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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토마토를 과일처럼 여기며 당도를 주요한 선택 기준으로 삼지만, 식재료로 활용하는 유럽에서는 향과 감칠맛의 다양성을 더 중시한다. 그래도팜 제공


이 시대 인류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채소는 뭘까. 저마다 좋아하는 채소를 떠올릴 테지만, 통계적 결과는 토마토다.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 하는 논쟁은 차치해두자. 뭐가 됐건 현재 세계인의 식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식재료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내에선 ‘과채류’로 분류되고 있으나 심정적으론 과일에 가까운 편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시럽이나 설탕을 뿌려 토마토를 과일처럼 즐겨왔다. 다른 과일에 비해 상대적 당도가 떨어지는 토마토의 당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지속되면서 스테비아를 활용해 단맛을 높인 품종도 등장했다.

열매서 씨앗 얻을 수 있는 ‘순종’

유럽 시장에서 볼 법한 모양에

색깔·모양·향도 맛도 천차만별

직접 키우며 즐기는 ‘여름의 맛’


단 서구식 요리와 미식문화가 확산되면서 토마토는 점점 요리의 소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다. 좀 더 새롭고 다채로운 향과 맛을 찾는 미식가,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추구하는 이 혹은 텃밭 가꾸기에 흥미를 가진 ‘식물 덕후’가 늘어나면서다. 이들의 레이더에 걸린 것은 ‘에어룸토마토’다. 최근 몇년 사이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에어룸토마토는 SNS 등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에어룸토마토는 무엇?

에어룸(heirloom)의 사전적 의미는 집안에 내려오는 ‘가보’다. 에어룸토마토라면 가보처럼 소중한 토마토라는 뜻일까.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종묘회사가 육종·개량한 F1 종자의 작물이다.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성, 품질을 담보하지만 여기서 나온 열매에서 받은 씨앗으론 후손을 얻을 수 없다. 매년 새로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 에어룸은 열매에서 다음 해에 쓸 종자를 직접 얻는, 즉 자가채종해 키우는 순종 농산물을 의미한다. 과거 조상들이 대를 이어 씨앗을 물려가며 텃밭에 재배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하는 손길과 토양, 환경에 따라 미묘한 개성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다양한 토마토 소비가 활발한 유럽에선 이탈리아 나폴리, 혹은 스페인 카탈루냐의 특정 농가에서 재배하는 고유의 토마토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여행객들이 원정에 나서기도 한다.

에어룸토마토 유행, 누가? 왜?

에어룸토마토가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모양 때문이었다. 유럽의 시장이나 텃밭에서 볼 법한 독특한 모양의 토마토가 SNS를 통해 퍼지며 주목을 받았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그래도팜’은 에어룸토마토를 재배하는 대표적 농장이다. 2대째 농장을 운영해온 원승현 대표가 에어룸토마토에 집중하게 된 것은 유럽과 미국 여행 당시 집집이 텃밭에서 다양한 토마토를 가꾸는 모습에서 큰 인상을 받고서다. “다른 나라에 비해 토마토를 식재료로 쓰는 비중이 적다 보니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품종은 너무나 한정적입니다. 좀 더 다양한 토마토를 우리 땅과 기후에 맞춰 키워보고 싶었어요.” 초창기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2018년부터 꾸준히 판매를 이어갔고 고정 소비층도 자리 잡았다. 본격 출하는 6월인데 수개월 전부터 예약자가 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청년여성 농부이자 농업 크리에이터인 이소연 ‘텃밭채’ 대표는 에어룸토마토를 재배하는 과정과 방법을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평범한 토마토로는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아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에어룸토마토였다. 지브라와 힐빌리 등 몇몇 품종으로 시험 삼아 시작해 현재는 안정적인 재배·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토종 씨앗 전문가로 유명한 ‘채소곳간’ 장준식 대표는 에어룸토마토 재배법을 강의하거나 SNS를 통해 다양한 품종을 소개한다.

다 같은 토마토가 아니다



어떤 토마토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대체로 말문이 막힌다. 찰토마토나 방울토마토. 혹은 대추방울토마토? 그도 아니면 대저짭짤이토마토 정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식재료라는 위상에 비해 국내에서 만나는 토마토 종류는 천편일률적이다. 유럽에선 요리의 주재료로 사용되는 토마토 종류가 셀 수 없이 많고 그에 앞서 향, 식감, 감칠맛의 다양함과 차이를 즐기는 식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

50여가지 품종을 보유한 그래도팜에서는 시칠리안 토게타, 몬세라트, 블랙체리, 바나나레그, 지브라 등 30여종의 에어룸토마토를 생산·판매한다. 농장 안에서 자연 교잡된, 세계 유일의 품종 ‘그래도 레드’도 키우고 있다. 지난달 말 그래도팜을 방문했을 때 토마토 열매들은 아직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원 대표의 안내에 따라 토마토잎을 문질러 손에 밴 냄새를 맡았더니 품종마다 향이 확연히 달랐다. 새콤한 향이 나는가 하면 싱그러운 풀향이 나는 것, 미세한 흙냄새가 느껴지는 것 등 제각각이다. 향만큼이나 모양과 맛, 색깔도 다르다.

에어룸토마토가 보급, 확산되면서 생소한 토마토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국내 소비자들은 경험치를 쌓아가는 중이다. 신기한 모양 때문에 첫눈에 반하지만 당도를 중요시하는 입맛에 익숙하다면, 담백하거나 신맛이 강한 에어룸토마토의 맛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쿠디온 토마토, 아미쉬레드, 검정고드름, 로마 등의 품종을 키우고 있는 장 대표는 “오랫동안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에어룸토마토는 저마다의 미세한 특질을 가지고 있다”면서 “토마토를 직접 키우고 향과 맛을 즐기는 경험을 통해 식탁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혹자는 ‘특이한 모양의 토마토=에어룸토마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많은 품종이 F1 종자로 대량생산되고, 소수 농가가 특정 품종의 에어룸토마토를 생산 중이다. 미각과 식재료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하고 싶은 이들에게, 에어룸토마토는 작지만 뚜렷한 대안이 된다. 또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기꺼이 즐길 수 있다면, 여름의 맛과 재미는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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