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개관
“12·3 불법계엄도 사법적 판단 완료 후 전시 가능”
“12·3 불법계엄도 사법적 판단 완료 후 전시 가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 있는 ‘민주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군사정권은 강제 연행과 불법 구금, 고문과 가혹행위로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 지난 12·3 불법계엄으로 이런 일이 21세기에 되풀이될 뻔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내기 위해 정보사 요원들을 동원해 선관위 직원들을 불법 구금, 고문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주의는 끝이 없다. 언제나 다시 시작”이라는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말에 공감이 가는 때이다.
오는 6월10일 제38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은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 민주광장에서 열린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던 곳이다. 수많은 민주인사가 그곳에서 고문을 당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었다. 이곳이 기념식과 함께 개관식을 열고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거듭난다.
지난 20일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재오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0일 자체 개관하고, 수정·보완을 위해 개관일을 6개월 뒤인 6·10일로 잡을 땐 이렇게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울지는 몰랐다”면서 “어떤 정권이든, 어떤 혼란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더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남민전 사건으로 이 이사장도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여기서 40일 생사를 오갔던 사람이라, 지하철을 타고 숙대입구역에서 용산역까지 지나가는 동안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이 건물을 다시 보게 됐지만 썩 편치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재자가 독재의 도구로 대공분실을 만들어 놓고, 그게 무너지고 42년만(2018년)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짓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7년이 걸려 이번에 개관한다. 결국 50년만에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변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만큼 어렵다”고 덧붙였다.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권을 짓밟았던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사과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등을 심은 민주 과수원도 조성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찰이 훼손한 조사실(고문실)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기념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청소년 교육을 꼽았다. 이미 서울·경기교육청과는 관련 협약을 맺었다.
다음은 이재오 이사장과 기자단의 일문일답.
-기념관에서 가장 인상 깊게 여기는 것은.
“안에만 봤지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사장으로 와서 처음 봤다. 지을 때부터 사람을 잡기로 작정하고 지은 건물이다. 아무리 독재 권력이 무도해도 이런 건물을 구상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기념관을 계획하며 중점을 둔 건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건을 조작하고, 고문하고, 그 과정에서 장애를 입은 분도 많다. 될 수 있으면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민주주의 산 역사이다. 아픈 역사를 왜 들추려고 하느냐 하는데 그건 독재자의 시각이다. 개관 이후에도 경찰이 훼손한 고문실의 원형을 훼손하려고 한다. 고문실마다 욕조가 있었다. 목욕하려고 둔 욕조가 아니라 고문하려고 둔 것이다. 그걸 다 뜯어내고, 온통 빨갛던 벽면 색깔도 환하게 바꿨다. 과거 고문실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내가 어디 있는지, 몇 시인지도 모르게 구조를 만들었다. 그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자료를 계속 찾고 있다.”
-최근 청소년의 극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청소년과 20대가 그렇게 극우화된 거 같지 않다. 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는 청년은 극히 일부이다. 그때그때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청소년의 극우화를 막으려면 이곳을 민주주의의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이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뤄졌나 보고, 자신이 느끼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이후 여러 국제 연구기관이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지적했다. 12·3 불법계엄을 어떻게 평가하나.
“비상계엄은 국가가 경찰의 힘으로는 치안 능력을 회복할 수가 없을 때, 그야말로 국가가 내란이나 폭동의 위험에 빠져서 정상적인 작동을 하기 어려울 때 취하는 조치이다. 정치가 혼란스럽고, 여야가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국가 기능이 작동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야당이 말을 안 들으니까 계엄 해야겠다? 민주주의는 대화이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말을 안 들으면 몇 번이라도 대화해야지 군대를 동원해 비상계엄을 한 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일이었다. 다행히 국회에서 해제했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도 지적할 수 있다. 다수라 마음대로 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물론 야당은 다수의 힘에 따르는 게 정당하다 볼 수 있지만, 일반 국민이 볼 때는 다수가 자기네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여당의 후보 단일화 과정을 보자. 새벽 3~4시에 딱 한 사람을 위해 후보를 등록하게 했다. 이런 일들을 보면 민주주의 후퇴가 맞다. 하지만 그런 후퇴를 자정할 능력이 없느냐? 우리 국민은 그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계엄도 야당의 다수 횡포도, 여당의 새벽 후보 등록도 다 반대했다. 국민 수준이 그들의 수준을 넘어섰는데,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오랜 민주화 과정을 거쳐서 그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지금 그래서 선거를 하는 거 아닌가?”
-12·3불법계엄 관련 자료도 나중에 전시될 수 있을까.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내란으로 판단하면, 과거 박정희의 5·16쿠데타, 전두환의 12·12군사반란을 영상으로 소개하듯이 그것도 언제일지는 모르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위기를 초래한 중요한 사건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지 검토에서 개관까지 거의 25년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남산에 중앙정보부 6국 건물이 있었다. 국내 정치를 담당했던 건물로, 속칭 ‘남산’이라고 불렀다. 이명박 서울시장 때 그 건물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만들려고 작업했는데 그곳이 법적으로 청소년 기관으로 돼 다른 기관이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아무래도 민주화 운동의 상징성이 있는 건물을 기념관으로 해야지 그냥 새로운 건물을 지어서 하기는 조금 그랬다. 그래서 물색한 장소가 남영동이다. 국가폭력 현장이 여러 군데 있지만 남산하고 이곳 두 군데가 대표적이다. 부지는 정했지만 경찰청, 국토부, 철도청 등이 얽혀 있어 실제 확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추진했는데, 법에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서 국감에서도 지적받아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제일 많이 걸린 건 대지 확보였다.”
-청소년이 스스로 가고 싶은 공간이 되도록 어떤 준비하고 있나.
“지속해서 청소년이 관람하게 하려고 한다. 2~3주 특강식으로 청소년 민주주의 학교를 열려고 한다. 선생님들을 위한 특별강좌도 열 계획이다. 에버랜드보다 남영동에 가자고 할 정도로 재미있게 보고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법으로 기념하는 11개 민주화 운동 외에 추가로 지정할 계획이 있나.
“민주화 운동을 법으로 기념하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기념관이 만들어졌으니까 연구해서 앞으로 노동 운동, 농민운동, 동아투위 등 언론 운동,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종교 운동 등도 민주화운동 범주에 넣도록 노력하겠다.”
-국가폭력을 교육만으로 방지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치가 잘 돼야 국가폭력이 없어진다. 교육은 국가 폭력의 본질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다. 권력이 민주화되지 않고는 국가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 고문하고 조작하는 것만 국가폭력이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는 건 넓은 의미에서 다 국가폭력이다.”
-민주주의를 정의한다면.
“내가 80 평생을 살면서 느낀 민주주의는 개인이나 조직이나 모두 곧고 바르게 사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 그래야 한다.”