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해 2학기부터 폐강... 35년 이어진 명맥 '뚝'
올해도 개설 안하자 학생들 주도 '여름학기' 마련
"누구든 수강 신청 가능·수업료 무료... 학점은 0"
'16년간 강의' 강성윤 강사가 총 12회 걸쳐 수업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울대의 정문에 위치한 '샤' 로고 구조물. 국립의 'ㄱ'과 대학교의 'ㄷ', 서울대학교의 'ㅅ'을 합친 상징물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서울대에서 35년 만에 폐강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의 부활을 요구하는 학생들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올여름 해당 분야의 입문서 격인 정치경제학을 배우는 수업이 개설된다. 폐강 직전까지 마르크스경제학 과목을 맡았던 강사가 ‘정치경제학입문 여름학기’ 강의를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수업료 무료·0학점’ 형태로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비(非)제도권 수업이라 해도 ‘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강의’가 부활하는 셈이다. 벌써 수강 신청도 시작됐다.

서마학 "6·24~7·31 수업... 수강 신청하세요"



24일 ‘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따르면, 서마학은 구글독스를 통해 ’2025 여름학기 정치경제학입문(0학점)’ 수업의 수강 신청을 받고 있다. 이번 강의는 2008년부터 서울대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과목 수업을 담당했던 강성윤 강사가 맡고, 다음 달 24일~7월 31일 주 2회씩 총 12회에 걸쳐 진행된다. 장소는 ‘서울대 내 강의실’이며, 온라인 수업도 병행할 전망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개방성’이다. 신청 대상은 ‘수강을 원하는 모든 서울대 구성원 및 비구성원 시민’으로 안내됐다.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강의료에 대해서도 서마학은 “강성윤 선생님 뜻에 따라 무료로 진행한다”고 공지했다. 경제적 부담을 고려할 필요도 없는 만큼,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수업이다. 다만 학교 측이 개설한 공식 수업은 아니기 때문에 학점은 ‘0점’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은 시장친화적인 주류경제학의 대척점에 있는 학문이다.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가 노동가치론·잉여가치론에 근거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분석한 ‘자본론’을 토대로 한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인기가 시들해지긴 했으나, “자본주의 한계 비판·극복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학계의 평가도 적지 않다. ‘자본론’은 “현대 인류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도 꼽힌다.

서울대의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는 1989년 1학기 경제학과에 부임한 고(故) 김수행 교수가 2008년 정년퇴임 때까지 줄곧 담당했다. 그 이후에는 강성윤 강사가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등 관련 과목을 모두 폐강했다. 학교 측은 ‘수요 부족’과 ‘교수진 부족’을 이유로 내세웠다.

서울대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이 올해 정치경제학입문 여름학기 무료 강의 개설을 알리고 있는 포스터. 서마학 엑스 계정 캡처


"서울대, 올해 마르크스경제학 강사 채용 봉쇄"



이번 여름학기 수업 개설은 35년 만의 폐강 이후 약 1년 만이다. 서마학은 “서울대 경제학부는 결국 마르크스경제학 수업 개설을 또다시 거부했다”며 “듣겠다는 학생들이 있었고 강의하겠다는 강사도 있었지만 그들은 ‘개설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지식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지 않겠다”며 “서마학에선 직접 수업을 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16년간 서울대 강단에서 유일하게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쳤던 강성윤 강사는 “2025년에는 채용 신청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서마학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그는 “2008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강의를 했고, 2022년에도 신규 임용돼 3년 동안 강의를 했다”며 “그러나 올해는 제 전공 분야인 마르크스경제학이 채용 분야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경제학 퇴출을 노린 것일까. 서울대는 채용 방식 자체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강 강사는 “3년 전에는 (강사) 채용 분야를 ‘경제학 전반’으로 둔 반면, 이번에는 전공 분야와 과목을 대단히 협소하게 제한했다”며 “결국 특정 분야의 강사, 마르크스경제학 분야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의 채용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강사법에 따라 채용된 강사는 1년 단위 재계약을 통해 최장 3년까지 강의할 수 있고, 이후에는 다시 신규 임용 절차를 거치게 된다.

서마학은 이 같은 서울대 방침에 반발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난달 출범했다. 경제학부 규탄 성명을 발표한 이들은 학내외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를 복원하라’는 2,4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았다. 이달 9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마르크스경제학 폐강은 대학이 비판적 사유의 기회를 거부하고, 불편한 지식의 존립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며 “결국 대학이라는 공간이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마저 외면하고 있는 사건이자 위기”라고 강조했다.

연관기사
• 서울대 경제학과 마르크스 강의 사라진다… 35년 만에 미개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1115230005573)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173 [단독] ‘채상병 사건’ 압색 다음날 이종섭 아그레망…도피 의혹 커져 랭크뉴스 2025.05.26
48172 이준석 “난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비장학생’···‘노무현장학금’ 받았다고 한 적 없다” 랭크뉴스 2025.05.26
48171 “네, 제가 바로 ‘지옥고’에 사는 ‘쉬었음’ 청년인데요”[대선, 내 삶을 바꿀까⑦] 랭크뉴스 2025.05.26
48170 자고 일어나니 앞마당에 대형 화물선이…무슨 일? [잇슈 SNS] 랭크뉴스 2025.05.26
48169 12만달러 고지 앞에서 급락한 비트코인, 10만9000달러대 회복 랭크뉴스 2025.05.26
48168 [속보] 李 "北인권 개선노력…軍 핫라인 복원, 국민공감하는 남북대화" 랭크뉴스 2025.05.26
48167 '대선 숏폼' 올리고 '공약 비교표' 만든다, 낭랑 18세 유권자 랭크뉴스 2025.05.26
48166 20년 전 대리모가 나타나 "아이에게 폭로" 협박… 대법원의 '솔로몬 판결'은? 랭크뉴스 2025.05.26
48165 '이 자격증' 따면 月 420만 원…초임 가장 높은 국가기술자격 보니 랭크뉴스 2025.05.26
48164 방탄소년단, 내달 7명 전원 군복 벗는다…완전체 컴백은 언제 랭크뉴스 2025.05.26
48163 오늘 법관대표회의 ‘사법독립’ 논의… 李 재판 입장 나오나 랭크뉴스 2025.05.26
48162 오늘 전국법관대표회의···‘이재명 파기환송’ 관련 입장 나올 가능성은? 랭크뉴스 2025.05.26
48161 전문가 91% "이번주 금리 인하" … 연말 환율은 1350~1400원 [Pick코노미] 랭크뉴스 2025.05.26
48160 [와글와글] 가정집 앞마당 덮친 대형 화물선 랭크뉴스 2025.05.26
48159 이스라엘내 美공관 공격시도범 체포…SNS에 트럼프 살해위협도 랭크뉴스 2025.05.26
48158 스벅에 당근까지…은행들이 ‘협업 통장’ 출시하는 이유는? [잇슈 머니] 랭크뉴스 2025.05.26
48157 [단독] 지도에도 없는 그곳… 경찰, '대통령 안가 CCTV' 받는다 랭크뉴스 2025.05.26
48156 동네 술집들 문 닫기 직전…음주문화 왜 사라졌나? [잇슈 머니] 랭크뉴스 2025.05.26
48155 트럼프 “EU 50% 관세, 7월9일까지 유예” 랭크뉴스 2025.05.26
48154 브리트니 스피어스 "창피하게"…기내 흡연해놓고 승무원 비난 랭크뉴스 202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