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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지켜보며 애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조기원 | 국제부장

지난 14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거리에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 주검이 누운 관을 끄는 마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국회의원, 장관들과 함께 시민 수천명이 거리에 나와 무히카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시민들은 그의 애칭인 “페페”를 외치며 “잘 가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장엄하다기보다는 따뜻해 보이는 장례 행렬이었다.

전날 그가 90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별세하자 세계 각국 언론은 크게 주목했다. 비교적 크지 않은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가 국제 정치나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묘사됐던 그의 삶과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대통령 재임(2010년 3월~2015년 3월) 때 대통령궁 대신 아내 소유 몬테비데오 외곽 허름한 농가에서 출퇴근했다. 그가 재임 중이던 2012년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를 보면 잡초가 우거진 시골길에 그의 집이 있었다. 보통 시골집과 다른 점이라면 경찰 2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는 그곳에서 한쪽 다리가 불편한 개 ‘마누엘라’ 그리고 아내와 지냈다. 대통령 월급 90% 정도인 약 1만2천달러(약 1600만원)는 자선기관에 기부했다. 이런 삶은 퇴임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이런 삶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으나 그 자신은 별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2012년 비비시 인터뷰에서 그는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며 “내가 가진 것으로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기부하고 남은 대통령 월급은 당시 우루과이 평균 월급 약 775달러(약 100만원)보다 조금 많은 수준에 그쳤다. 그는 자동차도 갖고 있었다. 다만, 20년 넘은 폴크스바겐 ‘비틀’을 몰았다.

퇴임한 이후 세계 여러 언론들이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했는데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그 몬테비데오 외곽 농가에서 국화과 꽃을 키우는 일을 하며 시골 농부로 살아갔다.

그가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도만 소유하고 살았다. 지나친 소유가 삶을 거추장스럽게 만들고 인류 전체에도 좋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아니다”라며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끝없는 경주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철학이 잘 드러나는 연설이 201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 정상회의 그리고 이듬해 유엔 회의에서 한 연설이다. 그는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이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고 말했다. “전세계인들이 보통 미국인들처럼 소비한다면 3개의 지구가 더 필요할 것이다”, “대량소비가 세계를 파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 그는 우루과이 언론 부스케다와 한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부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오직 무언가를 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고, 그러다 보면 알아차리기도 전에 어느새 인생이 지나가버린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였던 이유는 그가 비유가 풍부한 아름다운 말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그는 생활과 말이 일치하는 아주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무장 게릴라로 군사 독재에 저항했고, 독재 정권 붕괴 뒤 제도권 정치에 참여해 젊은 시절 신념을 현실 속에서도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가 소속됐던 좌파 정부는 우루과이를 남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사회복지 제도를 갖춘 나라로 이끌었다.

그의 삶을 보면 지구 반대편에서 오는 동화처럼 보인다. 한국은 고도 경제성장 시기가 지났지만 아직 성장과 경쟁이 지배적인 사회다. 다가올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들은 경제성장을 주로 강조하고 있으며, 분배와 절제를 말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지구 어딘가에 현실에서 이런 대통령이 실제로 나라를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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