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일부 승소 판결받은 피해자 김옥분씨가 2023년 11월10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손해배상 책임 인정 판결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박동석 대표가 법률자문사와 홍보사 등에 자신의 자녀 인턴을 문의하고 실제로 딸이 인턴으로 채용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옥시 본사가 징계 없이 이를 묵인한 사실이 확인됐다.
26일 취재를 종합하면 옥시 본사는 박 대표가 2019년 옥시의 홍보를 맡은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에 학부생 인턴 프로그램 유무를 문의한 뒤 딸이 그해 상반기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점, 2020년 법률자문사인 김앤장에 학부생 인턴을 문의한 뒤 며칠 뒤 딸이 김앤장 인턴으로 채용된 사실을 2022년 파악했다. 옥시코리아는 자체적으로 박 대표의 이 같은 행위를 조사하고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옥시 본사는 별다른 징계를 취하지 않았다.
옥시는 박 대표가 2023년까지 회사 관용차의 소유권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에게 이전한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표는 장기임대해 사용하던 관용차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회사 소유로 인수한 뒤 회사 법률팀 등에 알리지 않고 자신의 동생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에 매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옥시코리아는 자체 조사에서 관용차 소유권 이전 사안이 이해 충돌 금지 등의 내부 규정과 경영자로서의 행동강령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업무상 배임 혐의까지 적용받을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옥시 본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박 대표의 딸이 플레시먼힐러드와 김앤장에서 인턴을 한 시기는 2019~2020년으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를 향한 특혜와 입시비리 논란 이후 ‘공정성’이 한국 사회 화두로 떠올랐던 시기다. 옥시 본사가 박 대표의 사안이 알려지면 옥시를 향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2006년 옥시에 입사했으며 2016년 12월 대표 이사로 선임돼 9년째 업무를 수행 중이다. 박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지금까지 박 대표가 내린 결정들은 100% 영국 본사의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며 “박 대표는 영국 본사 입장에서 그간 본사 입맛에 맞게 가습기살균제 배보상 등의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경영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옥시 본사가 박 대표의 비위를 파악한 2022~2023년, 옥시는 가습기살균제 배상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1년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도 조정안을 두고 옥시·애경 등이 협조하지 않아 조정위 활동기한이 연장된 상태였다.
옥시 본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드러난 뒤 줄곧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옥시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12년간 가습기 살균제 423만개를 판매했고 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통계를 보면 현재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공식 피해 신고 건수는 8005건이며 사망자는 1900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