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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이어 이번엔 남아공 대통령…사전 준비로 더 정교하게 '기습'
지지층 겨냥 '국내용' 측면…"위험구역 된 백악관 집무실" 각국 정상 긴장


정상회담에서 남아공 '백인탄압' 의혹 지적하는 트럼프 대통령(우)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찾은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게 기습 공격에 가까운 공개 추궁을 하며 기존 정상외교 문법에서 또다시 '탈선'했다.

회담장에 생중계 TV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 동영상 자료까지 미리 준비해 일방적 주장으로 라마포사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붙인 것이다.

2월말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굴욕을 안겨 전세계에 충격을 줬던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리얼리티쇼'를 방불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세계 각국 정상의 당혹감을 키우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을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남아공의 '백인 농부 집단 살해' 의혹을 거론했다.

통상 정상회담은 양 정상의 환담을 취재진에 짧게 공개한 뒤 비공개로 전환된다. 민감한 주제는 비공개 회담에서 주로 제기되고 공개 환담에서는 주로 덕담이 오간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은 그들(남아공 흑인)이 땅을 빼앗도록 허용하고, 그들은 땅을 빼앗을 때 백인 농부를 살해한다"고 라마포사 대통령을 몰아붙이더니 관련 영상을 상영하고 기사 뭉치를 건넸다.

방송사의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국 지도자에게 작정하고 공개 모욕을 준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트럼프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같은 장면은 지난 2월 28일 같은 자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종전안 등을 둘러싸고 고성으로 거센 언쟁을 벌였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쫓겨나듯 백악관을 떠나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당신에게는 아무런 협상카드가 없다"고 여러 번 윽박지르는 장면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날 또다시 발생한 '외교 참사'를 두고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플레이'가 더욱 정교해졌다는 평가를 내놨다.

회담이 열리기 전 '백인 농부 집단 살해' 의혹과 관련한 기사를 다수 출력해 챙겨놓고, 관련 영상도 미리 준비한 뒤 '작정하듯' 회담장에서 상영했다는 것이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라마포사 대통령을 집무실로 안내하기 직전, 보좌관들이 두 대의 대형 TV를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서관(웨스트윙)으로 옮기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명을 낮추고 이걸 켜달라"고 말하며, 영상 상영 전 직접 집무실 조명을 조정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외교 무대에서 '결례'로 평가될만한 장면을 잇따라 연출하는 데에는 국제 무대에서 자신을 '강한 지도자'로 부각하며 힘의 우위를 통한 압박으로 외교적 목적을 관철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에 남아공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토지 무상 몰수 정책을 비난하며 남아공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도 있다.

이날 라마포사 대통령에 대한 공격도 보수·극우 지지층을 의식한 '국내용'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의 '백인탄압' 의혹에까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모습을 연출해 자신의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 계층 등에 소구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평가다.

TV쇼 '어프렌티스'의 진행자로 존재감을 키운 트럼프 대통령이 극적인 연출을 통해 주목을 끌어내는 전략을 외교무대에까지 적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국 BBC 방송은 "이런 퍼포먼스 중심의 외교 스타일은 미국 내 대중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지자들이 느끼는 불만과 분노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유지하는 데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짚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를 리얼리티쇼로 만드려고 한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회담에서 기존 외교 문법과 상충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각국 정부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무실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위험 구역'이 됐다"며 "(세계 정상들에게) 백악관 방문은 이제 더 이상 우호관계를 다지고 본국에서 정치적 신뢰를 얻는 영예로운 기회로만 여겨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2기 체제에서는 그에게 기습공격을 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번 사례는 앞으로 다른 국가 정상들이 워싱턴 방문을 계획할 때 신중하게 고려할 사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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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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