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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핵심구역 왕피리 인근



5월 22일, 국제 생물환경다양성의 날‥왕피천을 다시 본다
가장 확실하고 효과 좋은 보호지역 관리 방안 '주민 참여'
주민참여 관리의 상징이던 생태·경관보전지역 주민환경감시원 2024년 중단
주민 감시 중단 후 왕피천 유역 '불법행위 계도' 0건, 이대로는 관리 공백 지속

경북 울진군 근남면과 금강송면 그리고 영양군 수비면에 걸쳐있는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환경부가 '자연환경보전법'에 근거해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보호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 면적이 100㎢를 넘는, 강원도 속초시와 비슷할 정도로 넓은 보호지역입니다. 보호지역 핵심구역인 왕피리까지 들어가려면 금강송면사무소 소재지인 삼근리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30분 넘게 넘어가야 합니다. 맞은 편에 차가 나타나면 서로 비켜가기도 어려운 길입니다. 어느 마을이든 30분만 차를 몰면 고속도로 나들목이 나오는 요즘, 왕피천은 우리나라에 몇 안 남은, 자연 그대로의 지역 중 하나입니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구역 지도

그만큼 왕피천의 생태적 가치는 우수합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5년마다 왕피천을 정밀 모니터링하는데, 가장 최근인 2022년 조사에서는 16종의 멸종위기종이 관찰됐습니다. 이전인 2017년 조사보다 4종이 늘었습니다. 2022년 기준 전체 생물종 수도 1,992종에 달했습니다. 자연성이 가장 우수한 지역에 해당하는 녹지자연도 8등급지가 전체 보호지역 면적 중 95% 이상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멸종위기종 현황

2005년,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 이후 이 넓은 보호지역을 지킨 것은 주민들입니다. 환경부는 왕피천 유역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며 주민을 설득하기 위한 여러 지원책들을 약속했고 그 중 하나가 주민환경감시원 제도였습니다. 2005년 지정 이후 시범 운영되던 주민환경감시원제도는 2008년부터 정식으로 운영됐습니다. 환경부 왕피천 출장소가 생긴 것은 그 이후인 2009년입니다. 매년 90명 가량의 주민들이 주민환경감시원으로 고용돼 보호지역 주요 진입로를 지키며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순찰과 폐기물 수거, 외래식물 제거 등의 활동을 벌였습니다.

주민환경감시원의 효과는 분명했습니다. 2012, 2017, 2022년 세 차례 진행된 정밀 조사에서 확인된 멸종위기종이 위의 설명처럼 증가했습니다. 전체 생물종 수도 2022년이 2017년보다 줄긴 했지만 증가 경향은 분명했습니다. 양서·파충류, 어류, 저서성대무척추동물 등은 일부 감소도 있었지만, 식물, 조류, 포유류 발견 종 수는 늘었습니다. 적어도 보호지역 지정 취지에 맞는 관리가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생물종 변화

그런데 작년 1월, 왕피천에서는 더 이상 주민환경감시원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정부가 예산 삭감을 이유로 왕피천을 비롯해 전국의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 운영하던 주민환경감시원제도를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취재팀은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왕피천 유역은 크게 울진 읍내에서 근남면으로 진입하는 진입로와 금강송면에서 왕피리로 들어가는 진입로 그리고 경북 영양군에서 왕피천 상류로 들어가는 수비면 진입로가 있습니다. 이 세 진입로의 입구에 초소는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근무하는 주민들은 없었습니다. 넓은 보호지역을 관리하는 것은 이제 왕피천 환경 출장소의 직원 5명이 전부였습니다.

주민환경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주민들의 우려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보호지역 내에서의 불법 행위가 눈에 보이는 데 단속할 권한도 없고 그럴 의지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주민들은 쓰레기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MBC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얻은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내 불법행위 계도 실적은 주민환경감시원 제도가 중단된 2024년부터 0건이 됐습니다. 왕피천 환경 출장소는 드론 감시 등을 진행한다고 했지만, 그 넓은 보호지역을 출장소 직원들이 다 관리하기란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작년에는 보호지역 내 왕피천에서 투신으로 추정되는 실족 사고도 있었다며 주민들은 염려했습니다.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불법행위 계도 실적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호지역을 지정해 잘 보호하는 겁니다. 전 세계가 잘 알고 있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지난 2022년 제15차 국제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각국은 2030년까지 육상 30%, 해양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게끔 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벌써 5번째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해 내놓았습니다. 2023년 12월 내놓은 이 전략의 가장 핵심도 보호지역의 확대와 관리 강화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보호지역은 육상 약 17.8%, 해양 약 1.8% 수준입니다. 정부는 국립공원 지정을 확대하는 등 보호지역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2030년 육상 30, 해양 30 목표 달성은 요원해 보입니다. 보호지역을 마냥 늘리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반발입니다. 보호지역을 지정하면 분명 규제가 뒤따릅니다. 각종 개발행위들이 까다로운 신고나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재산권의 제약이 발생하는 겁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의 경우에는 나무를 자르거나 토석의 채취 등 생태나 경관의 현상을 변경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됩니다. 해상형 국립공원의 경우 낚시가 가능하단 점을 감안한다면 생태·경관보전지역의 규제는 국립공원보다도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호지역을 지정할 때는 보통 주민들에게 여러 지원방안을 제시합니다. 왕피천에서는 생태관광 프로그램, 각종 시설 신축을 포함해 이 주민환경감시원제도가 핵심이었습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의 빈 초소 (지난 4월)

주민환경감시원제도는 국내에서 시행된 거의 유일한 주민 지원 및 참여형 관리 제도였습니다. 보호지역을 지정은 해야겠고, 주민들은 설득해야 하니, 주민들을 보호지역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던 겁니다. 이게 특별한 게 절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도 보호지역 관리에 있어서 주민 참여가 필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도코뿔소의 주요서식지인 인도 카지랑가 국립공원(Kaziranga National Park)은 주민들을 고용해 순찰, 인프라 정비, 외래종 제거 사업을 진행합니다. 캐나다 하이다 그와이(Haida Gwaii) 지역은 하이다 네이션(Haida Nation)과 정부가 공동으로 보호지역을 관리하며 토착민들을 보호활동, 해설 등의 업무에 고용합니다. 이렇듯 보호지역 지정과 관리를 위한 주민들의 참여와 지원 확대는 널리 권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보호지역 확대 관리 강화라는 생물다양성 전략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민환경감시원이란 가장 확실한 보호지역 확대 유인 요소이자 관리 방안을 16년 만에 중단시킨 겁니다.

보호지역을 잘 관리하기 위해 핵심인 주민의 참여와 인식. 하지만 주민 지원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핵심 제도가 사라진다면 주민들의 인식은 악화되고 보호지역 관리에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MBC는 주민환경감시원 제도 중단이 1년을 넘기며 과연 왕피천 유역 주민들의 보호지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은 지난 4월 15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와 삼근리, 근남면 수곡리와 구산리,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주민들 중 주민환경감시원 제도 경험이 있는 주민 70명을 대상으로 대면 혹은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각 마을의 이장들의 도움을 받아 일부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설문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민환경감시원제도는 주민들을 보호지역의 주체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중단 이후 주민들의 보호 의지는 분명 약화됐습니다.

제도 중단 전 주민들은 주민환경감시원제도를 통해 보호지역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87.1%가 매우 그렇다, 5.7%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주민환경감시원으로 고용되면 근무도 하지만 교육도 받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자연스레 주민들이 보호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 주민환경감시원제도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98.6%) 주민들은 제도가 보호 지역 관리에 효과적이었다고 답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됐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모두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82.9%, 그렇다 17.1%)고 답했습니다.

주민환경감시원 제도 중단 전 주민인식

그러면 제도가 중단된 이후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주민들은 제도 중단 이후 보호지역 감시 활동이 감소했다고 보고 있습니다.(매우 그렇다 87.1%, 그렇다 7.1%) 보호지역의 환경 상태도 악화됐다고 봤습니다.(매우 악화 62.9%, 다소 악화 30.0%) 주민들의 보호의지도 약화됐고(매우 약화 51.4%, 약화 22.9%) 보호지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졌습니다.(매우 부정 41.4%, 부정 10%). 다만 보호의지의 경우 변함없다, 오히려 강화됐다는 답변도 25.7%에 달했습니다. 그래도 보호지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48.5%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점은 주민들이 주민감시원 중단에 대해 실망과 우려를 표하면서도 보호지역의 필요성에는 여전히 많은 수가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민환경감시원 제도 중단 후 주민인식

우리나라는 모두 5개 부처가 17개 관련법에 근거해 33종의 보호지역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보호지역 이른바 '페이퍼 파크(paper park)'도 많습니다. 실제로 낙동강 하구 유역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생태적으로 보호가치가 높은 지역인데, 여러 부처가 중복해서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놓고도 폐기물 수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국내에서 전담 관리조직이 있는 보호지역은 국립공원(국립공원공단) 뿐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나마 주민들의 참여로 비교적 원시의 상태를 잘 유지해 왔던 왕피천. 왕피천 주민들은 주민환경감시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기간에도 불법행위를 신고하거나 제지한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82.6%가 그렇다고 답했을 정도로 보호지역의 관리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주민감시원조차 사라져 버리고,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왕피천 유역 조차 페이퍼 파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주민환경감시원 제도 중단 전, 감시원 활동 기간이 아닐 때에도 불법행위를 제지하거나 신고한 경험이 있는 주민 비율

물론 왕피천 유역의 주민환경감시원 제도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설문 과정에서 일부 응답자들은 제도 운영 당시 일부 주민들의 불성실한 근무를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주민 10명가량이 주민환경감시원으로 참여해와 설문 조사를 추진했던 한 마을에서는 일부 주민들만 돌아가면서 주민환경감시원 활동을 해서 갈등이 있었다며 설문 조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주민 참여형 관리 제도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제도를 공정하게 제대로 설계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입니다.

매년 5월 22일은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입니다. 1992년 교과서에서 한 번은 봤을 브라질 리우 환경회의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된 날입니다. 새들이, 물고기들이, 개구리와 두꺼비들이, 포유류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난 뒤, 언젠가는 우리 인간의 차례가 올 수 있습니다. 개발은 풍요를 담보하지 못하지만, 보호는 분명히 생명을 지킵니다. 2025년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 즈음, 주민감시원이 사라진 왕피천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제대로 된 보호지역 정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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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원 사라진 '보호지역'‥보호 강화하겠다며 예산은 삭감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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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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