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 22일 새벽 제주의 모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의 장례식장. 박미라 기자


“올해가 유독 힘든 해 같다”. 지난 22일 새벽 제주의 모 중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교사가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흘린 말이다.

주변 증언을 종합하면 A씨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해당 학생 가족의 지속적인 민원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23일 교사 A씨의 빈소가 마련된 제주시의 한 장례식장에는 그를 추모하는 가족과 동료 교사, 제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유족 등은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A씨가 자주 결석하는 반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학생 가족들과 연락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교사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폭언을 했냐’는 내용의 민원과 항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 동료 교사는 “학생이 결석하면 당연히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겠냐”면서 “내신 관리도 해야 하고 그냥 빠지면 무단결석으로 처리되니 병가 처리를 위해 진단서라도 받아와야 한다며 연락하는 과정에서 알지 못한 여러 갈등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학생은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담배 문제까지 불거졌다.

실제 A씨 개인 휴대전화에는 3월15일부터 최근까지 학생 가족과의 통화 목록이 있었다. 많은 날에는 하루 10여 차례에 걸쳐 통화한 기록이 있다.

해당 학생의 가족은 지난 16일 제주도교육청에도 민원을 넣었다. 이는 제주시교육지원청을 거쳐 학교로 접수됐다.

유족은 A씨가 두통 등을 호소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제자들도 “평소 밝고 농담도 자주 하던 선생님이 최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했다.

제자들은 “밝은 분이셨는데 최근에는 표정이 안 좋고 ‘올해 유독 힘들다’ ‘스트레스가 많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면서 “그래도 밝은 표정 지으려 애쓰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많은 신경을 쓰셨고, 징계보다는 최대한 감싸주려 하셨다. 화낸 후에도 꼭 미안하다고 하셔서 애들 모두 좋아하는 선생님이셨다”면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사망 엿새 전에는 문제가 됐던 해당 학생에게 “가족에게 고마워 해야 한다. 담임 입장에서 학교 열심히 나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학생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지도하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A씨 아내와 유족들은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난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면서 “교육청과 경찰이 도와달라”고 밝혔다. A씨는 20년 가깝게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한편 A씨가 개인 휴대전화로 과도한 민원에 시달렸던 정황이 나오면서 교원에 대한 민원 대응체제가 여전히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도교육청은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8월 ‘교육활동보호종합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해당 대책에 포함됐던 개인 번호 유출을 막기 위한 안심번호 서비스 확대, 교원 개인이 아닌 기관이 민원을 대응토록 한 민원 대응팀 운영 등은 이번 사건에서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23일 17개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학교의 민원 대응 체계가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또 제주도 교육청과 공동으로 점검단을 구성해 현장 조사에 착수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숨진 40대 중학교 교사 장례 진행
교육청 앞마당에는 분향소 운영

제주도교육청은 23일 교육청 앞마당에 A교사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도교육청 제공


도교육청은 23일 교육청 앞마당에 A교사의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분향소를 운영하고, 주말인 24일과 25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운영한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등이 분향소와 장례식장을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앞서 지난 22일 새벽 0시46분쯤 제주의 모 중학교에서 교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유족의 실종 신고를 받고 교내를 수색하던 중 학교 창고에서 A씨를 발견했다.

A씨가 남긴 유서는 학교 교무실에서 발견됐다. 유서에는 학생 가족과의 갈등으로 힘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8143 한낮 기온 27도까지…전북에는 소나기 랭크뉴스 2025.05.26
48142 대법 “공항공사, 코로나 때 폐쇄한 면세점에 임대료 100% 돌려줘야” 랭크뉴스 2025.05.26
48141 [속보] 트럼프, ‘EU 50% 관세’에 “7월9일까지 유예” 랭크뉴스 2025.05.26
48140 "이웃 폴란드처럼 잘 살고 싶다" 러에 발목 잡힌 우크라의 한숨 [종전협상 우크라를 가다③] 랭크뉴스 2025.05.26
48139 ‘대통령 당무 차단’ 꺼낸 김… 이준석 달래고 한동훈 요구 수용 랭크뉴스 2025.05.26
48138 [인터뷰] 윤석헌 전 금감원장 “금감원, 한국은행처럼 독립된 민간기구로 바꿔야” 랭크뉴스 2025.05.26
48137 관세 때리자 중국으로 향하는 글로벌 뭉칫돈…왜? [잇슈 머니] 랭크뉴스 2025.05.26
48136 오늘 전국법관대표회의…‘사법신뢰·재판독립’ 입장 나올까? 랭크뉴스 2025.05.26
48135 1.5조원짜리 피자로 시작된 기부…비트 든 윤남노도 나섰다 [비크닉] 랭크뉴스 2025.05.26
48134 김문수 집착, 이준석 거부, 이재명 촉각…‘단일화 변수’에 신경전 고조 랭크뉴스 2025.05.26
48133 자국 '쌍발 엔진' 택한 日…韓 훈련기 T-50 수출 물 건너가나 [밀리터리 브리핑] 랭크뉴스 2025.05.26
48132 코로나 때도 버텼는데···편의점·카페 ‘줄폐업’, 성장률은 ‘0%대’ 바라본다 랭크뉴스 2025.05.26
48131 540만 원 넣으면 '1080만 원' 준다…돈 2배로 불려준다는 '이 통장' 대박이네 랭크뉴스 2025.05.26
48130 판세 변화 감지 첫 간담회 연 李… ‘네거티브 공세’ 반박 반전 모색 랭크뉴스 2025.05.26
48129 중반 접어든 선거전, 후보들 ‘고소·고발전’ 격해졌다 랭크뉴스 2025.05.26
48128 오늘 전국법관대표회의‥'사법 신뢰' 논의 랭크뉴스 2025.05.26
48127 대선 불과 8일 앞두고 법관회의…부담감에 과반 채택 없을 수도 랭크뉴스 2025.05.26
48126 "코스피 5000? 일단 올해 3000 간다"…증권가 "대통령 누가되도 증시 호재" [이런국장 저런주식] 랭크뉴스 2025.05.26
48125 장애인영화제 행사장서 막무가내 공연·혐오발언한 밴드···“방해 의도는 없었다”? 랭크뉴스 2025.05.26
48124 치솟는 주차비·주차난에 주차정보앱 ‘인기’… 모두의주차장·아이파킹 사용자↑ 랭크뉴스 202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