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란 핑크가든 대표가 지난달 26일 경기 안성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회사는 전쟁터였다. 매순간 나의 한계 이상을 요구했고, 겨우 목표를 달성하면 칭찬은커녕 더 큰 임무를 떠안겨 혼을 쏙 빼놨다. 살아남기 위해 매번 발버둥쳐야 했다. 사무직으로 입사한 나는 어느새 공장의 생산·품질관리, 마케팅·홍보는 물론 재고 관리를 위한 앱 개발까지 해내야 했다.
회사는 곧잘 공(功)을 과(過)로 둔갑시켰다. 내가 독학으로 앱을 만들어 내자 회사는 다른 부서 직원들도 앱을 개발할 수 있게 책임지고 교육하라고 압박했다. 이전의 내 업무는 그대로 둔 채 앱 개발과 직원 교육 업무까지 가중시킨 것이다.
차라리 보직을 개발자로 변경해 달라고 했다. 일만 무한정 늘리는 건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상사와 몇 차례 승강이가 오가는 사이, 그간 남보다 무슨 일이든 몇 배 더 했던 나는 “회사 지시에 불복하는 뻔뻔한 사람”으로 매도됐다.
억울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다. 회사에선 독하단 말을 듣고 집에 가선 펑펑 울었다. 몸도 축났다. 스트레스로 귀울림 증상이 심해지더니 어지럼증에 차를 탈 수가 없었고, 길을 걷다가도 토했다.
결국 2023년, 마흔 살에 회사를 떠났다. 20대 초반 창립 멤버로 입사해 부장까지 올랐던 이 회사에서 조용히 사표를 내고 송별회 한 번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게 직장생활은 허망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새 일을 하며 건강과 활력을 찾았다. 퇴직에 대한 후회는 한 톨도 없다. 그저 “진즉에 때려치울걸”이란 아쉬움뿐이다. 회사에서 받은 상처로 잿빛이던 마음은 지금 핑크빛 희망으로 물들고 있다. 언젠가 남편이 퇴직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가족 생계와 우리 부부의 노후 걱정 없을 정도로 든든한 울타리를 내 손으로 일궈가는 중이다.
직장생활 내내 피눈물깨나 흘렸던 83년생 정아란. 남보다 많이 빨랐던 ‘마흔 살 퇴직’이 후회 없는 이유, 노후까지 책임져 줄 나의 새 직업, MZ세대 동년배 직장인에게 들려주고픈 나만의 퇴직 조언이 궁금하신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겠다.
‘회사는 전쟁터고, 회사 밖은 지옥’이란 말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은 과중한 업무, 괴로운 인간관계에 퇴사를 꿈꾸다가도 “나가면 더 고생”이란 두려움, 지금까지 쌓아둔 경력을 날릴 수 없다는 ‘매몰비용’ 계산으로 주저앉곤 합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직장생활을 했던 83년생 정아란씨.
그는 마흔 살 때 회사의 부당 대우를 견디다 못해 사표를 쓰고 회사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죠. 지금 그는 ‘더 빨리 나오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하네요. 또 MZ 직장인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마시라’며 “직장에서 버텨온 그 노력이면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응원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그의 ‘직장 탈출 성공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정아란 핑크가든 대표가 지난달 26일 경기도 안성시에서 묘목을 손질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반도체 제조회사 부장님, 마흔 살 퇴직 후 농부 변신 새벽 5시. 나는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900평 규모의 나무 농장. 유난히 눈이 많고 추웠던 지난겨울을 버텨낸 나무들이 내 손길이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반도체 제조회사에 다니며 ‘근성의 똑순이’로 통했던 나는 이곳에서 나무 1000주를 키우는 농부가 됐다.
이 농장은 직장 다니던 내내 알뜰살뜰 모은 적금에 대출까지 보태 2020년 재테크 용도로 매입했다. 별 생각 없이 사놓고 보니 일반농지였다. 반드시 뭔가 심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땅이란 의미다. 당시엔 회사 일로 너무 바빠 ‘손이 안 가는 작물’을 찾다 나무를 심어두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그 땅을 사표를 냈던 날 보러 왔었다. 그날 그 기분으로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음은 말할 수 없이 헛헛한데 마땅히 갈 데도 없어 ‘그래, 거기나 한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차를 몰았다. 귀울림과 어지럼증이 심할 때라 중간에 몇 번을 토하고 쉬면서 겨우겨우 도착했다.
정아란 대표가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시 핑크가든. 장진영 기자
막상 와 보니 농장은 마치 버려진 공사판처럼 황량했다. 농기구들 모아놓으려고 가져다 둔 회색 컨테이너가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삐죽삐죽 웃자란 나무들도 너저분한 데다 땅은 사방이 질척거렸다.
" 한참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잿빛에 황량한 이 땅이 꼭 제 마음 같더라고요. 그때 ‘여길 좀 가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
(계속)
생판 초보 농부는 어떻게 나무로 성공해 수익을 낼 수 있었을까요?
농사 전업은 물론, 직장 연봉의 150% 수익을 내게 해줬다는 '츄파춥스 나무'.
그 효자 나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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