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시설과 시스템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람 중심의 문화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존엄한 마무리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고인을 제대로 배웅하고 있는가? 이제 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때다.

늘푸른마음_이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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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을지대 장례산업전공 교수·미국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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